[임성윤의 미술치유] 추락과 비상의 미학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 vs 이상의 ’날개‘
‘..한발만 더’
아차, 하는 순간 발이 허공에 뜨고 코 안으로 물이 들어 찬다. 손발을 허우적 대지만 몸은 가라앉기만 한다. 주변에는 수영복 차림의 굵고 긴 다리들이 그득한데, 왜 나를 모른 척 하는걸까?
1970년대 말, 5살 아이의 몸부림은 낚아채 올린 한 아저씨의 우악스러운 손에 멈춘다. 기진한 아이는 그 와중에 엄마를 주먹 쥐어 때리며 원망한다. 엄마가 떠민것도 아닌데, 세상 대신 엄마가 밉다.
잠시 후 머쓱해져 주위를 둘러보니 뜨거운 햇살이 물놀이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어우러져 눈부시다. 남자아이의 호기심과 야망은 실패로 끝났지만, 다행히 비극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루스는 10대의 소년이다. 그의 아버지 데이달로스는 현재의 일론 머스크(1971-)와 같은 천재 발명가였다. 그는 나무 암소를 만들어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가 포세이돈의 황소와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하고, 그렇게 탄생한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두는 유명한 미로(the Labyrinth)도 만든다. 하지만 다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영웅, 테세우스를 돕는다. 결국 미노스 왕의 노여움을 산 그는 크레타 섬의 탑에 외아들 이카루스와 갇힌다.
어느날 하늘을 보던 이카루스는, 새가 되어 탈출하는 꾀를 낸다.
“ 이카루스야, 적당한 높이로 날아라. 너무 낮게 날면 습기에 날개가 무거워 질 것이고, 너무 높이 날면 뜨거운 태양에 녹을꺼다.” 은밀하게 밀랍과 실로 날개를 만든 데이달로스는 신신당부한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부자. 하지만 자유와 비행의 흥분에 들뜬 이카루스는 ‘더 높이, 조금 더 높이’ 날다 그만 밀랍이 녹아 바다로 추락한다. 데이달로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카루스(1588) , from "The Four Disgracers", 헨드리크 골치우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 신화는 중용의 미덕을 지키지 못한, 부주의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한다. ‘이카루스 컴플렉스(Icarus complex)’는 지나친 야심가들에 대한 정신분석적 진단이다. 자신감과 오만함의 차이와 ‘할 수 있다’ 와 ‘해도 된다’ 를 구분 못하는 과대망상적 나르시시즘은 비극을 불러온다.
또한 ‘이카루스의 역설(Icarus paradox)’은 급격한 성공을 거둔 기업이 갑자기 실패하는 이유는 성공한 이유와 일치한다 경고한다. 성경에서 말하듯,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Live by the sword, die by the sword)’. 이카루스의 죽음은 그의 기지와 데이달로스의 천재성 때문이었다.
피터 브뤼겔 (Pieter Brueghel de Oude, 1527 - 1569) 은 당시 르네상스를 풍미한 종교, 역사, 신화와 같은 숭고한 주제를 탈피하여 서민의 풍속과 일상, 속담과 민간 전설 등을 풍속화로 담아낸 ‘네덜란드의 김홍도’ 였다. 실제 별명도 ‘농민 브뤼겔’ 이었다.
‘바벨탑’, ‘눈 속의 사냥꾼’ ‘결혼식 잔치’ 등의 대표작을 가진 그는 그림에 대한 통찰력과 영감을 얻기 위해 종종 농민 차림으로 사교 모임과 결혼식에 참석했다. 브뤼겔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중세 시대의 인간 사회를 따뜻한 시선과 수수께끼, 유머가 담긴 스냅샷처럼 포착한다.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1558), 피터 브뤼겔/ 벨기에 왕립 미술관.
<이카루스가 추락하는 풍경(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1560> 은 그의 유일한 신화 그림이다. 얼핏 본 그림은 감상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주인공 이카루스는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풍경.
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농부가 쟁기를 밀고, 목동은 양 떼를 돌보고 있으며, 물가에 그물을 던지는 어부가 있다. 세심히 보면 그제서야 오른쪽 해안 이카루스의 발버둥치는 두 다리와 흩어진 날개의 파편이 보인다. 그 앞을 지나치는 멋진 배도 무심하기 그지없다.
이 그림은 당시 플랑드르 속담, ‘쟁기는 죽어가는 사람때문에 멈추지 않는다(No plough stops for a dying man)’ 과 더불어 인용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국계 미국 시인 오든 (W.H.Auden, 1907–1973) 은 벨기에의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감상하고 영감을 받아 <미술관(Musée des Beaux Arts),1938> 이라는 시를 발표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고통에 대해, 그들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About suffering, they were never wrong.” 시인은 세상의 악의없고 비정한 무관심을 당시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비극과 함께 읊는다. 오든의 시는 이 그림을 ‘타인의 비극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으로 대중에게 각인시킨다.
죽음은 평범한 하나의 사건이며 현실의 냉정함은 준엄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누군가의 고통이 아무리 비참한 들, 세상의 일상은 멈추지 않는다. 브뤼겔의 의도는 뭐였을까?
비슷한 시기, 일제 강점기 시대 한국의 경성에는 시인 이상(본명:김해경, 1910-1937)이 있었다. 그는 한국 30년대 모더니즘 작가를 대표하는 인물로 시인,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 화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한국 문학 국제화의 선봉에 섰으며, 초현실주의와 심리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급진성과 난해함, 파격으로 대중의 몰이해와 반감을 샀으며, 짧은 생 동안 가난과 폐병으로 고통을 겪었다.
1934년 시 <오감도(Crow's Eye View)>가 중앙조선일보에 연재되다가 독자들의 반발로 15회만에 중단된 것은 유명한 해프닝이다. 사후에야 그의 천재성이 인정을 받아 지금은 교과서에서 그의 시를 볼 수 있다.
1936년 발표된 <날개>는 의식의 흐름 (stream of consciousness) 기법을 활용한 그의 대표적 단편소설로 일제강점기 무력한 지식인의 분열된 자아가 음울하게 묘사되어 있다.
20대의 병약한 지식인이자 자폐적인 '나'는 매춘을 하는 아내에게 사육당하며 현실과 단절된 방안에 고립되어 산다. 어린아이로 퇴행한 ‘히키코모리’ 였던 그는 다섯번의 외출을 감행하며 점차 세상과 접촉하고 마침내 마지막 외출, 미스코시 백화점 (현 신세계 백화점 본점) 옥상에서 자신의 26년 삶을 회상하며 마음속으로 외친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상이 그린 날개의 삽화/edujin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은 신화 속에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이 깃들어 있다 했다. 이카루스의 신화는 자의식 과잉의 위험을 인간들에게 경고한다. 하지만 브뤼겔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유럽 최초의 민중화가였다. 그의 그림에는 추락마저도 멋들어진 신화 속 주인공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범한 이들의 삶과 무관한 존재였다. 르네상스 예술사 중 멋진 전복의 한 장면이다.
내 앞에 쟁기질과 가족의 생계가 소중하고, 따사한 봄날 새소리가 감사한데 ‘넘사벽’, ‘그사세’ 의 자의식 과잉이 불러온 비극적 신화가 다 무슨 상관인가.
반대로 아방가르드한 ‘이상’ 의 삶과 글은 집단이 아닌 개인의 무의식에 깊숙이 빠져들어 유희한다. 그에게 글을 통한 무의식에서의 유영은 현실의 도피이자 체제의 전복이었다.
분출되지 못한 성인의 욕구는 나르시시즘의 고향인 유년시대로 퇴행한다. 그러나 그도 언젠가 날개를 달고 무의식의 심연(바다)에서 빛나는 의식(태양)으로 비상하는 것을 꿈꾼다.
‘날개’ 는 당시 전쟁을 초래한 사회적 규범에 대한 반항으로 등장한 국제적 예술 운동인 다다이즘(Dadaism)과 연결된다. 그의 글은 전통을 거부하고 반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을 포용한다. 이상의 자유로운 예술혼은 깊은 바다 속에서 ‘자신만의 외로된 사업’ 에 골몰했다.
불운한 천재 예술가 ‘이상’ 은 얼핏 그림 속 이카루스를 떠올리게 한다. 새 출발을 하러 간 동경에서도 결국 빛나는 현실과 조우하지 못한 채 죽고 급히 유해는 미아리에 안장되지만 그마저도 전쟁통에 유실된다.
아무도 관심 주지 않은 세상의 비정함. 아이처럼 퇴행한 20대의 예술가 ‘이상’은 10대의 이카루스와는 달리 날지도 못하고 추락한 것 처럼 보인다.
출판사 창문사의 사무실에서. 왼쪽부터 이상, 박태원, 김소운.
하지만 그는 정말 아무도 모르게 침전해버린 비운의 천재일까. 2024년에 보아도 당시 15회까지나 연재된 파격의 시, 오감도는 한국 문학사의 사건이요 신문사 사장 ‘몽양 여운형’ (1886-1947)의 자신만만한 믿음과 지지가 있었다.
요즘 같으면 폭발하는 온라인 마녀사냥으로 1회를 채 넘기지 못했을 충격적인 시였다. 그에겐 또한 든든한 문인모임인 ‘구인회’ 와 뮤즈 ‘금홍’ 과 ‘변동림(1916-2004)이 있었다.
훗날 화가 김환기(1944-1974)의 뮤즈로 꾿꾿한 삶을 이어간 미망인 변동림은 이상의 요절을 두고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다” 라 회상했다.
이카루스는 태양을 향해 날다 날개를 잃고 추락하였고 ‘날개’의 주인공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의 비상을 꿈꾸었다. 과잉된 자아의 추락을 불러오는 날개와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여 비상하고자 하는 무의식의 날개.
이상의 날개는 현실에 부적응하고 도피하는 예술가의 모순된 자아를 보여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상은 그때 이미 날고 있었다. ‘이카루스의 역설’처럼 그의 예민하고 불안한 영혼과 시대와의 불화는 예정된 숙명이였고, 바로 그것이 그의 날개를 뜨게하는 바람이었다. 추락하는 이카루스와 요절하는 천재 예술가는 그렇게 교차한다.
이카루스처럼, 이상도 그 자신이 이미 태앙 가까이 날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고, 삶의 고통과 불온한 재능은 새로운 예술의 자양분이자 현실의 독이 되었다. ‘이상’ 은 끝내 한국문학의 신화로 비상하여 젊은 예술혼의 글과 아우라는 현재까지도 끊임없는 영감과 자극을 주며 우리의 정신 속에서 영원히 날고 있다.
그런 비극적인 신화들과 함께, 평범한 우리의 소소한 일상도 어쨌든 이어진다.
누군가는 갑자기 물에 빠지고, 또 다른 누군가가 우연히 다가와 손을 내밀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처럼 잠시 울다, 애꿎은 사랑하는 이들을 원망하고, 또 아무일 없었던 듯 무심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다.
글 | 임성윤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