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녀지간(父女之間)의 사랑
옛날 충남 공주 땅 팔봉산 자락에 효심이 지극한 청상과부가 병든 시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본래 밭고랑 하나 없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다 그나마 시집온지 삼년 만에 들일을 나갔던 서방이 벼락을 맞아 죽는 바람에 졸지에 남편을 잃고 기력 없는 시아버지만 떠안고 묵묵히 살았다.
말을 하기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은 과연 몇 해나 버틸 거냐 허구한 날 수군거렸지만 청상과부의 효성은 벌써 일곱 해를 하루같이 변할 줄 몰랐다. 시아버지의 병구완은 변함 없이 지극정성이었으며 봄철에는 날품팔이, 여름엔 산나물과 약초를 캐다 팔아서 힘든 생계를 이어갔다.
“아가, 이제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그만큼 고생했으면 됐다. 이제 좋은 사람을 만나 배나 곯지 않고 살아야 않겠니? 세상 천지에 너를 탓하고 나무랄 사람은 이제는 아무도 없다. 그만 돌아가거라!”
병든 시아비는 며느리의 손을 잡고 통사정을 하며 호소하였다.
“아버님, 제 집이 여기인데 왜 저를 자꾸만 내치려고 하십니까? 저는 아무 데도 안 갑니다. 살아도 이 집 며느리고 죽어도 이 집 귀신이 될 제가 가기는 어딜 간단 말입니까? 제발 그런 말씀 하지 마시고 어서 몸이나 쾌차하십시오. 아버님!”
몹시 흉년이 든 어느 해 가을, 추석 명절이 돌아왔다. 품삯을 시아버지 약값으로 다 쓰고 보니 정작 차례를 지낼 일이 걱정이 되었다. 이틀 후면 한가위인데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빈 상에 냉수만 올리고 제사를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아버지의 낙심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며느리는 방문 앞에서 시아버지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버님, 읍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며느리는 정처 없이 어딘가를 향해 걸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두 다리는 돌덩이를 매단듯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였다. 걷다 힘이 부치면 냇가 미루나무 아래서 쉬고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이삭을 주우며 걷고 또 걸었다. 하늘을 쳐다보니 한없이 야속하기만 한 서방이 어른거려 쉴 새 없이 눈물만 쏟아졌다. 걷고 또 걷고, 얼마나 걸었는지 어느새 해는 한나절이 지나 서쪽 하늘이 봉선화 꽃잎을 흩뿌린 것처럼 물들어가고 있었다.
큰 재를 넘으니까 오매불망 그리던 친정 마을이 눈앞에 보였다.
“아버지, 어머니...”
딸은 실로 몇 해만에 보았을 친정을 내려다보며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날이 어둡기를 기다리면서 그토록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얼마 후 딸은 친정집 광 속에서 제법 묵직한 자루 하나를 들고 미친듯이 나와서 재를 넘고 있었다.
“되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딸은 뒤를 돌아볼 사이도 없이 오던 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그렇게 곡식 자루를 이고서 뒷동산을 넘고 있는 모습을 말없이 소변을 보러 나오다가 우연히 딸이 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친정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뒷동산을 바라보며 흐느끼고 있었다.
“아이고 불쌍한 것! 어찌 이다지도 박복하더란 말이냐? 오죽 살기가 힘들었으면 이 한가위에 친정집의 울타리를 다 넘었겠느냐? 아이고 불쌍한 내 딸아!”
며느리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땀에 절어 집에 돌아왔다.
한가위 아침 산나물 반찬에 밀가루 전을 부쳐 흰 쌀밥을 올려서 조상은 물론이고, 시어머니와 서방님에게 제사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하니 고단함은 사라지고 한없이 마음이 설레었다.
추석이 지난 후에 20여일 되었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새벽에 사립문의 밖에서 소란한 기척이 들려서 밖을 나가보니 서너 말 됨직한 좁쌀자루가 놓여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이 흉년에 누가 이 귀한 낱알을 두고 갔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짐작이 갈만한 구석이 없었다. 궁색한 살림살이나 남의 곡식을 덥석 축낼 수가 없어 며칠동안 새벽잠을 설치며 생각을 하는데 어느 날에 또다시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며칠을 기다렸던 며느리는 죽을 힘을 다하여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사이 등에 지게를 걸머진 남자가 번개같이 담을 돌아 논둑길을 내려 달리고 있었다.
“보셔요, 잠시만 저를 보셔요.”
어느새 남자의 등 뒤까지 따라갔던 며느리는 낚아챈 남자의 팔을 놓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멋쩍은듯 웃으면서 돌아선 사람은 다름 아닌 친정 아버지였다.
“이것아! 집에 왔으면 어미나 보고 갈 일이지. 고구마다. 허기질 때는 꽤 양식이 된다. 힘이 들면 대낮에 다녀가거라. 너의 어미에게는 아직 말을 하지 않았다.”
딸은 어찌할 바를 몰라 목놓아 울고 있었다.
“들어가거라. 어서! 동네사람들이 볼까 무섭다.”
돌아서는 아버지의 볼에서 어느새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가난했던 옛 시절, 부녀의 사랑 이야기인데, 부녀의 뜨거운 사랑이 우리들 가슴에 서려있는 보편적인 정서이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근본 마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