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연동지 제위께
지난 5월 워싱턴에서 가진 농연 4차 만남을 통하여
나는 "기다려 산 재미가 이거구나"를 느끼고 또 하도 좋아서 ,
즉 "우린 반백년이 지나 떨어져 살았어도,반백년 떨어저 산 부부가 아무 스스러움이나 부끄럼 없이 대번에 합방을 하고 숨넘어가는가 "여보, 당신"하며 소리를 질러대는 것과 같이 우리도 만나면
"어이 잘 지냈는가?"
"별일 없지 ?" 하며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마치 안본지가 며칠 안되는 기분이 드는 것 같이 말이다 그래서 우린영원히 변하지 않는 동지들이다.
왜 그런고 하니 그것은 마치
"에밀리 브론테" 작 "폭풍의 언덕"에서 "우리의 사랑은 영혼이 같은 사람들이 만나 하나다" 라고 한 것 같이 우리 농연들도 같은 농혼(農魂)들이 만나 하나이기에 우리도 변함없이 처음 만난 그대로 하여 켄사스로 갔다 센트루이스로 가고 또 워싱턴으로 갔다 또 시카로 돌아다니며 재미나게 산다"를 자랑하고 싶어서 내가 들락거리는Face book 과 수필문예지 그리고 학교 동문방과 Twitter에 올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재미지게 사시네요" 하기도하고. "저게 인디안들이 내쫒기며 흘린 눈물이 포토맥강을 홍수나게 했다는 "아팔라치아" 산(조병곤동지 작품?)이군요. 산과 구름배경이 일품이고 인물들도 어디 배우들 모아다 찍은 것 같이 멋지네요" 하기도 했습니다.
또 사람들은
"루레이 동굴이 그렇게 좋아요 ?" 해서
"그게 미국의 지하 금강산이고 그게 미국의 장가계입니다."라 하니
"나도 가보고 싶네요" 하며 부러워하기도 했었는데,
경천동지할 권동지의
"쪽팔리게 하지 마세요 "가 나온 것 입니다.
그래서 동지들에게 믇고자 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다시 감정을 빼고 좀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냉철한 판단을 얻고자
한국의 문인인 친구에게 그리고 여기 농연동지의 아우로 글재주가 좋은 아우에게 내가 SNS에 올렸던 그 글을 먼저 보내주고 읽게 한 다음 그 글에
"쪽팔리게 하지 마세요"란 claims 걸렸는데 과연 내가 Sns에 올린 이 글로 "쪽팔리게 하지 마세요"라고 분개하는 claims 이 타당하는가에 대한 자문을 구했었습니다.
허나 두사람 모두는
"그와 사적인 적대관계가 아니라면 또 그가 극히 제한된 모임방은 몰라도 전국 단위 SNS에 올려저 자기를 아는 지인들이 내용과 품격이 다른 회원들과 함께 어울려지는 것을 보이게 하기는 싫다는 것 까지는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쪽팔리게 하지 마세요"란 말은 그런 것이 아닌 차원이 전혀 다른것으로 올려진 글이 형편없이 유치하고 조잡스럽다던가 또는 사진으로 농연단체 출신이란 신분이 알려져
"내 얼굴,내 체면 내 지위를 깎아지게 하지 마세요가 된다고 밖에 해석을 못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올려진 그 글은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고 미국을 알게 하는 것이기도 해서 좋다"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글을 동지들에게 올려 묻고자 하는 것 입니다 .
만약 권동지가 여러분에 의견을 묻는 것 처럼
그 "쪽팔리게 하지 마세요"한 대목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하고 합당한 해명이 없으면 하기 하는 "농업연수생 출신이 창피하니 "로 간주 사과를 하게해야 한다고 봅니다.
農硏의 시작은,
내게 알려진 바로는 원래 농업연수 프로그렘(조약)은 5.16혁명후 정부가 혁명완수에 필요한 돈을 빌릴데가 없자 마지막 카드로 서독차관을 얻기로 하고 그러나 서독이 거지꼴이 된 한국 경제를 믿을 수 없어 담보설정를 요구하여 서독 광부와 간호부들의 "임금인질이란"기막힌 아이디어로 성사된 인력 송출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에 농림부가 "why not 농부 송출?" 로 가닥을 잡았으나 미국 농업이 일부 화훼업종을 빼곤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닌 기계화된 산업이고 그리고 미국 농부의 형편상 서독같은 임금 체결을 할 수 없기에 "대학구경?" 을 넣어 흑인노예같은 "농부노예가 아니게 만든 조약체결이었었다"가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허나 내용이야 어떻든
70년대 초반의 미국유학은 하늘의 별따기로 재벌이나 권력자들의 자녀가 이니고선 꿈에서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땡돈이 없는 농촌 청년들에게 있어선 하나님의 은혜나 부처님의 자비가 아니고선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우리의 미국유학?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그래서
"나 미국 가네" 와 "우리 아들 미국 유학가"가 되어 온 동네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또 일부 한량끼가 있는 동지들은 내놓아라 하는 처녀들을 태풍에 보리밭 보리 쓰러뜨리듯 쓰러지게 하기도 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미국은 가고 싶어 농업연수에 들어오게 됐었지만 또 미국에 왔었지만 당시 대도시에서 "x부 출신"비하같이 "농부출신"이란 비하가 싫어 농자를 빼고 그냥 "연수"로 왔었다며 신분을 세탁하려는 동지들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상기한 권동지의 "쪽팔리게 하지 마세요" 의 진위 여부가 궁금해져 여기에 마땅히 밝혀두고 가야 할 일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고 또 동지 여러분이 읽게하는 소이가 된 것 입니다.
부언하여
나의 농혼(農魂)정신과 농민철학은
5.16 정권시 전국 국민정신 개조에 앞장 섰던 김용기 장로가 세운 광주 가나안 農軍학교에 기인하고 새롭게 새겨지게 됩니다.
당시 김용기 장로는 농사를 짓는 군대라 했지만 군대가 국가를 지키는 군인이듯 농촌 즉 농민 즉 "쌀의 권리"를 지키는 農軍으로 뼛속에 심겨지게 됐습니다.
농민(農民)농부(農夫)농자(農者)농군(農軍)이란 밥을 짓는 벼를 짓고 빵을 만드는 밀을 짓는 쌀의 소유자고 밀의 소유자로 다시 영어로 표현하여 A farmer is the owner of the rice who grows it, and the owner of the wheat who bakes it into bread 로 국민을 생존케 하는 책임을 진 절대권력자 농부요 농민이며 농자천하지대본 農者인 것입니다.
당시 군이 정치에 개입 군인정권이 탄생하듯 순수한 농민(농군)이 개입 農軍政權을 탄생되게 해야 한다가 내 농군철학이었었습니다.
하지만 세계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농민은 정권에 예속되거나 종속되어 노예나 다름이 없는 위치에 있게 된 것입니다.
한국 역시 이씨조선의 農者天下之 大本의 사농공상(士農工商)시절을 빼고는 천민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해온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진흥청에서 진흥청 관계자가 참석하여 가진 전체 연수생 마지막 모임에서 저는 "우리 농연은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농민을 새롭게 결집 움직이게 하는 씨멘트가 되어 전형적 한국 농민의 위치였던 여촌야도(與村野道)의 구도를 타파 압력단체가 되어야 하는게 우리의 목표다"라고 주장했었습니다.
결과는 책임자로 부터 "너를 키워주려던 권력 앞에서 감히 네가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가?"라는 질책을 받고 연수 프로그렘에서 제외되는 일차 위기에 처해지게 됐었습니다.
이차는 콜럼비아 whitehall 에있었던 농연 2기 도착 환영 모임에서
"우리는 속았다. 우리는 한국 농부노예였다.서독광부와 간호부는 돈을 벌어 쥐고 갔지만 우린 일만 하고 빈손으로 귀국하는 노예,"란 요지로 감정폭발을 유도 "우린 농장배치 거부 스트라이크를 해야 한다"고 이진을 설득하고 있었는데 그 비밀이 새어나가 Swanson 으로 부터 strike의 스자만 나와도 당장 귀국 조치한다는 협박에 굴복해야 하는 이차 위기를 맞게 된 것 입니다.
To be continued
첫댓글 김형선 동문.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