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민둥산역이라 부르는 증산에 잠시 정차하여
몇 아니 되는 길손을 내리고 태운 꼬마기차는,
별어곡, 선평역을 정차하지 않고 통과하여 정선역에 도착한다.
제천을 떠나 지금껏 달려온 연변의 경치와는 사뭇 다른 신선이 사는 곳이 여기고
옛화가의 몽유도원이 여기런가 하는 착각마저 일으키는 풍광에,
길손은 숨을 멈추고 바라보나니,
작은 터널 하나를 빠져나올 때마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흘러
세월은 멈추었다.
구불구불 험난한 산길을 헤치느라 숨가쁜 작은 기차는
정선에 잠시 머물러 숨을 고르고는 아우라지로 향하매,
굽이굽이 푸른 물 유유한 조양강을 거슬러 오르고는 나전역에 이르러
북평 작은 시가지를 굽어보며 아우라지로 내쳐 지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강물이 불어 평지를 이루고 그에 따라 비옥해진 땅에 모여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살았으니,
송천과 골지천이 만난 아우라지부터 나전까지에는 작은 평야를 볼 수 있음이라
정선에서는 보기 드문 푸르른 논들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범람을 피하고자 둑을 막고 살기 시작하여
강을 사이에 두고 남평과 북평으로 이름지어 오늘에 이르고,
예로부터 뽕을 많이 길러 명주내라 부르는 나전과 함께 그저 조용히 살아간다.
일찍이 나전하고도 항골 깊숙한 골짝엔 탄이 많이도 묻혀 있었기에
당시로서는 이를 방치함이란 손실이라 탄광이 문을 연다.
이 탄을 나르고자 두리봉자락의 붉은 언덕에서 흙을 날라 돋우워 작은 언덕을 만들고
그 위에 나전역은 탄생하여 시가지를 굽어본다.
그리고는 아우라지를 지나 구절리에서도 탄을 캐니 철로는 이어져
어느 해 정선에서 나전까지, 또 어느 해에는 여량을 지나 구절리까지 연장된다.
탄광으로 맞이한 호경기로 작은 동네 북평은 사람들로 북적였기에
그 자취는 지금도 남아,
나전역 아래 긴 골목은 오늘날에도 시장통이라 부르고
지금도 그 때의 그 시절을 노인들은 추억한다.
많은 사람들이 탄광을 찾아 오고는 떠났으니
어떤 이는 돈을 벌어 가기도 하였겠거니와,
어떤 이는 젊어 한 때의 객기를 이기지 못 하여 노름과 주색잡기로 탕진하고는
눈물을 뿌리며 새벽기차를 타기도 한 나전역이다.
아무리 시간이 정지된 동네에도 무심한 세월은 흘러 탄광이 문을 닫고는
사람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고,
정선역과 나전역 사이 강변에는 또 작은 간이역인 송석역이 있었으나
몇 해 지나지 않아 없어진다.
그리고는 나전역조차 역원없는 간이역이 되어 또 몇 년의 세월을 보내더니
지난 해부터는 두 칸 꼬마기차마저 서지 않는다.
어느 해 미술학도들이 와서는 텅 빈 역사에 앙증스러운 도깨비들을 그려놓아
방망이를 치켜든 도깨비들이 살기 시작한다.
아무리 방망이를 두들겨도 한번 지나간 옛영화는 돌아오지 않음이라
사람들은 계속 줄어 동네마다 어르신들만 남아 농사를 짓는다.
강원도 하고도 정선의 농사란 그저 옥수수와 감자라
비탈진 밭에는 옥수수의 물결이 굽이치고,
칠월이 지난 감자는 이미 캐어지고 그 자리에는 들깨가 심겨진다.
이렇듯 잊혀져가던 나전역은 금년들어 어느 방송의 “1박2일”이라 하는 프로에 등장하여
세인의 이목을 끌고 추억을 되살리더니,
칠월을 이십일을 넘긴 주말에 뜻있는 이들이 빈 역사에 모여 “간이역 문화제“를 연다.
장마와 함께 하였으나 이름도 무색한 태풍이 하나 곱게 지나가고
비는 흡족하게 내려 해갈은 되었으매 사람들은 웃음짓는다.
비그친 뒤의 하늘은 높고도 맑아 먼지 하나 없이 청량하고
얼굴에 닿는 바람은 시원하고도 상쾌한데,
때를 맞추어 천년길조 흰까마귀마저 정선에 나타났다 하니 두루두루 상서롭다.
미술학도들이 데려왔던 도깨비들은 기약은 없었지만 입주기간이 지나 떠나고
역사는 옛모습대로 칠이 되어 산뜻하다.
역사에 들어서매 그 때의 역장옷을 입은 면장이 기차표를 개찰하여 손에 쥐어주니
우표보다는 조금 크고 두꺼운 기차표에 추억은 왈칵 몰려들고,
바람만이 살고 있던 텅 빈 역사에는 손때묻은 정겨운 물건들이 그득하매
둘러보는 눈길마저 촉촉해진다.
언제 보았던지 기억조차 아물아물한 소달구지며 이런저런 옛이야기들을 들으며
아이들은 어느 풍류객의 기타반주에 맞춘 동요를 듣는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시간이 되어 꼬마기차는 무심히 지나가는 것을 보노라니
기차도 정차하고 많은 이들이 타고오르는 풍성한 날이 오기를 바램해본다.
작은 동네치고는 우람한 농협 뒤의 연못에는 희고 붉은 연꽃이 피었고
길들인 황소 등에 올라 탄 목동은 흡사 말을 타듯 종횡무진한다.
문화제라 하여 거창하지도 않은 작은 축제지만 이 동네 저 동네 아낙들은
수건쓰고 땀흘려 메밀을 반죽하여 국수를 뽑고 전병을 굽는다.
애시당초 정선의 음식이란 여느 지방의 음식처럼 맛깔스럽지는 아니 함이라
그저 정선사람들의 무던함을 닮아 담백하고,
궁벽진 산촌에서 주식으로 하던 감자, 옥수수, 메밀은 이제는 몸에 좋은 별식이 되어
외지에서 온 길손들은 메밀국죽, 감자옹심이를 맛있다 한다.
나전역 작은 광장에 동네사람들은 옹기종기 불피워 제철맞은 옥수수도 찌고
이런저런 음식들을 굽고 삶으니 모처럼 이웃들은 모여 막걸리잔을 돌린다.
오래 전 항골에서 캔 탄이 그득 쌓였던 너른 저탄장에는 봄에 뿌린 유채가 씨를 맺고
나무그늘 아래 테이블에는 삼삼오오 모여앉아 도란도란 정이 깊어간다.
한 바탕 두둥둥 사물놀이는 휘돌아들고 해는 기울어 불은 밝혀지매
아라리의 고장에서 아라리가 빠질소냐,
긴아리랑부터 시작하여 엮음아라리로 넘어가니 흥겨웁다 모두들 둥실 춤을 춘다.
무릇 축제란 보통사람들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과 식상함만을 안겨주던
한 자리 한다 하는 이들의 축사며 치사도 하나 없어 행사진행은 산뜻하고,
어느 여류시인이 나선 청마의 시 한 수 낭송은 잔잔하고도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 말이 이 세상 마지막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흥겨운 가요무대로 들어서니 언제 또 이러한 즐거운 무대가 있겠는가
남녀노소 어우러 밤깊는 줄 모른다.
흥겨움의 절정에서 작은 폭죽은 밤하늘을 수놓고,
작고도 낡았지만 나전역사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다시금 그리움과 사랑을 안겨주어,
모두들 길이길이 아끼겠다 다짐하는 아름다운 밤이다.
첫댓글 게시판지기를 떠난다 했더니 카페를 떠난다고 아는 님들이 있군요.
글로 맺은 인연도 인연이라 일반회원으로 남아 글을 씁니다.
그런데... 운영진에게 떼어달라고 요청했는데
닉네임 앞의 게시판지기 표식은 아직도 있군요.
정선나그네님!
게시판지기도 회원도 내려놓으신다 하셔서
뭐라 표현은 안 드려도 내심~ 서운한 마음 많았는데,
남아계시겠다는 말씀이 청정지역 정선의 훈풍처럼
여겨짐에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그러시듯~
아우라지 정선의 사계를 나그네님의 일필휘지로
그려주시길~~~요.
언제나~
나그네님의 강건함을 비오며,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네, 그저 촌부로서의 "정선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는 이어집니다.ㅎ
이렇게 글로 뵐 수있어 넘 반갑습니다.
나그네님의 글을 통해 정선을 알게되고
어느듯 정선이 고향처럼 다가와있거든요
나그네님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정선이 고향처럼 마음에 다가섰다니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정선이야기 간이역 문화제도 있고 맴은 정선에 가 있는기분 입니다
그 언젠가 잠시 지나 치기만 했었는데 요리 많이 변하여 있는듯 보여 지네요.
다음에 지날 적에는 살펴 보시기를...ㅎ
변함없이 만날수 있다니 반갑습니다.
조용한 정선의변화와 들녁의 모습을 느끼게 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오래오래 남으시길.............늘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무더운 여름 잘 보내시기를...
나그네님 글을 보니 많이 반갑네요,메일 확인 하신거 고맙습니다.날더운데 계곡 생각이 절로 나고 정선나그네님 날더운데 건강관리 잘하세요,
이번 주말에 옥수수 따는데 아니 오시려는지...ㅎ
어제 옆지기와 산책 하면서 정선 아침에 일찍갖다가 저녁늦게 다녀 오라고 하는데.여름에는 귀한손님도 사절 해야 된다고 하는데,,,
괜찮습니다.
시와 소설을 동시에 읽었습니다. 마음의 평화도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네, 님께서도 평안하시기를...
글조차 뵙지 못할까 서운했었는데...이렇게 정선 소식을 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난주에도 정선은 아니지만 강원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햇옥수수와 감자떡을 맛보며
강원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했습니다..
어쩌다보니 연속 강원도로의 여행이 되었네요..ㅎ
언젠가는 나그네님으로 인하여 더 정겨워진 정선여행을 꿈꾸며...오늘도 행복하시길~^^
강원도 하고도 정선은 더욱 아름다운 곳입니다. 언제든지 오시어 추억을 만드시기를...
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정선의 모습을 읽을수 있어 감사합니다
오늘도 구비구비 돌아 가는 정선의 산 허리 마다 에서 구성진 정선 아라리 의
메아리 가 에까지 들리는 듯 합니다...
님의 격려에 힘입어 글을 쓰지요. 감사합니다.
그렇게도 정선이 아름다운곳인가요~자꾸 정선얘길듣다보니,,,점점 정선사랑에 빠져들어갑니다,,
언제나 가볼수 있을지,,,내년엔갈수 있을가???
아님 올가을에~~~~건강하게 잘지내세요~~~
그 전에는 늘 아니 온다 말씀하셨는데...ㅎ
안나언니~ 꼭 다녀오세요.
정선님도 만나보시고요. 만나고 글 올리는 날 기다릴께요.^^
전 개인적으로 정선을 가본적이 없어서 풍경이나 감상은 잘 모르나 첼로리스트와 스님의 된장이야기는 이곳저곳에서 듣어서 좀 아네유....글을 읽다보니 우리 어릴적의 역의 풍경이 그려지네유. 갈 읽었습니다.
메주와 첼리스트의 된장공장은 백복령가는 길에 있는데 문을 닫았어요.
형님~간간이 보내 주시는 문자에 감동...또 감동...
형님을 좋아 하시는 분들 넘 많아 저도 흐뭇 합니다...근디 조위에 마녀님 댓글에
대한 답글이 빠졌내요...저도 가끔 그런는디...ㅎ
형님~식사 꼭 챙겨 드시고 늘 건강 하셔야 됩니다...*^^*
형님 아우 인연을 맺으면 소식 쯤이야 누가 먼저 보내면 어떠우...ㅎ
나그네님의 글을 통해 아우라지며 정선의 사계를 앉아서 여행하는 행운이 멀어 질까
많이 서운했는데 이렇게 글로서 만날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늘~건안하시어 좋은글 자주 올려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님의 격려, 감사합니다.
이젠 정선이 그리움으로 동경의대상으로
맘속에 새겨진게 모두 나그네님덕분입니다
내 언젠간 꼭한번 그곳을 가보리라...^^
동화같은동네 조용한시골마을...
님의글 다시 뵙게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님의 댓글, 역시 반갑습니다.
그때 정선에 가서 먹어 본 콧등치기국수와 메밀전병 맛이 별로 없었지만 담백했고 옛 향수를 느끼기엔 충분한
음식이었어요.
이렇게도 정선을 잘 알려주는 정선의 홍보대사가 있으니 정선에서는 나그네님께 진짜 홍보대사로 임명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정선에 건의할까요?^^
군청에서도 알고 있는디...ㅎ
그래요? 나그네님도 반 공인이시군요.ㅎㅎ 정선에서도 삶방에서도...ㅎㅎ
아름다운 정경을 글로 풀어주신
정선님께 감사드리며
항상 이 자리에 지켜 주셨으면 하는 바람은
저 혼자 만에 생각은 아닌것 같습니다
좋은글과 소식 자주 접할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정선이라 글로나마 소개하지요...
제가 정선에 다녀와 보니 나그네님말씀에 100% 공감 합니다.
너무 멋진 절경이 도시에서는 누릴수없는 그런 조건들이 너무나 부럽답니다.
저는 공해에 찌들린 환경속에서 몸이 점점 약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정선엔 들깨를 많이도 심어요. 지금은 옥수수 밑에 심겨져있어 보이지 않지요.
나그네님 글을 못보는줄 알고 이곳을 찾지 않게 되었는데...
혹시나 하고 오니 반가운 글이 올라 와 있네요.
역시나 주옥같은 글이 마음까지 편안하게 합니다.
어지럽고 정신없는 수다글 보다 항상 평화롭고 수채화같은 나그네님글은 마음의 평화를 얻고갑니다. 다시보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정든 인연들, 잊지는 않지요...
정선님의 서정적인글이 좋은건 잘알고들 있지요.
그러나 모든글이 그런글만이라면 읽는이에게는 식상할 일이지요.
때로는 수다도 또 때로는 웃기는 이야기도 우리에게는 즐거움을 주는게 아닐가요?
고상한 사람도 있지만 한편으론 저처럼 소시민적인 소탈한글을 즐기는 사람도 있씀을 말하고 싶으네여.
삭제된 댓글 입니다.
본대로 느낀대로... 쓰는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