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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의원 선거가 11일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전국 1만 3,470곳의 투표소에서 진행된 가운데 중증장애인들도 투표소를 찾아 한 표를 행사했다.
11년 동안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생활하다가 지난해 11월부터 의정부 민락동에 있는 체험홈에서 자립생활을 준비 중인 강성구 씨(뇌병변장애 1급)는 이날 늦은 2시 20분께 민락초등학교에 마련된 송산2동 4투표소를 찾았다.
2층에 투표소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어 투표소까지 강 씨가 접근하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강 씨가 혼자서 조종이 가능한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음에도, 투표사무원이 도움을 주겠다는 의도로 투표소에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계속 뒤쪽 손잡이를 잡고 미는 불편한 장면이 이어졌다.
그리고 언어장애가 있는 강 씨가 투표사무원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의사를 표현할 새도 없이 투표 과정이 진행됐다. 이를 지켜보던 한 투표참관인이 “전동휠체어는 혼자서 조종이 가능하다”라고 넌지시 말했으나 투표사무원은 수동휠체어와 전동휠체어의 차이를 모르는 듯했다.
또한 혼자서 기표하기 어려운 장애인을 돕기 위한 보조인에 대한 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투표사무원은 동행한 강 씨의 활동보조인에게 투표소 밖으로 나가라고 요구해 강 씨의 활동보조인은 기표소에서 투표 보조를 하지 못했다.
투표 보조는 보조인이 가족의 경우 한 명, 가족이 아닌 경우에는 두 명이 동행하면 가능하다. 만약 가족이 아닌 보조인이 한 명인 경우에는 투표사무원 한 명을 선정해 두 명이 함께 투표 보조를 해야 하나 이날 강 씨의 투표 보조는 투표사무원이 혼자 했다.
이날 투표를 마치고 나온 강 씨는 “시설에서도 인근 학교에 있는 투표소에서 생활재활교사의 보조를 받아 투표를 해왔다”라면서 “하지만 오늘 투표는 지역사회로 나와서 한 투표이기 때문인지 기분이 좋았다”라고 밝혔다.
강 씨는 “투표사무원이 계속 뒤에서 전동휠체어를 밀어 불편했다”라면서 “하지만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잘 설치되어 있던 점은 좋았다”라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장애인자립생활주택 평원재에 사는 중증장애인들도 이날 이른 11시께 혜화동 1투표소를 찾아 투표에 참여했다.
이날 투표를 위해 평원재를 나선 김남옥(뇌병변장애 1급), 김명학(뇌병변장애 1급), 하상윤(뇌병변장애 1급) 씨 등 5명의 중증장애인은 명륜동 올림픽생활기념관에 마련된 투표소로 향했다.
올림픽생활관은 1층에 투표소가 마련되어 있고 턱마다 임시 경사로 등이 설치되어 있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무리 없이 참정권을 행사했다. 또한 손이 불편한 뇌병변장애인들은 보조인과 동행해 기표소에 들어가 자신이 원하는 정당과 지역구 후보에 한 표를 던졌다.
김남옥(뇌병변장애 1급) 씨는 “지난해 시설에서 나와 이번이 두 번째로 투표에 참여했다”라면서 “시설에서 살 때는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는데, 이렇게 지역사회에 나와 투표할 수 있어서 좋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명학(뇌병변장애 1급) 씨는 “부양의무제폐지나 장애인관련 정책 등 공약을 살펴보고 신중하게 투표에 참여했다”라면서 “투표장이 1층이고, 편의시설도 큰 불편은 없었다”라고 전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성북동 2투표소에서 장애인이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며 선거 당일 현장에서 1인 시위를 벌였던 이라나(지체장애 1급) 씨는 늦은 2시께 성북초등학교 1층 과학실에 설치된 투표소를 찾았다.
성북초등학교 입구에서 과학실로 들어가는 통로에 마련된 경사로의 각도가 높아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투표소로 이동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라나 씨는 “지난해에는 투표소에 접근할 수조차 없었고 들려서 올라가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해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라면서 “다행히 올해는 1층 과학실에 투표소가 만들어져서 어렵지 않게 투표를 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 씨는 “그러나 지난해에는 투표일이 공휴일이 아니라서 학교에 설치하지 못해 성북초등학교 병설유치원 2층 강당에 투표소가 설치됐던 것”이라며 “이후에도 법정공휴일이 아닌 선거는 투표소가 다시 어디로 배정될지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진영 소장(뇌병변장애 1급)은 늦은 3시 30분께 한진타운 2관리사무소 경로당에 마련된 행당2동 5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기표소는 1층에 마련되어 있었으나 입구 턱이 높아 다른 사람이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줘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 또한 기표소 입구가 좁아서 휠체어 하나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출입구는 별도로 나뉘어 있지 않고 하나뿐이었다.
또한 기표소의 전체 공간이 다소 좁아서 전동휠체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넉넉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신분 확인 뒤 투표용지를 받고 투표소까지 이동하는데 불편을 겪었다.
투표 공간이 좁아 휠체어가 이동하는데 시간이 지체되자 투표관리원은 최 소장에게 “뒤에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죄송하지만 조금 서둘러 달라”라는 말을 여러 번 하기도 했다.
투표하고 난 후 최 소장은 “입구와 전체 공간도 좁고 턱이 있어서 힘들었다”라며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아서 이동하기가 불편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최 소장은 “이곳에 산 지 12년 되었는데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간이 개선되지 않고 불편한 건 똑같다”라며 “경사로 설치와 입구를 넓혀 달라고 요구하겠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날 최 소장은 기표 보조를 위해 활동보조인과 투표소까지 동행했으나 선거관리원이 “다른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라며 활동보조인의 동행을 막기도 했다.
이에 대해 최 소장은 “매우 당황스러웠다”라며 “여기서 12년을 살면서 매번 같은 곳에서 투표했고 그때마다 활동보조인의 보조를 받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은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최 소장은 “장애인도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싶은 마음에서 투표하게 됐다”라며 “장애인들조차도 자신이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기도 하고, 참정권을 행사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그럼에도 투표는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최 소장의 투표를 보조한 활동보조인 김현정 씨는 “지난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활동보조를 했는데 그때는 아무 말이 없었다”라며 “투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밀리는 건데 선거관리원이 마치 휠체어 때문에 지체되는 것처럼 말해서 기분이 상했다”라고 밝혔다.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하는 고명숙(뇌병변장애 1급) 씨는 늦은 4시 30분 약수하이츠 경로당에 마련된 신당4동 4투표소에서 투표했다.
이곳 기표소의 입구는 다소 넉넉한 편이었으나, 입구 경사로가 완만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투표를 마친 고 씨는 “입구 턱이 있었는데 경사로가 완만하지 않아서 힘들었다”라며 “장애인 편의시설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고 씨는 "또한 집에서 기표소까지 오는데 아파트 계단 옆에 바로 경사로가 있는 것이 아니고 경사로가 뒷길로 나 있어서 휠체어를 타고 혼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라며 집에서 기표소까지의 편의시설 보장이 되어 있지 않은 어려움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고 씨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동료 장애인들과 어느 정당과 인물을 찍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라며 “장애인의 권익을 좀 더 보장해줄 수 있는 후보에게 주권을 행사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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