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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코로나19라는 사태와 새로운 방식의 영화 관람
영화 감기(THE FLU)
서울공대지 2020 Spring No.116
이수향 영화평론가 서울대 국문과 강사
2013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신인평론상 수상.
공저로 『1990년대 문화 키워드20』, 『영화광의 탄생』, 『영화와 관계』 등.
‘시네마’라는 환상
최근 몇 년 간 넷플릭스의 부상은 영화계에 뜨거운 이슈를 몰고왔다. 2017년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때 심사위원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넷플릭스 영화에 상을 줄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했고 다른 영화 관계자들의 비난도 이어져 논란이 되었다. 텔레비전 플랫폼 전용으로 만들어져 온라인으로 스트리밍 되고 극장에 개봉하지 않는 영화는 영화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다음 해에 넷플릭스 오리지날 콘텐츠로 만들어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받게 되자 찬반양론은 더욱 가속화 되었다. 칸느는 여전히 넷플릭스 영화의 영화제 진출을 막고 있다. 티에리 프레모 칸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시네마의 역사와 인터넷의 역사는 별개의 것”이라는 말로 단호하게 선을 그었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역시 “넷플릭스의 영화들은 TV영화”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는 여전히 레드카펫에서 복장 규정을 두고 셀카를 금지하는 칸 영화제의 시대착오적인 태도이자 새로운 변화에 두려워하는 영화계의 고루함이 드러나는 장면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논점의 핵심은 ‘시네마’냐 ‘TV 프로그램’이냐 하는 부분이다. 전자를 강조하는 측은 극장이라는 플랫폼에 여전히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시네마’로서의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넓고 큰 스크린과 사운드 장치를 갖춘 어두운 공간에서 러닝타임 시간에 맞춰 고정된 자리에 앉아 절대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줄 것을 관객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배급업이나 극장들의 생존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영화계의 반응은 날카롭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공히 ‘기획-제작-배급’의 3단계를 거치는데 넷플릭스 기반의 영화들은 배급 단계의 생략을 의미하므로 기존 영화 생태계에 엄청난 변화를 야기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감히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들인 감독들인 봉준호, 코엔 형제, 마틴 스콜세지 등의 입장은 분명하다. 기존의 영화계에서 상업성의 고려로 인해 투자가 어려웠던 대본들도 넷플릭스 측에서는 전폭적으로 투자를 해준다는 것이다. 즉, 감독들의 주관적인 세계를 펼칠 수 있는 작품들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영화 하나 당 엄청난 예산을 집약적으로 들이기 때문에 실패했을 경우에 당장 다음 작품 제작도 어려워지는 영화 제작사에 비해 한 번 만든 독점 콘텐츠를 전세계에 지속적으로 스트리밍 가능한 OTT업체들의 이윤 구조의 수월성 때문에 가능하게 된 부분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러한 논란이 이어지자 “온라인 스트리밍과 극장은 결국 공존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논쟁이 무색하게 되는 사태가 우리에게 도래했다.
OTT기반 컨텐츠의 활황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로 표기)가 멈추게 한 것은 모임과 집회, 등교만이 아니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작년 하루 평균 4-50만명이던 영화의 관객수는 올해 3월 24일 기준 하루 총 2만명대로 떨어졌다. 이는 영진위 통합전산망 집계(2004년 1월)가 시작된 이후 역대 하루 최저치다. 박스오피스 1위 영화도 겨우 하루 5천여 명을 모으는 수준에 그쳤다. 비말에 의한 호흡기 감염이 우려되는 코로나19의 특성상 좁은 공간에 잘 모르는 사람들과 촘촘히 붙어 앉아 봐야 하는 영화관람은 자연스럽게 금기시된 것이다. 칸느와 아카데미를 모두 평정한 영화 <기생충>의 낭보와 함께 한국영화의 새로운 르네상스가 더 펼쳐 지리라던 기대들이 무색하게도 영화계 역시 멈춰 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신작들은 대거 시사회와 개봉 일정을 미루고 월과 년 단위로 촘촘하게 짜인 영화계의 촬영이나 홍보 등도 모두 올스톱 된 것이다. 나아가 국내외의 많은 영화제들도 개최가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관객들이 극장에 없으므로 신작영화들이 개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화제성을 얻게 된 것은 OTT(over-the-top)로 얘기되는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컨텐츠 들이었다. 유튜브나 넷플릭스(Netflix), 왓챠플레이(Watchaplay), 웨이브(Wavve) 등의 실시간 스트리밍 기술을 이용한 콘텐츠 서비스들은 잡지를 구독하듯 일정한 금액을 내면 해당 플랫폼 내의 다양한 영화나 드라마 등을 자유로이 볼 수 있다. 이 중 넷플릭스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이용자가 많은 플랫폼이자 자체 제작 오리지널 프로그램들에도 많은 공을 들여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 시국의 수혜를 톡톡히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극장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OTT를 이용해 영화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영화계의 논쟁과 상관없이 상황은 넷플릭스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베를린 영화제 갈라 섹션에 초청받아 기대를 높인 윤성현 감독의 신작 <사냥의 시간>이 미뤄지는 개봉 일정에 결국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에 영화를 공개하기로 급격하게 결정하면서 다시 영화계의 갑론을박이 달궈지고 있다. 영화 제작사측은 개봉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실정에 영화가 사장될 위기에 처했으니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비 회수와 안정적인 수익, 전세계적인 관객을 겨냥하겠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진다면 다른 영화들도 연쇄적으로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된다면 국내 배급-극장업계는 생존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절박함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렇듯 코로나19 사태는 관객들에게 단기적으로 당분간 영화관 구경을 어렵게 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제작-상영 시스템의 근본적인 시각의 전회를 가져오게 하고 있다. 이는 사태 종식 이후에도 관객들의 영화 관람 양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게 지켜볼 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에서 최근 가장 많은 이들이 선택하고 있는 영화 <감기>를 통해 영화의 내용적 측면에서 현상황과의 시의적 접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극장과 OTT기반 플랫폼의 영화 관람방식도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환기하는 서사와 영화 관람의 미래
영화 <감기>는 2013년 김성수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최종 관객수 310만명을 조금 웃돌면서 소득분기점(370만)을 넘지 못했고 개봉 당시 그다지 호평을 받은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flu’를 소재로 벌어지는 이야기가 현 상황과 상당히 비슷한 성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시 소환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분당 소방서 소속 구조대원인 지구(장혁)는 공사장에 빠진 차량에 타고 있던 인해(수애)를 구해주면서 그녀와 인연을 맺는데, 인해는 감염의학을 전공한 의사로 어린 딸 미르(박민하)와 함께 사는 싱글맘이다. 지구는 인해의 가방을 찾아주려다 미르를 만나게 되는데, 갑자기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분당 전체에 급격하게 퍼지면서 사망자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게 되고 인해와 의료팀은 그 실체를 밝히려 한다. 사태가 점점 악화되자 분당의 국회의원과 국무총리, 대통령 등은 감염자들을 선별 분리하고 나아가 분당의 봉쇄를 놓고 탁상공론을 펼친다. 인해는 H5N1바이러스에 감염된 미르를 숨기고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와 강압적 격리에 분노한 분당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켜 서울로 향한다. 미국 쪽에서 파견된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책임자 스나이더와 대통령 (차인표)은 시민들을 전투기로 폭격하는 문제를 놓고 대립한다. 결국 대통령이 이를 저지하고 미르의 항체를 통해 백신을 개발하여 사태는 종결된다.
이 영화는 특히 캐릭터들의 평면적 설정이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서사 구성 등에서 영화적 한계를 노출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미리 예견했던 영화로 재평가되면서 성지순례(?)를 하려는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영화에서는 치명적인 조류독감이 급속도로 번지는데, 현실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호흡기 감염질환 전염된다는 점에서 두 질병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구나 극중에서 초기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약국, 버스 등에서 내뱉는 기침 등에 의해 비말이 전파되는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스크와 손 씻기를 강조하고 있는 현 상황이 역으로 비춰진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점염병이 번지고 있을 때 이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느냐의 문제가 극중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이는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감염 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막을 것이냐, 감염이 전방위적으로 퍼지고 있는 지역을 봉쇄(lock down)할 것이냐의 문제 앞에 실제로 많은 의견충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외부로부터 침투된 바이러스라는 설정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감염이 단순히 한 나라에만 국한되는 사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며,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 국제 공조와 협의 체계를 의식해야 한다는 점을 통해 현재의 코로나19 정국을 환기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도덕감각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의문들이 주어졌을 때 등장인물들은 지나치게 선악의 프레임에서 납작한 행동 양상을 보인다. 민의에 의해 선출된 공무직인 국회의원은 시민들을 쉽게 포기하고 감염자들의 처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작전과장은 군인으로서 감염자 통제를 위해 복무해야 하지만 본인이 감염된 사실을 알자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분당을 빠져나가려 한다. 한국의 시민을 희생해 전세계적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미국측 책임자 역시 타국의 의사결정 과정을 무시하고 무력을 사용해 억누르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시종일관 악인의 측면에서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는데 재난의 절망적인 상황에 더욱 분노를 주동시키는 인물들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선인으로 묘사된 주요 등장인물의 경우는 어떠한가? 위의 악인들이 갈등 유발의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면 영화의 주동 인물들은 선인으로서 갈등의 분기점에서 중요한 선택을 통해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구급대원인 ‘지구’가 지나치게 낭만화된 인물로 그려지고 비효율적인 구호행위에 몰두한다든가, 어린 ‘미르’의 천진난만한 행동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트리거처럼 기능하는 것,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이상적인 지도자처럼 그려지지만 나름의 자구책을 찾아내지는 못한 채 항체를 가진 어린 아이를 통해 사건을 종식시키게 된다는 점에서 이들의 선한 의도는 그 행동에 초과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요 인물들의 행위가 합리적인 개연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선한 행동도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문제적인 부분은 의사인 ‘인해’의 묘사에 있다. 감염의학자이자 의사인 ‘인해’는 바이러스성 전염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딸을 구하겠다는 사적 이유로 국가의 선별 격리 조치에 반해 딸의 전염을 숨긴다. 또한 항체 생성과 백신 개발로 이어지는 실험의 과정적 절차와 피실험자가 겪게 될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리하게 딸의 몸에 검증되지 않은 항체를 주입한다. 영화는 결국 인해의 그러한 결정이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주며 끝이 나지만, 실제의 현실에서 이는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즉, 국가적인 재난의 상황에 극단적으로 내몰려 있을 때 그 현실에 대한 전유로서 포착할 수 있는 부분은 선택/결정을 하는 데 있어 우선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의 차원에서 각 개인들의 사회적 위치에서의 올바른 판단, 그 윤리성에 대해 묻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중단된 일상도 다시 시작될 것이고 극장 출입도 다시 자유롭게 될 것이다. OTT라는 플랫폼으로 충족이 되지 않는 커다란 스크린과 어두운 공간에서의 집중이 감상에 효과적인 영화들은 우리를 다시 극장에서의 관람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나 이동의 제한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사적 공간에서 머물게 됨으로 인해 우리는 다른 방식의 영화 관람 체험을 확대하게 되었다. 상영 시간과 공간에 맞추지 않아도, 오래 전에 이미 극장에서 사라져버린 영화라 해도 혹은 감독의 주관이 뚜렷해서 일반 극장에서는 오래 보지 못한 영화라고 해도 찾아내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극장 영화 상영이 보여주는 일방향적이고 일률적인 배급 시장 형태와 많은 이들의 기호에 맞게 다듬어진 영화들을 선택하지 않는 또 다른 수요층을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플랫폼들은 본 영화와 검색된 기록들의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개인의 관심사를 이해하고 그 선별된 취향을 인정해준다. 오래 전에 개봉되고 잊혀졌던 영화 <감기>는 그 소재적 유사성 때문에 코로나19와 맞물려 다시 소환되었고 콘텐츠의 상위권에 노출이 되었다. 이 작품을 본 시청자에게는 다시 비슷한 소재와 같은 배우나 감독이 만든 영화가 추천될 것이다.
OTT로 상영되는 영화를 반대하는 많은 영화인들의 논리에는 영화의 고유성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그런데 그 고유성은 관람 환경만이 너무 고려된 것은 아닌가? 오히려 영화를 영화답게 하는 것은 그저 스치듯 지나가버리는 영화가 아니라 다시 복기 되고 이야기되며, 창작자의 의도가 좀 더 존중되고 관객의 니즈가 감안된 영화를 말한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차원에서 “영화가 대중적인 정신의 산물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반대, 특히 도시에서 사는 대중들의 정신 상태가 이 예술, 거대한 산업이기도 한 이 예술의 산물이라는 의미에서 대중적이라는 점이다”(<<영화의 이론>>, 17쪽)라는 벨라 발라즈의 말처럼 영화는 대중이라는 매개를 통해 산업/예술의 겹으로 발전되는 과정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사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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