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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이 책은 목회성공담도 아니고 미담도 아니다. 그렇다고 실패담이나 회개의 글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개척목회를 설명하고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가를 되짚어보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찾아들어가려는 책이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어버린 채 세상의 기준과 철학에 휩싸여서 목회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목회와 교회의 본질을 제시함으로써 교회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작은 교회가 더 바람직하다는 말이 아니라 작은 교회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목회의 원리가 모든 교회에 적용되어야 하겠다는 간절한 바람인 것이다.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듯한 한국교회에 한 줄기 빛이 되기를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드린다.
🏫 저자 소개
김완섭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였으며, 2002년에 서울 거여동에 새소망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회하고 있다. 1990년에 도서출판 이레서원을 설립하여 20여년 간 운영한 바 있으며, 목회 중에 국토순례전도단을 조직하여 4년 동안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전국전도를 완주하였고, 지역문화사역을 위하여 한국오카리나박물관을 설립하였으며, 지역교회연합을 위하여 거마지역크리스천커뮤니티를 섬기고 있다. 국토순례전도를 하면서 수년 간 받은 사명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으며, 급격하게 무너져가는 기독교신앙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기독교신앙회복연구소를 만들고 체험을 통하여 온전한 변화에 이르게 하기 위한 예수님체험 제자학교, 성도들을 위한 예수마음 제자훈련과정을 준비해나가고 있다.
저서로는 「그리스도인의 개혁 : 출발점」, 「그리스도인의 회복 : 정체성」, 「그리스도인의 성화 : 두 번째 만남」, 「보이는 복음, 이웃사랑」, 「복음의 통로, 비움과 나눔」이 있다.
📜 목차
제1부 교회개척 5년 뒤집어보기
제1장 새소망교회 개척의 준비과정
교회개척을 준비시키시다. / 교회 장소를 위한 기도 / 간략한 이력 / 설립 이전 목양의 편지들
제2장 새소망교회 설립의 은혜
설립예배와 어린이교회 / 오직 전도 / 개척교회와 문서전도 / 매주 한두 명씩 출석 / 개척 원년의 나날들 / 2002년 목양의 편지들
제3장 비전을 이루어가는 해
더욱 강화되는 전도의 열심 / 열린찬양예배 / 지역섬김 프로그램 / 말씀사역과 교회조직의 발전 / 2003년 목양의 편지들
제4장 교회가 단단해지는 해
교회를 흔드는 세력 / 교회의 상황과 담임목사 / 담임목회의 여유를 찾아새소망교회의 상황 / 2004년 목양의 편지들
제5장 사역이 확장되는 해
거여동 프로젝트 / 거여동 강단교류 / 거여동 크리스천커뮤니티 / 예수전도단 훈련과 바빠진 사역들 / 열린찬양예배의 변화 / 2005년 목양의 편지들
제6장 두 번째 개척의 해
교회의 전체적인 상태 / 새소망교회의 두 번째 개척 / 거여동 목회자부부기도모임 / 2006년 목양의 편지들
제2부 작은 교회에 길을 묻다.
제7장 먼저 목회의 개념부터 바꾸자.
부흥이 목회의 목적이 아니다. / 교회의 목적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 단 한 마리 양이라도 잘 키워야 한다. / 교회가 곧 복음이어야 한다. / 교회의 목적은 지역을 섬기는 것이다.
제8장 전도의 개념을 복음전달로 바꾸라.
초청전도의 한계 / 전도의 개념은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 너무 축소된 복음 / 복음 설명자로 키워야 한다. / 스스로 확신을 가지게 만든다.
제9장 일대일 신앙훈련에 집중하라.
신앙훈련 프로그램에 대해서 / 목회자는 보모이지 교사가 아니다. / 가장 효율적인 신앙훈련 / ‘제자훈련’ 유감
제10장 충분한 분량의 신앙훈련을 준비하자.
적어도 7년의 계획을 세우자. / 성경통독 프로그램을 생각한다. / 일대일 양육중심 신앙훈련이란 무엇인가? / 신앙훈련 기본프로그램 / 본질적 제자훈련 프로그램
제11장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선교공동체로서의 한국병원선교회 / 개방성이 문제이다. / 복음적 삶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 쪼개져야 한다. / 교회학교와 학생회를 위하여 / 가나안 성도들에 대해서
제12장 지역 속의 교회로 변화시켜라.
‘전도’라는 생각을 지워버려라. / 연합할 교회를 찾으라. / 교회 어깨띠를 하지 말라. / 진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 지역과 삶을 공유하라.
📖 책 속으로
“가장 이상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나는 지금 어떤 교회를 지향하고 있는가?” 아마 모든 개척교회 목회자들은 저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개척을 시작할 것이다. 나름대로 성경적이고 신학에 걸맞는 모습의 교회를 꿈꾸면서 온몸을 부딪쳐가며 헌신하고 일생을 주님께 내맡긴다. 나도 그랬다. 누구보다 성경적이고 본질적인 교회를 꿈꾸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열정을 다해서 헌신하였다. 그런 모습이 과연 나 자신에게 어떻게 비치겠는가? 먼 훗날 나의 사역을 뒤집어보기 전까지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목회,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나의 목회를 돌아볼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스스로의 평가가 가능해질 것이다. 나의 교회개척 5년을 뒤집어본다.
“만약에 내가 지금 다시 교회를 개척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목회를 펼치고 어떤 교회를 지향하겠는가?” 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이제부터 이야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복음을 삶으로 드러내는 교회다운 교회, 공동체로서 살아있는 교회, 일대일 신앙훈련이 중심이 되는 교회, 지역 속의 교회를 추구할 것이다. 그것이 성경적인 교회요 목회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닫는 데 20년이 걸렸다. 비록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인식부족이나 능력과 지혜의 부족으로 못다 한 이야기들을 하고자 한다. 한국교회가 이런 교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로 할 만한 준비도 거의 마쳐가고 있다. 한국교회의 변화를 갈망한다.
그러면 성경적인 목회는 무엇인가? 일단 부흥에 초점을 두지 않는 목회이다. 부흥과 성장이라는 생각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 비로소 성경적인 목회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교회를 부흥시키거나 성장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예수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기를 원하셨다. 곧 목회는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기 이전에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처럼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양들을 먹이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성도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복음이다.
그러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눈앞에 보이지 않고 만날 수도 없는 예수님을 사랑하려면 무엇을 하면 되겠는가? 어떻게 그 사랑을 보여드릴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식을 가르쳐주신 바가 있다. 베드로는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면서도, 예수님을 다른 모든 제자들보다 훨씬 더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실패하고 도망친 자신의 모습에 너무나도 실망해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다시 갈릴리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갔던 베드로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알고 계셨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땠을 것 같은가? 물론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을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기뻐하고 계셨다.
예수님은 겨우 열두 제자들과 몇 명의 여인들만을 제자로 남기셨을 뿐이다. 그런 제자들이 세상을 정복했다. 교회는 복음이다. 무척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어내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목회는 비현실적이고 교회부흥과 성장은 현실적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목회를 하면 힘이 들 때가 많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성공과 번영에 대한 목마름으로 지치고 힘이 빠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현실적인 목회를 하면 예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비현실을 현실로 바꾸는 사람들이 목회자들이어야 하고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예수님은 크게 기뻐하시고 현실적인 목회로 이끌어주신다. 주님께서 현실로 이끄시도록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 제자들도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세상을 정복할 수 있었다. 내 힘으로 더 크게 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목회를 하라. 그것이 진짜 복음이고 참 목회자의 길이다. 내가 하려고 하지 말자.
따라서 교회는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샘터가 되어야 한다. 복음을 복잡하게 해설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복음의 핵심은 사실은 단순하다. 본질도 결코 복잡하지 않다. 문제는 인간이 복잡할 뿐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한계가 너무나도 뚜렷하다. 결코 깨질 수 없는 장벽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복음은 단순하지만 인간의 그런 장벽들을 깨기 위한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설명을 한다고 해서 믿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설명과 함께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사람들은 자신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드디어 복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가능하면 많이 만들기 위해서 보이는 복음으로서의 이웃사랑과 나눔이나 섬김과 같은 삶의 모습으로 설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로써 설명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심령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다. 복음은 결코 복잡한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믿음만 있으면 복음 설명자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단순한 초청자로서의 전도가 아니라 동일한 복음 설명자들 중에서 탁월한 성도들이 있다. 그런 성도들은 전도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도록 격려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성도라도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방법이 복음 설명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복음의 설명자가 되면 생활이 바쁘다고 전도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노동을 하는 성도라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도들이 어떤 직업,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모든 경우에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면서 살아간다면 어떤 식으로든 전도의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전도하라고 강단에서 권면할 필요도 없어진다. 물론 성경적인 전도와 예수님의 전도 등 전도와 관련된 설교와 가르침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단지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강조하고 전도의 의무와 책임을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학력이나 남녀나 직종이나 살림의 형편과 관계없다. 성도들을 복음 설명자로 길러내기만 하면 부흥이 목적은 아니지만 교회는 부흥된다.
물론 효율이 전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효율적인 것을 다 폐지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효율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면 거기에서 하나님이 계실 자라는 사라져버리게 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적어도 성도들의 신앙훈련에 있어서는 가장 비효율적인 것이 가장 효율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오히려 성도들의 신앙훈련을 위해서는 오히려 비효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일대일 양육훈련이 가장 비효율적인 것 같아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극대화된 효율이라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 하겠다. 그러려면 목회자가 생각을 바꾸고 의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가장 효율적인 일대일 양육을 행하면서 가장 비효율적이라고 투덜거린다면 비록 방법은 가장 효율적인 일대일 양육이라도 그 효력이 제대로 나타나겠는가? 나타난다고 해도 끝까지 지속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우리 지역의 어느 한 교회나 목회자들의 모임에 오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실까? 아마도 열심히 전도해서 이웃 교회에 성도를 등록시키라고 하지는 않으실까 하고 상상해본다. 과연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실런지는 알 수가 없으나 적어도 그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어야 지역교회가 하나 되는 일이 부분적으로라도 가능해지지 않겠는가? 물론 이 말은 지역교회들의 하나 됨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때에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지역에 다른 교회가 없고 오직 내 교회 하나만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굳이 내 교회, 우리 목사 자랑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주민들이 어디에 교회가 있고 그 교회의 역사가 어떻고 그 교회에서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이고 담임목사와 늘 인사를 하고 담임목사의 가족들을 알고 성격이 어떤 것까지 다 안다면 굳이 우리 교회 목사님이 어떻고 교회가 어떤 교회이고 하는 일들을 홍보하거나 자랑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오직 그 교회의 목사와 성도들이 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주로 어떤 일을 행하는가에 따라 교회를 판단하지 않겠는가?
🖋 출판사 서평
교회는 예수님의 아주 소박한 말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이 말씀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고백을 드린 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남자만 오천 명이 모였을 때에 내리신 말씀도 아니었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육신이 썩어가고 있었던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신 기적 후의 일도 아니었다. 단지 예수님은 메시아시라는 위대한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신 것이었다. 더구나 베드로가 이 고백을 드렸던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은 당시 쾌락의 신인 판 신을 섬기는 제단이 있는 곳이었고 권력의 상징인 황제를 섬기는 신전이 있던 곳이었다. 우상들의 무리 한가운데에서 예수님은 아주 소박하게 교회를 세우셨던 것이다. 물론 설립예배는 성령님께서 강림하실 때 드려진 것이지만 예수님의 교회는 이미 개척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개척을 선포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오히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실 것이며 그리고 부활하실 것을 처음으로 밝히셨다. 그리고 그렇게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도 못하게 하시고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셨지만 오히려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기를 버려야만 한다는 말씀이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4-25) 교회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존재할 수가 없는 곳이고 주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어야 비로소 진짜 목숨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교회는 버리는 곳이고 부인하는 곳이고 잃어버리는 곳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2년 6월 1일에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서 새소망교회 설립예배를 드렸다. 내 나이 50세 때 일이었다. 전통적인 목회관을 따라서 오로지 교회 부흥에 모든 것을 걸고 건물에 임대해 들어온 날로부터 전도를 시작하였다. 물론 단순히 목회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한 일은 아니었고 거여동의 불신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인 것은 맞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오로지 부흥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으로 모든 열정을 전부 불태워버리는 목회를 시작한 것이었다. 교회는 부흥하기 위해서 존재하는가?
물론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성경적인 목회의식을 세워놓지 못하면 오로지 성도들의 숫자에 모든 것을 거는 목회를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의 목회의 현실인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의 개척 5년 정도의 목회는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한 몸부림의 세월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개척목회가 가치가 없다거나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을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냉정하게 뒤돌아보자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복음적인 목회라는 말인가?
이 책은 전체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교회개척 5년 뒤집어보기’는 개척 준비과정부터 만 5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그 당시 매주 주보에 실었던 ‘목양의 편지’들 중에서 목회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을 편집하여 실었다. 비록 부흥에 목적을 두기는 했지만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지역을 사랑하려고 노력했었다. 그 당시에도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많이 있었지만, 나 한 사람이라도 올바른 목회를 찾아서 하려고 노력했었다. 전통적인 개척목회 중에서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하여 목회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제2부 ‘작은 교회에 길을 묻다’는 개척 초기 5년뿐만 아니라 전체 목회 20년을 뒤돌아보면서 참된 목회란 무엇인가를 짚어보는 부분이다. 20년 목회의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나는 더 성경적인 목회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교회인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었고, 목회 후반부 5년 정도는 한국교회가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회복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연구하고 집필하면서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특별히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여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찾아들어가는 글로 목회 20년을 정리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면 해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그것을 찾아들어가는 것이 모든 시대에 대한 해법이며 대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목회성공담도 아니고 미담도 아니다. 그렇다고 실패담이나 회개의 글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개척목회를 설명하고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가를 되짚어보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찾아들어가려는 책이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어버린 채 세상의 기준과 철학에 휩싸여서 목회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목회와 교회의 본질을 제시함으로써 교회가 나아가야 할 진정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작은 교회가 더 바람직하다는 말이 아니라 작은 교회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목회의 원리가 모든 교회에 적용되어야 하겠다는 간절한 바람인 것이다.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듯한 한국교회에 한 줄기 빛이 되기를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