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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잔양이 내심 흐뭇한 심정에 고개를 끄떡거리고 있는동안
천천히 고개를 돌린 기연화가 약간 냉랭해진 목소리로 곽잔양을추궁했다.
" 흥. 요 삼일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셨죠 ? "
기연화의 앙칼진 목소리에
느닷없이 자신의 등줄기로 한방울의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전혀 깨닫지 못하고
곽잔양의 얼굴이 담화영을 대할때와 같이 약간 비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 헤헤헤 연화야 그것이 말이다 ... "
곽잔양이 평소처럼 자신의 질문에 구렁이 담넘어가듯이 넘어가려하자
기연화의 목소리가 더욱더 냉엄해졌다.
" 전 지금 검문지주로서 곽대장로님에게 묻는거에요.
그러니 변명하실 생각하지 마세욧 ! "
" 끄응. 그 그것이 ... "
며칠사이에 강서군웅대회를 제패하고 완연히 성장한듯한기연화의 냉갈에
곽잔양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사정설명을늘어놓기 시작했다.
***
군웅들이 일제히 비무대위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동안
담화영은 조금 다른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정심이 자신의 눈앞에서 사라진후부터
담화영은 예전의 영기를 되살리고 있었다.
천지와 통하고 있는 영기를 바탕으로 정심에게 패하는 광경을 보고서도
앞으로 나설수 없었던 백자연의 행방을 열심히 찾고있는 담화영의 입술이
점차 자신이 이중,삼중으로쳐놓은 거미줄속으로 기어들어오고있는
기연화에 대한 생각으로 흥겹게 비틀리고 있었다.
한편으론 영기를 움직여 백자연을 찾으면서 담화영은 생각했다.
클클클 어쨌든 연화 고계집애의 마음을 어느정도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놨으니,
이젠 슬슬 상처를 입고
지금쯤 마음이 공허해 있을 백가 계집애를 찾아서 살살 구슬려놔야 쓰것다 ! '
그때였다.
자신이 찾으려고 마음먹기만 하면 단숨에 무엇이라도 찾아낼수 있는 영기를 움직여
이리저리 익숙한 여인의 향기(?)를찾아
금검보의 영역을 들쑤시고 다니던 담화영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마왕이 본색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마계(魔界)가 열렸다 !
하지만 누가 ? '
마계란 천지조화에 의해 억겁
(=겁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헤아릴수없이 긴시간을 말한다)
의 시간마다 순환하는 우주구천중
인간계에 가장 가까운 이계인 연옥
(煉獄-인간의 사후에머무르는 중간계)
과 가끔씩 겹치곤하는 아수라
(阿修羅-불교에서 전하는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인간이상의 능력을가진 존재인 천룡팔부중 지하유계의 지배자)
의 세계를 말한다.
현실적으로 인간계에 마계가 열린다는건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담화영은 알고있었다.
자신이야말로 인간계엔 더 이상 존재해선 안되는 존재라는걸 ..
생각이 이부분에까지 이르르자 담화영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백가 계집애를 찾는것도 믈론 중요하지만 ....
끄응. 그래도 이렇게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한 구경거리를 놓칠수는없겠지. '
마음을 굳히자 담화영은 다시 생각했다.
클클클 원래가 마계에서 배회한다는 아수라에겐 절세미인들이 잔뜩 있다는데
혹시 이번기회에 인간계에서는 볼 수없는 절세미인을 만나게 될른지도 모르지. '
홀로 희희덕 거리던 담화영의 몸이
벌써 암향부동을 이용해 금검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관도위를 달리는 한줄기의 바람.
영기가 가리키는 방향을 쫓아 남창을 빠져나가는 담화영의움직임은
처음 기련산을 내려왔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수 없을만큼 빨라져 있었다.
기련산을 처음 내려왔을 때 까지만 해도
암향부동을 전개하는 움직임이 귀신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민감한 사람이라면어느정도 느낄수 있을정도의 기척은 일으켰는데,
지금 제법많은수의 사람들이 오고가는 남창의 관도위를
한줄기의 바람처럼 지나쳐가는 담화영의 움직임을 눈치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담화영의 이러한 변화는 어떠한 화(禍)라도 복(福)으로 바 꿀 수 있는
담화영의 특이한 능력에 기인한바가 컸다.
며칠동안 자신의 원영에 걸려있는 음양상충을 자신의 능력으로 해소시킬 방법을 강구하느라
체내의 모든 혈도와 조직들을 원영을 이용해서 모조리 헤집고 다닌까닭에
담화영은그동안 하늘과 통교(通交)된 상태에서
몸속에 축적되기만 했을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원초적인 잠능(潛能-잠재능력)
을 예전보다 훨씬 원활하게 사용할수 있게된 상태였다.
담화영이 발견한 잠능은 무학에서 말하는 선천지기(先天之氣)와도 전혀 다른 것으로
무학의 새로운 지평(地平)을 여는대발견이라 할수 있었다.
하지만 심중으로 굳게 자신의 유일한 수제자라 생각하고있는
(=수제자 본인이야 어떻게 생각하던 말던지간에)
기연화에게 조차 자신이 창안하고 발견해낸 수많은 무학의 비전들을
전혀 전수해줄 마음이 없는 담화영이고 보면,
이번에 발견한잠능역시 무림사(武林史)에 오직 담화영 혼자만이 깨닫고
사 장(死藏)될 가능성이 농후한 발견이기도 했다.
그러니 천지를 양단하는듯한 영기의 폭주를 쫓아갈수 있는몸을 갖추게된 담화영의 움직임을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고있는 시각으로 따라잡을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담화영은 일다경이 넘지않아 마계가 열려있는 야산앞에 도착할수 있었다.
웬지 친근하고 포근한 기운이 느껴지는
(=보통사람에겐 음산함과 귀기로 가득한)
야산으로 한걸음 발을 내딛는 순간
담화영은 느닷없이 하늘의 양광이 사라지고, 공간이 왜곡(歪曲)되는 것을 느꼈다.
담화영은 나직하게 키득거렸다.
클클클 난 또 마계와 인간계가 억겁에 한 번씩 있다는
공간윤회(空間輪廻)를 일으키나 했더니,
사실은 어떤 미친 술법사 녀석이 원한령(怨恨靈-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
활개치고 다니는 음지에다 결계를 펼친거였군. '
그러나 담화영은 키득거리는 중에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되었다.
이런 ! 이런 미친짓을 할만한 술법사라면 ... '
그리고 담화영의 예상을 뒷받침해 주려는 듯 그리 멀지않은 야산의 중턱에서
찬란한 검광과 함께 처절한 비명성이 터져나왔다.
" 크윽. 이 더러운 강시녀석들 ! "
한치앞이 보이지않는 어둠중에서도 대번에 수천구가 넘는듯한 강시들에 둘러싸인채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고있는봉두난발의 검객이
금검보에서 정심을 쫓아갔던 하유성임을알아챈 담화영은 크게 장탄식을 터뜨렸다.
하아~ 공동묘지에다 결계를 만들정도로 미친녀석이니
저순딩이같은 화산파의 어린아해가 당해낼 도리가 없었겠지.
하지만 저 바보녀석을 도와주지 않을순 없겠구나 ! '
담화영은 마왕이라 칭함을 받는 사마외도의 우두머리 답지않게
자신이 한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수제자라기엔 너무나 버르장머리없고, 귀염성이 부족한 기 연화를
절정의 고수로 만들어 준것도 따지고보면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였다.
그러니 ...
저놈을 장가보내 주겠다고 꼬득였으니, 여기에서 귀신밥이 되게할 수는 없겠지. '
하지만 ...
가만 ! 그냥 내버려뒀다가 저놈의 유골(遺骨)을 거둬다가
영혼혼례(靈魂婚禮)를 치뤄줄까 ? '
뒤의 생각은 참으로 담화영에겐 구미가 당기는 생각이었지만
제법 헌걸찬 기상을 가지고있는 하유성을 상사병에 빠뜨린 여인이 누구인지를
자신이 아직 모르고 있다는 것을 곧바로 생각해낸 담화영은
짐짓 입맛을 쓰게 다시며 어슬렁 어슬렁 무덤들이 밀집해있는
야산의 중턱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끼아악.
담화영이 들어선 까닭에 결계가 흔들리자
무슨일인가 싶어무덤사이를 지나쳐가는 담화영에게 다가들던 몇구의 강시들이
담화영의 머리에서 일렁이고있는 장대한 영기의 기운에놀라 후다닥 달아났다.
자신을 보고 달아나는 강시들의 기묘한 행동을 여상스럽게스쳐보내며
발길을 재촉한 담화영은 어느새 야산의 중턱에올라
일생일대의 혈투를 벌이고있는 하유성의 처참한 몰골을바라보며 나직히 혀를 찻다.
쯧쯧쯧 제법 기본이 되어있는 놈인줄 알았더니
그저 얄팍한 검술에만 조금 소질이 있는 녀석이었군. '
담화영의 판단은 정확했다.
비록 화산파가 대표적인 황류계열의 도문이기는 했지만
삼국시대의 장각
(=삼국난세의 원인중 하나인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도인)으로부터 비롯된
태평도(太平道-중원도교의 시작이라 보는 학설이 있다)로부터 맥이 이어진
도문의 기본적인법술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만약 하유성이 화산파에서 전해지는 기본적인 파사의 법술만이라도 외울줄 알았다면
지금 이렇게 수천구가 넘는 강시들에게 둘러싸여
죽음의 위기에 봉착(逢着)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니 여러 가지 잔재주에 밝은 사람을 좋아하는 담화영이
한쪽팔이 떨어져나간 상태에서도
열심히 수중의 검만을미친 듯이 휘두르고있는 하유성을 바라보는 표정이
갈수록마땅찮게 변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참동안 하유성의 움직임을 지켜보고있던 담화영은 다시생각했다.
지금 당장 지혈을 하지 않으면 저놈 뒈지겠는데 ? '
그랬다.
검기를 일으켜 주변을 철통같이 봉쇄하고 있는 하유성의얼굴엔
이미 핏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파고들어오는 강시들을 베어넘기느라 담화영이결계에 들어온순간
강시에게 뜯어먹힌 자신의 왼팔목을 단단히 지혈할만한 시간을 하유성은 얻지 못했다.
재빨리 고통을 참으며 혈맥을 막았지만
검을 휘두를때마다점점더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많아지고있는 왼팔목의 상처때문에
하유성의 검기는 벌써 처음의 절반정도밖엔 위력을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유성의 검기가 약해지자
하유성이 쏟아내고 있는 피냄새에 광분하고있던 강시들의 공격이 더욱더 거세졌다.
내심 자신이 멋지게 하유성의 은인으로서 등장할 순간을천천히 재고있던 담화영은
한꺼번에 달려든 일곱구의 강시들을 여섯밖에 베지못한 하유성이
나머지 강시에게 목덜미를물어뜯기려는 찰라 보무도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하유성에게 모습이 보이지 않으려고
무덤뒤에 숨어있던 담화영은 모습을 앞으로 드러내자마자
한껏 목소리를 돋궈 수천구의 강시들을 향해 천마후를 토해냈다.
이것들아 당장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 "
담화영의 천마후는 같은 음공의 최정상(最頂上)이지만
불문의 사자후와는 다른 공효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마외도들을 굴복시키는 공효 !
그것이야말로 담화영으로 하여금 천하의 모든 사마외도들을 모조리 무릅꿀리고
전대미문의 마왕으로 군림케한 힘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담화영은 오십년전의 담화영이 아니었으니,
천지를 양단하는듯한 영기가 더해진 담화영의 천마후는
어둠의 존재들인 원한령이 빙의된 강시들에게도 절대적인 위력을발휘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담화영의 천마후에 잠깐동안 주춤거리던강시들은
자신들의 후각을 진동하는 하유성의 피내음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자신들의 무덤속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발이 성한 놈들은 펄쩍펄쩍 뛰어갔고,
하유성의 검기에 발 이 잘린 놈들은 두손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그리고 게중에양팔마저 부숴진 놈들은 몸을 데굴데굴 굴려서 자신의 무덤을 찾아갔다.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있는 기가막힌 광경에 잠시동안얼빠진 표정을 짓고있던 하유성은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을수없는 절세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담화영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에 얼굴빛을 우울하게 물들였다.
여인에 대해서만 박식한줄 알았더니 담형의 재주는 끝이없구나. '
여인들이 상대여인의 미모에 민감하듯이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고있는 사내들은 상대사내가 지닌 능력에 민감했다.
담화영의 진면목을 보지못하는 대부분의 사내들이 생각하듯
그저 여인을 호리는 재주가 탁월한 화화공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담화영이
자신을 죽음직전까지 몰아넣었던 강시들을 괴상한 수법으로 단번에 물리치자
하유성은 지금껏 자신을 이루고있던 뼈대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의 재주없음을 한탄하고 있기에는
하유성의 상세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자신의 누더기처럼 변해버린 옷자락을 잘라
물어뜯긴 자국이 선명한 왼쪽 팔목을 지혈하려는 하유성의 행동을
어느새하유성의 곁으로 다가온 담화영이 재빨리 막았다.
왜 ? 으악 ! "
***
자신의 잘려져나간 왼쪽 팔목을 잡아채는 담화영의 돌발적인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하유성은
담화영의 수장을 통해 일어난 지독한 음한기가
잘려나간 왼쪽 팔목을 순간적으로 얼려버리자
자신도 모르게 악물었던 이빨사이로 처절한 비명성을 토해냈다.
" 크으윽 ... "
하유성의 왼쪽팔목을 순간적으로 팔꿈치까지 음한기를 이용해 얼려버린
담화영의 두눈이요사스러운 푸른빛을 뿜어냈다.
좀 아플지도 모릅니다. "
담화영의 여상스런 말에 하유성은 치가 떨렸다.
한쪽팔을 완전히 얼려놓고 또 무슨짓을 하려고 ... '
그러나 담화영의 행동에 강하게 반발하려던 하유성의 상념(想念)은
곧바로 자신이 했던말을 실천에 옮긴 담화영의 행동에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퍼억.
하유성이 자신을 노려보던 말던간에
수장을 휘둘러 하유성의 완전히 얼어있던 왼쪽 팔뚝을 완전히 절단해버린 담화영은
미친 듯이 울부짖으려는 하유성의 뺨을 강하게 올려붙였다.
쫘악.
턱이 으스러질 정도로 강력한 담화영의 수장에 얻어맞고
고개가 완전히 반대편으로 돌아가버린 하유성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한방의 따귀로 대충 이성의 끈을 놓고 발광하려던 하유성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한 담화영은
그제야 자신이 내려친 수도(手刀)로인해 명검(名劍)으로 내려친 듯
매끈하게 잘려나간하유성의 팔뚝을 점혈하고,
꼼꼼하게 옷자락으로 칭칭감아고정시켰다.
담화영이 점혈하자, 거짓말처럼 잘려나간 팔뚝의 통증이완화된 하유성은
아직도 얼얼한 턱뼈를 남아있는 오른손으로끼워맞추곤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시독(屍毒)에 중독된 겁니까 ? "
강시들이 땅속으로 물러나자
공동묘지가 있는 야산을 떠돌고 있던 귀기와 사기들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원래가 결계란 지형지물이 뿜어내는 기운과 크게 관련이있었다.
귀기와 사기가 감소하자,
천지를 감싸안는 양광을 가리고있던 결계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곳저곳에서 구멍이뚫리기 시작한 결계의 틈바구니로
찬연한 햇살이 비춰들기시작했다.
주변을 가득 메우고있던 귀기에 영향을 받아 얼굴표정이음침하게 변해있던 담화영이
막 하유성의 물음에 대답하려는순간 일어난 결계의 파괴는
담화영의 얼굴을 오색찬란(五色燦爛)한 햇빛의 반사와함께
더할나위없이 아름답게 왜곡시켰 다.
하유성을 향해 빙긋이 미소지으며 담화영이 말했다.
하소협의 처방이 빨라서 팔뚝까지만 시독이 침범해 들어갔습니다. "
완연히 밝아진 주변의 생경스런 모습과는 도저히 어울릴것같지 않은
담화영의 모습과 여상스런 말투에
하유성은 부어오른 자신의 왼쪽 뺨을 어루만지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명색이 도문의 제자라는 녀석이 도교의 수행을 등한시해서
같은 도문의 제자에게 이런꼴을 당한것만해도 부끄러운일인데
상대방이 호의로 치료해 주려는 행동을 곡해하기까지했다니 ...
정말 나는 사문을 욕되게하는 제자로다 ! '
명문정파인 화산파에서 길러낸 장문제자답게 자신의 고통과 좌절에 분노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서뉘우치는 하유성의 모습에
담화영은 나직하게 자신의 혀를찻다.
아쉽다 아쉬워 ! 바보 정파놈들의 변변치못한 전통과 규율에 물들지만 않았어도
제법 강호를 떠들썩하게 할만한 녀석이 됐을수도 있었을텐데 ... '
도통 사내들에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담화영이지만
기연화를 만난이후 처음보는 기재라 할 수 있는 하유성의 빠른 깨달음과
곧이 곧대로 자신의 말을 믿어버리는 순진함에는 호감이 가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사내에게 느끼는 호감이라 야
담화영에겐 기껏해야 미인들의 한 번 눈웃음만도 못한 것이었다.
잠깐동안 하유성의 썩 괜찮은 재질(才質)에 마음이 흔들렸던 담화영은
잠시잠깐동안 엉뚱한 생각을 품게되었다.
이놈이 그 천둥벌거숭이같은 술법사 녀석을 놓쳤으니 어떻게한다 ?
그렇지 ! 이놈이 외팔이가 됐으니
무림중에 몇명없을 무적의 외팔이 검객을 한명 만들어 볼까 ? '
그자신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지만,
소림사의 무명승에게속아넘어간 이례로
담화영은 신통력이나 술법을 부리는 중이나 도인들에게
증오의 감정과 함께 약간의 꺼리낌을 동시에느끼고 있었다.
그러한 기분은 실제로 수행이 반신지경(半神之境)에 올랐으면서도
인간계에서 미련을 못버리고있는 담화영만이 느낄수 있는 기묘한 감정이었는데
신선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원앙이 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여기는 담화영에게있어
천에하나, 만에 하나라도 자신을 등천시킬지도 모르는 능력을 가지고있는
겁대가리를 상실한 술법사인 정심의 존재는 목에걸린 가시처럼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래서 요근래 검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기연화가
무조건적으로 맹신(盲信)하고있는 검문지검을
박살내기위해만들어놨던 일초의 검법을
하유성에게 전수해주기로 담화영은 마음먹었다.
클클클 이놈의 근골이 제법 괜찮으니 이걸 익히게 한후에
그 청성파의 술법사 녀석이 있는곳을 조용히 귀뜸해 준다면 ... '
마음을 먹자마자 담화영은 특유의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하유성을 꾀는 작업을 곧바로 시작했다.
그런데 하형을 이렇게 낭패하게 만든자는 누구지요 ? "
짐짓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듯한 담화영의 의뭉스런 물음에
하유성은 자신의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자는 ... "
청성파와 같은 구대문파에 속해있는 화산파의 장문제자가분명한 하유성을
사지로 몰아넣는 극악무도한 짓을 꺼리낌없이 해치운 정심의 발걸음은
흡사 뒷산이라도 산보같다온 듯가볍기 그지없었다.
금검보를 들어서며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정심은
갑자기 묘한 분위기에 휩싸여있는 금검보의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난이 심한 것을 제외하곤 시정을 떠도는 고아에서
일약강서성 제일의 문파인 청성파의 장교진인인 청심진인의 제자로 발탁됐을 정도로
뛰어난 천품을 지닌 정심이었다.
한시도 가만있지를 못하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던 정심은 곧바로 깨달을수 있었다.
히히 ...거릴때가 아닌 것 같은데 ? 이자식들이 이제보니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잖아 ! '
재빨리 머리를 굴리던 정심은 지금껏 무림의 큰어르신네처럼 대하던 자신을
이제와서 별 희한한 놈을 다보겠다는 듯이
확연히 달라진 표정으로 흘끔거리기 시작한 금검보내 무림인들의 행동이 의미하는바를
어느정도 정확하게 짚어낼수 있었다.
뭔가 일이 터졌구나 ! '
마음이 급해진 정심은 벌써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강서군웅대회의 우승자가 가려졌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로 하지않았을 행동을 했다.
즉 정심은 비무대가 있는 연무장을 향해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휘익.
하유성의 검기를 막아내느라 여기저기 구멍이 나있는 청포를 휘날리며
절정의 초상비를 펼친 정심은 금새 연무장에 도착할수 있었다.
그때였다.
연무장에 들어서자마자
멀리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비무대쪽으로 고개를 쭈욱 뽑고서
이리저리 살펴보던 정심을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딜갔다 왔느냐 ! "
정심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면서도 꺼려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길게 뽑았던 목을 자라처럼 잔뜩 움츠렸다.
사 사숙조님. "
항상 자신을 부드럽게 바라보던 유진청의 냉랭한 모습에
정심은 일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크게 잘못됐다는것을 직감할수 있었다.
" .... "
십년만의 대업이 모두 끝난후에야 나타난 정심에게 크게화를 내려던 유진청은
정심의 꽤나 의기소침(意氣銷沈)한 모습에 나직하게 한숨을 토했다.
일단 거처로 돌아간후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자. "
금새 노화를 억누른 유진청이 말하자
정심이 비무대쪽을흘끔 곁눈질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 저 나머지 비무는 어쩌고요 ? "
가자 ! "
" 예. 알겠습니다. "
삭풍이 부는 듯 단호한 유진청의 일갈에 엉겁결에 큰목소리로 대답하고
길게 드리워진 유진청의 커다란 그림자를 쫓아가는 정심의 두눈이
평소와같은 활기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
철이 들고부터 한 번도 검문의 주변 백여리를 벗어나 본적이 없었던 수연에게
강서성 제일의 성읍인 남창으로 향하는길은 무척이나 멀었다.
다급하게 검문을 떠나느라 수중에 은자를 얼마 못 챙겨나온 수연은
돈을 아끼기위해 수레나 말을 빌리지 않은탓에
등에다 자신의 키보다도 커보이는 보퉁이를 단단히 비끌어 메고는
남창으로 뻗어있는 관도위를 터벅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본래 검문이 위치해 있는 안문현과 남창간의 거리는 기껏해야 사백여리에 불과했다.
보통의 강호의 고수라면
하루밤낮으로 경공술을 펼쳐서 뛰기만해도 도착할수 있는 거리였지만,
검문의 제자답게 내공이 부족한 관계로 장거리(長距離)를 뛰지 못하는 수연에게
사백여리라는 거리는 최소한 사흘밤낮은 꼬박 걸어야만 당도할수 있는 거리였다.
게다가 수연은 엄밀히 말해서 강호초출이나 마찬가지인 처지였다.
길을 가다가 방향이 갈라지는 교차로(交叉路)가 나올때마다
주변을 오고가는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무창으로 가는길을물어물어 방향을 정해야했던 수연의 발걸음은
그래서 더욱더딜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무창에 도착했을 때쯤이면
벌써 기연화가 무창을떠났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하면서도
잠시도 쉼없이걸음을 옮기며 수연은 생각했다.
아아 벌써 아가씨가 검문을 떠난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난 아직도 무창에 발도 들여놓지 못했으니, 이일을 어쩌면좋지 ?
어서 빨리 아가씨한테 장로님들의 죽음을 알려야 하는데 ... '
생각이 검문십일장로들의 처참한 죽음에 이르자
그동안 잠시도 쉬지않고 운탓에
벌써 오래전에 눈물이 말랐다고 생각했던 수연의 두눈이
또다시 토끼눈처럼 빨갛게 충혈됐다.
평화롭던 검문에 겁화가 덮친것은 기연화일행이 검문을 떠나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후의 일이었다.
수연은 평소와같이 문하제자들이 대부분 흩어져버린 와중에서도
그나마 남아있던 몇 명의 문도들에게
자리를 비운 곽잔양을 대신해서
자신역시 오랫동안 배워 완벽할 정도로 체득하고 있는
삼재검의 투로를 반복해서 교육시키고 있었다.
강호를 떠도는 삼류의 무림인조차 사용하기를 꺼려한다는삼재검이었지만,
항상 단순하고 반복적인 투로와 수련을 중시하는 것이
검문지검의 기본이라는걸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수연의 독려(督勵)는
의외로 진지했다.
자고로 가르치는 사람의 자세가 진실되고 진지하면
배우는사람의 자세역시 조금쯤은 진지해지는 법이었다.
배움이 더딘 자신들을 듬성듬성하게 가르치던 곽잔양과는달리
자신들을 가르치는데 열과 성의를 다하는 수연의 지도에
문도들은 제각기 백번을 휘둘러도 안되는 동작일망정
열심히 검을 휘둘러 보답하고 있었다.
" 하앗 하앗 .. "
내공이 없는 관계로 중기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제법 옹골차게 기합성을 토해내고 있는 문도들을 바라보며
수연은 살포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수연이 미소짓자 수연에게 잘보이기위해
앞다투어 삼재검을 연마하고 있던 문도들의 얼굴이 일제히 붉게 물들었다.
그러자 자신의 미소 때문에 검끝을 멈춰버린 문도들의 행동을
아침부터 계속된 수련이 하기싫어 꾀를 부리는 것으로착각한 수연은
나직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삼재검의 투로를 각기 세차례씩 연습하셨으니 이제 조금쉬었다 하세요. "
느닷없이 검문에 나타난 대사형 담군명(?)이란 작자의 절세적인 외모에 좌절하고
검문을 떠나는 무리가 늘어나는 와중에도
차마 검문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던 수연의 눈부신모습에
넋이 빠져있던 문도들은수연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더욱더 자신들의 안색을 붉혔다.
' 아름답다 ! '
누구하나 감히 앞으로 나서서 말하진 않았지만 문도들의내심은
모두 수연에대한 연모지심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있었다.
그러나 가을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사랑의 향기가 꽃잎처럼흩날리던 검문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휴식시간을 이용해서 목을 축이기위
해 뒷산과 이어져있는연무장의 뒷편으로 흐르는 개울쪽으로 걸어가던 수연은
느닷없이 검문의 대문쪽에서 들려온 폭음성에 얼른 자신의 몸을날렸다.
휘익.
역시 폭음성을 들었는지 놀란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문도들을 제치고
신속하게 연무장을 가로질러 검문의 대문앞에내려선 수연은
자신의 눈앞으로 보이는 광경에 고운얼굴을크게 찌푸려졌다.
검문의 대문은 삼백년의 전통을 말해주듯 제법 위풍당당한크기였지만
그것에 어울리지않게 꽤나 오래전에 황금빛으로칠해놓았던 색칠이
군데군데 벗겨졌을 뿐더러 전체적으로 빛이 누렇게 바랜 모양새가
그리 보기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거대한 크기와 두께를 자랑하던 검문의 대문이
자신의 눈앞에서 산산조각난 광경에 직면한 수연은
혈수삼랑의 목을 날려버렸을때를 제외하곤 꺼내본적이 없었던연검을
자신의 요대에서 재빨리 뽑아들었다.
채앵.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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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읽었읍니다
잘 보고갑니다
잘봅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