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3: 4. 길 가에 떨어진 씨 5. 흙이 얕은 돌밭 6. 해가 돋은 후
마 13: 4. 길 가에 떨어진 씨 -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 뿌릴 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
1]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길 가(*, 파라 텐호돈)를 직역하면 '길을 따라'가 된다.
이는 밭고랑 사이를 따라 만들어진 길을 가리키는데 이 길은 뭇사람들의 발길에 의해서 단단하게 다져진다. 본문에서는 이 길이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청중(audience)을 의미한다.
'길가'의 결정적 특징은 마음이 굳어져 새로운 씨가 자신의 내부에 뿌려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결국 인간 영혼이 복음으로 대표되는 새 진리에 대하여 처음부터 철저히 배격,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1) 그 이유를 다음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의식적 원인
자기 자신의 경험이나 학식만을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만을 고집하는 교만과 독선이다.
② 무의식적 원인
이 땅에서의 삶이나 목숨보다는 영생의 문제라고 하는 복음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채 깨닫지 못하여 복음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경솔한 무지와 부주의한 태만에 의한 것이다.
(2) 길의 의미
2] 새들이 와서
팔레스타인에는 삼백여 종 이상의 새가 있다.
(1) 흔한 새가 '참새매'이다.
레 11: 16과 신 14: 15에서 부정한 새로 분류된 이 새는 유대 땅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 레 11: 16 - 타조와 타흐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 신 14: 15 - 타조와 타흐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2) 새(Fowl)의 의미
히브리어 '치폴'과 헬라어 '페티이논, 프테논'은 "날개 있는"의 뜻이다. 영어 역본에서는 fowl과 bird로 나온다. 주로 새는 작은 새를 말하는데 "참새"나 그 종류로 볼 수 있다.
* 시 91: 3 -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비유적인 의미로
* 약 3: 7-8 –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다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영어에서 'fowl(새)'의 용법은 16세기 이래 급격하게 변하여 일반적인 뜻으로 사용하지 않고 'bird'가 몇몇 특별한 경우에 즉 집 닭에 대한 대중적인 표현 등 외에는 모두 그것을 대신하였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이 새를 염두에 두셨는지는 정확지 않다.
그러나 새에 의해 상징되는 악한 자, 사탄은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으면서, 복음의 씨앗을 그 자신의 내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방치(放置)하고 있거나 나중 일로 미루어 지체하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는 진리를 경험할 가능성을 갖지 못하게 하는 자이다.
인간이 받아들이지 않은 복음의 씨앗은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들에 의하여 신속히 제거된다는 사실을 암시받을 수 있다.
길가 밭과 같은 사람은 씨앗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거부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선과 악, 하나님과 사탄, 천국과 멸망의 길이 판가름 나는 결정인 것이다.
3] 먹어버렸고
먹어 버렸고(*, 카테파겐)는 '철저하다'는 뜻의 '카타'(*)와 '먹다'는 뜻의 '에스디오'(*)의 합성어로 조금도 남김없이 완전히 먹어치워 버렸음을 나타낸다.
마 13: 5. 흙이 얕은 돌밭 -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
1]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팔레스타인에서는 매우 흔한 지형으로, 석회석 지층 위에 얇은 지표가 형성되어 있어서 자연히 바위의 온기(溫氣)에 의해 뿌리가 쉽게 나오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뿌리가 계속 성장할 수 없는 곳을 가리킨다.
돌밭은 사람들이 진리를 단순하고도 피상(皮相)적으로 이해하는 자들을 대표한다.
흙(Earth)은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바위가 부스러져 생긴 가루인 무기물과 동식물에서 생긴 유기물이 섞여 이루어진 물질을 말한다.
성경에서 흙은 사람과 여러 가지 동물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 창 2: 7, 19 –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타락한 후 사람은 죽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 창 3: 19 -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 시 146: 4 -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뱀은 저주를 받아서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다.
* 창 3: 14 -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창 2: 7)은 인간의 전인격적인 창조에 관해 기술한 창 1: 26-27과는 달리 본절은 특별히 인간 육신의 창조에 관해 기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흙(아파르 민 하아다마)은 직역하면 '땅의 티끌', 즉 '먼지'란 뜻이다. 이처럼 인간 육신의 구성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영혼을 떠난 인간의 가치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한다. (창 3: 19).
* 벧전 1: 24 –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또한 흙은 그릇이나 벽돌 등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 출 1: 14 -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 나 3: 14 - 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대비하며 너의 산성들을 견고하게 하며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산발랏 등은 “소화된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느 4: 2)라며 성벽을 재건하는 유다 사람들을 비웃었다.
또 이삭을 시기했던 블레셋 사람들은 흙으로 이삭이 팠던 우물을 막았다.
* 창 26: 15 -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2]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흙의 얕음은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신앙 인격의 천박성 또는 경박성을 매우 효과적으로 형상화시켜 주는 표현이다.
이런 자들의 특징은 그 행동은 빠르나 지속적이지 못하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극도의 속도와 거대한 분량만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의 심성이 표피화 되어가며, 기계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돌밭 유형의 사람들을 더욱 빈번하게 만나고 발견할 수 있다.
복음의 진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영적 토양이 부족한 상태에서 선한 목적을 추구한다 해도 열매를 거둘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 결과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표피화(表皮化)된 인간 심성과 경박함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마 13: 6. 해가 돋은 후 -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
1]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1) 해(sun)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때 넷째날에 만드신 것으로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는 광명을 말한다.
* 창 1: 16 -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이것은 성경에서 시간과 방향의 측정 기준으로 사용되었다. 즉 해가 지는 저녁에서부터 해가 떠오르는 아침을 하루의 기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상징적으로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이 계시는 영역을 해 위로, 하나님 없는 인간의 영역을 해 아래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 전 1: 3 -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 전 2: 17-18 – 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18 내가 해 아래에서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이에게 남겨 주게 됨이라.
하나님은 해와 달 등을 천하 만민을 위해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미혹되어 섬기지 않도록 엄금하셨다.
* 신 4: 19 -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고대에서는 대부분 해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그것은 최고의 신으로 여겨졌다. 애굽에서는 태양신인 라 또는 레(Re)신을 숭배했는데 자신들의 군주인 파라오(바로)를 태양신과 동일하게 여기기도 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해가 정의의 신(샤마쉬)의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태양을 숭배하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곤 하였다.
* 왕하 23: 11 – 또 유다 여러 왕이 태양을 위하여 드린 말들을 제하여 버렸으니 이 말들은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의 근처 내시 나단멜렉의 집 곁에 있던 것이며 또 태양 수레를 불사르고
팔레스사인의 도시 중 벧세메스는 태양의 집이란 뜻이고, 엔세메스는 태양의 샘이란 뜻이다. 해는 상징적인 의미로도 많이 쓰였다.
* 시 84: 11 -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 시 19: 5 –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식물은 뿌리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영양분도 필요하지만 태양열도 필요하다.
태양열은 탄소동화 작용 등을 통하여 식물의 생장에 결정적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흙이 씨로 비유된 복음을 받아들이는 영혼의 상태를, 뿌리가 씨(복음) 자체에서 나온 생장력을 가리킨다면, 해는 복음의 씨가 계속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각종 연단과 훈육을 가리킨다 하겠다.
씨를 뿌리는 행위가 단회적인 반면 해는 계속적인 에너지 공급 행위, 즉 일반적 신앙생활을 통한 신앙 훈련을 가리킨다.
(2) 해가 돋은 후
'해가 돋은 후에'는 '순간적 감격이 끝나고 신앙인이 되어 일상적 신앙생활이 시작된 후에'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7절의 가시와 비교하면 둘 다 땅 위에서 연단(鍊鍛)을 준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해가 응당 치러야 할 운명을 가리킨다면 가시는 제 욕심, 염려에 의한 불필요한 시련을 가리킨다고 보겠다.
(3) 밭은 인간의 영혼 상태의 상징이다.
얕은 돌밭은 결국 껍데기는 부드럽지만 그 속은 아직도 채 깨어지지 않은 완악한 상태의 심성을 지닌 사람을 가리킨다.
즉 겉마음은 경박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 속마음은 성령에 의하여 부서지지 않고 자기 아집과 주장으로 가득한 상태의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밭으로는 복음의 뿌리가 내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관성과 성실성 그리고 끈기가 요구되는 신앙생활이 시작되어 해, 곧 시련이 봉착하게 되면 복음의 씨는 말라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자에게는 영적 소망을 기대할 수 없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옥토를 찾읍시다.
💖보좌의 능력과 축복을 가진 자의 지혜로운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도 멋진 날 되시길 바랍니다.💖
옥토를 찾읍시다.
강해 설교 감사합니다.
옥토를 찾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