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임산부가 아니시면 자리를 비워 주시기 바랍니다”
[김동규의 나는 꼰대로소이다]
세파 견디는 청년들 덕에 무임승차하는 꼰대의 고민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 입력 2023.05.06. 03:00 조선일보
평소에는 승용차로 출퇴근했는데 저녁 회식이 있거나 눈길이 미끄러울 때는 시간이 다소 더 걸리더라도 지하철을 이용했다. 그날도 무슨 일 때문인지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다. 복잡한 객차 안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순간 젊은이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처음 경험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다. 주위 시선까지 집중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50대의 나이에 비해 이마가 훤하긴 해도 스스로는 건강을 자신하고 있는 터여서 엉겁결에 “괜찮다”며 사양했다. 학생은 굽히지 않고 몇 차례 더 권하다가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빈자리만 덩그렇게 남았고, 말끄러미 지켜보던 어떤 이가 곧바로 비집고 들어와 앉았다.
일러스트=한상엽
자리를 양보받을 만큼 늙어 보이나 하는 씁쓸한 속내보다 “고맙다”며 앉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후회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선의가 거부당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멋쩍어하는 학생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마음 씀씀이를 헤아리지 못한 속 좁은 꼴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약속 시간 맞추기가 편하고 특히 초행은 운전이 부담스러워 요즈음은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아직 웬만한 거리는 객차 내에 서 있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빈 좌석이 눈에 띄면 찾아가 앉는다. 과거에 젊은이의 호의를 거부한 도도한(?) 성깔도 세월의 무게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하지만 경로 우대증을 손에 쥔 아내는 남편과 달리 거리낌 없이 경로석을 찾는다. 혼자 앉기 민망한지 애꿎은 사람의 손목을 잡아당기기까지 한다. 마지못해 앉기도 하지만 멀지 않은 거리는 아내의 권고를 무시한다. 일반석에 빈자리가 있으면 앉고 아니면 약간 힘들어도 선 채로 있는 게 속이 편하다.
지하철에는 핑크빛의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돼 있다.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임신 초기 여성을 위해 자리를 비워 놓자”는 방송이 나오기도 한다. 출퇴근길 콩나물시루 열차에서 비어 있는 분홍색 좌석을 보면 아직 시민 의식이 살아 있다는 생각에 흐뭇하다. 반면에 자리가 넉넉한데도 간혹 배려석에 앉은 심술 맞은 남자 승객을 보면 달려가 한마디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배려석의 옆자리에 앉아 짐을 배려석에 놓는 얌체족도 있다. 임신한 여성이 비켜 달라면 치워주겠다는 배짱으로 짐작되는데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50대 초반쯤 됐을, 부부로 보이는 건장한 남녀가 지하철에 타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마침 임산부 배려석과 바로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줌마’께서 재빠르게 배려석으로 달려가 앉더니 남성의 옷자락을 붙잡고 옆에 앉으라고 채근한다. 혹 있을지도 모를, 배려석에 앉았다는 무언의 비난을 오롯이 본인이 감당할 테니 걱정일랑 붙들어 매고 앉으라는 뜻으로 보인다. 남성이 꺼림칙한 듯 머뭇거리는 사이에 다음 정거장을 앞두고 마침 빈자리 옆 승객이 내렸다. 배려석에 앉아 있던 여성이 옳다구나 하고 재빨리 옆자리로 옮기면서 동반 남성을 올려다보며 새로 생긴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굳은 표정의 남성은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속으로 쓴웃음이 나왔다. 남녀 모두 일말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는 행동거지가 그나마 위안거리가 됐다.
얼마 전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한 색다른 뉴스를 접했다. 멀리 광주에서 날아온 소식이다. 임산부 배려석에 승객이 앉으면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셨습니다. 임산부가 아니시면 자리를 비워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가 자동으로 나온다고 한다. 소리가 나면 주위 사람들이 쳐다볼 것은 뻔한 이치다. 따가운 시선에 슬그머니 일어나는 여성도, 화들짝 놀라 줄행랑을 놓는 남성도 있다고 전한다.
배려를 안 한다고 망신 주는 일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조금 과한 측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초기의 임부 보호를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청년은 약자와 어르신을 배려하고 노약자는 청년의 따뜻한 마음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정겨운 모습이 일상이던 때가 그립다. 만원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받은 꼬부랑 할머니께서 안도의 한숨과 함께 무거운 책가방을 끌어당기며 친손자 대하듯 “공부가 힘들지 않냐”고 묻는 옛 풍경이 눈앞에 삼삼하다.
이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아니 그런 문화 자체가 아예 없어지지 않았나 싶다. 더는 예의지국(禮儀之國)이 아니라는 한탄의 목소리가 있는 반면에 노약자석이 따로 마련돼 있는 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어쨌거나 붐비는 시간에는 노약자석도 만원이라 노인도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배려 안 한다고 나무랄 수는 없지만 힘겨워하는 어르신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다.
기운이 예전 같지 않은 어르신도, 지옥철 출퇴근길의 젊은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몸과 마음이 고단한데 상대방을 헤아리는 마음을 기대하기 어려운 건 당연한 이치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모두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지난날에는 어떻게 서로를 존중했을까. 각박하고 메마른 사회가 정이 넘치는 더불어 사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방도는 진정 없을까.
녹록지 않은 세파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젊은이 덕에 공짜로 지하철을 타는 꼰대가 뾰족한 해결책이 없을까 궁리해 보지만 묘수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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