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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일 코로나 시대, 성찰과 다른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2020 멈춘세상, 은평시민 목소리 포럼>이 열렸습니다.
여기에서 '안전'을 주제로 살림 유여원 상무이사가 발표한 내용을 공유드립니다.
삼삼오오에서 함께 읽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2020멈춘세상, 은평시민 목소리 포럼 발표문]
아픔, 나이듦과 함께 안심하고 살아가기 위하여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유여원 상무이사
안전이란 키워드와 지역 안에서의 커뮤니티케어(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통합적인 돌봄)를 연결 시켜서 발표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저는 무척 놀랍고도 즐거웠습니다. 안전이란 삶의 모든 현장, 서로 간의 관계, 지역, 제도와 정책, 그리고 사회와 국가 간의 연결에서까지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가치일텐데 그 중에서도 커뮤니티케어가 우리의 안전과 깊이 연결된 분야일 수 있다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안전하다는 느낌, 안심하고 살아가는 마음의 차원에서 보면, 나이듦과 아픔이라는 사람에게 무척 자연스럽고 모두가 겪는 경험에 대해서 다들 안심하고 살고 있지는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직 나이 들지 않았거나, 누군가를 돌볼 필요가 없었던 사람은 아직 나이듦과 아픔, 돌봄의 필요성과 그 무게에 대해 떠올린 적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를 겪어가면서 우리는 지역 사회의 건강과 안전의 연결고리에서 홀로 떨어져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방역 수칙을 잘 지키고, 개인의 위생을 더욱 철저히 하는 것이 나 자신 뿐 아니라 지역 전체의 안전에 직결되는 경험은 우리가 서로에게 건강에서의 보호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합니다. 동시에 아는 사람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더 쉽게 확산되는 전염병의 특성 상 주변의 사람들이 나에게, 혹은 내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두려움도 더 커졌습니다.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관계망이 오히려 약해지거나 단절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럴 때 우리는 사람 사이에,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가까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변화시켜야 하는지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관계의 새로운 조직방식이 필요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집단 면역, 군중 면역이라는 말은 집단 내에 전염병을 먼저 앓거나 예방 접종을 맞아 항체를 가진 사람이 일정 비율 이상이 되면 감염병이 통제되기 시작하고, 이렇게 되면 항체를 갖지 않은 사람에게도 예방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개념입니다. 공중 보건에서 특히 이 문제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예방 주사를 맞고 싶어도 맞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질환으로 인해 현재 몸이 너무 약하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혹은 임신 중이어서 접종이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 이러한 사람들도 예방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고 집단이 전체적으로 더욱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중한 집단 면역이라는 말을 공동체 면역으로 바꿔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내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예방 접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를 위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손을 씻고, 마스크를 끼는 것, 동선을 가능한 최소화하려는 노력 등도 공동체 면역에 중요한 참여입니다. 이미 질병을 경험한 사람들이 항체치료제 개발을 위해 혈액을 기증하는 것도 공동체의 면역을 넓히는 일입니다.
공동체 면역이라는 더 큰 가치를 지향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느슨해 질 수 있는 개인의 건강 행동의 지속성을 높일 뿐 아니라,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 도생해야한다는 두려움과 고립감에서 우리가 연결되어 서로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는 적극적인 상황인식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코로나가 공동체 면역을 형성하기까지, 그리고 이 변화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면 함께 안전할 수 있을 지 생각해봅니다.
코로나 전까지는 적절한 관계망 속에서 잘 살아오셨던 분들도 언택트(비접촉) 시대에 건강과 생활의 위협을 받는 일이 늘어납니다. 그것을 코로나 대응에 바쁜 공공기관, 보건소에서 다 알아채고 대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가 바로 공동체의 돌봄력이 빛을 발할 때입니다.
개인 위생과 방역을 강화하고, 우울한 마음과 고립감을 덜어내려고 노력하며 규칙적인 일상을 유지하여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일, 이웃과 친구들이 어떤 상황인 지, 뭔가 도움을 주거나 받을 일은 없을 지 안부를 묻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찾아내고 필요한 자원에 연결 될 방법을 모색하는 서로를 돌보는 일, 한 두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건강 자치력을 모아 함께 해결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함께 힘을 모아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해 왔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꼭 필요한 분들을 찾아가던 왕진을 멈추지 않는 의료기관과, 코로나 선별진료소에 자원활동을 나가는 의료진이 지역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훨씬 더 넓은 동선으로 움직이고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때에 비해 앞으로의 시기는 조금 더 작은 동선, 지역 사회 내에서의 관계망이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데 더욱 중요해 질 것입니다. 온라인으로도 더욱 잘 연결되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동시에, 오프라인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바로 연락할 수 있는 사이, 15분이면 달려와 줄 수 있는 거리의 든든한 소규모 관계망이 많이 필요합니다. 삼삼오오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모임이 지역사회에 수없이 많이 생기고, 모든 사람들이 어딘가에 자신에게 잘 맞는 적정한 밀도와 내용을 가진 소규모 관계망에 속할 수 있는 지역을 상상해 봅니다. 이러한 적당히 사적이면서도 조금은 서로를 돌본다는 목적을 공유하는 작은 모임 안에서 일상적으로는 건강한 관계를 통해 건강을 지키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서로의 삶을 지켜준다면 우리는 상황의 변화, 나이듦, 아픔에 대해서도 조금씩 더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역 내 생산과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한 사람들의 마음이 정책적으로 뒷받침되기도 합니다. 의료전달체계가 원활하지 않아 일상적인 진료도 아주 먼 동선으로 3차 병원까지 찾아가던 상황에서, 지역 내에서 나를 오랫동안 잘 알고 관계 맺었던 주치의가 지역 사회 감염 예방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 다시 주목 받고 있습니다.
대규모 시설의 효율성을 지향하던 돌봄의 영역도 강력하고 장기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돌봄 노동을 하던 사람들의 안전을 지킬 방법과 더불어, 공동생활의 적정한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멀리 있는 큰 요양병원, 요양원이 아니라 지역 사회 내에서 공동체 면역의 생산자이자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유연하고 기동성 있는 돌봄이 더욱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의 소규모 관계망이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은평 지역 전체의 커뮤니티케어와 돌봄사업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주 소수의 공공 돌봄에 진입하기 위한 기다림과, 대다수가 개인, 민간 중심의 제공자로 구성되어 있는 돌봄서비스의 영역의 현실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나이듦과 아픔을 돌보는 일에 큰 영향을 미칠 돌봄서비스가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될 수 있도록 우리의 미래를 위한 시간과 자원을 모으고 참여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돌봄력은 그 규모와 범위를 달리하면서 관계에서부터 사업까지를 같이 해낼 수 있을 때 실제적인 통합성과 온전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평에는 얼마 전 은평통합돌봄네트워크가 꾸려졌습니다. 건강과 돌봄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 먹거리 생협, 신용협동조합, 사회적경제네트워크, 지역 시민단체, 마을만들기를 주력으로 하는 곳 등 다양한 분야의 주민 조직들이 모여 나이 들고 아플 때에도 우리가 살아왔던 이 동네에서 나답게 살다가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는 몇 몇 조직이 모여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좋은 자원을 많이 모으고 투입할 수 있겠지만, 공동체가 가진 돌봄력과 자치력의 크기까지가 바로 우리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안심의 크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이웃에 지금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지, 관계망에서 떨어져 홀로 있는 사람이 있는 지 찾아봅시다.
낯설고 좀 민망하더라도 오래 알아온 사이의 관계에서도 나이듦과 돌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나는 어떤 돌봄을 받고 싶은 지,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지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그런 필요와 욕구가 서로 이야기되어지고, 그 이야기들이 모여 우리의 문제가 되었을 때, 우리는 함께 그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2020멈춘세상발표문_아픔나이듦과함께안심하고살기_유여원.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