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기질>
수년전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월간중앙>에서 특집으로 꾸민 '충청도 기질 대해부'를 아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평소에 인척.친척. 친구. 비즈니스 관계로 충청도 사람들과 교분을 하면서 충청도의 독특한 기질, 습관 그리고 풍습 때문에 혼자 웃고, 갸우뚱하고, 은근히 당하기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충청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누구나 느리다는 점을 꼽는다.
그러나 그것은 동작의 문제라기보다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서울의 택시기사가 공주에 갔는데 앞에 있는 충청도 차가 너무 느리게 가는 바람에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다음 4거리 빨간 신호등에서 앞차 운전사가 차에서 내려 느긋이 서울차로 다가 와서는 손짓으로 운전석 창문을 내려보라고 하더란다.
덩치가 우람해서 객지와서 한 대 맞고 가나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정작 그가 열린 창문에 대고 하는 말은 아주 느긋했다고 한다.
"그러케 바쁘믄
어저께 오지 그랬시유?"
충청도 사람들은 좀처럼 속을 보여주지 않는 더듬수가 있다는 것도 실상은 매사에 신중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여론조사기관에서는 충청도를 '무덤' 이라고 한다. 표준오차+-5%를 넘는다는 것은 조사결과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충청도 여론조사에서는 +-12%를 제시하기도 한다.
출구조사조차 믿기 힘들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충청도 사람들은 자기 속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물어보면 바로 대답하는 법이 없다.
한 번은 해미읍성을 거쳐 일락사를 거쳐 가야산 산행을 하면서 개심사로 내려오는데 산에서 만난 그곳 토박이 촌로에게 "이쪽으로 가면 개심사가 나옵니까?" 라고 물었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고는 "거긴 왜 가요?"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개그맨의 반 이상이 충청도 출신인 것은 그들이 이런 맞받아치기와 돌려치기 화법에 익어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홍성출신인 매제집에 놀려갔다가 그이가 여론조사에 응하는 것을 보았는데 좀처럼 속을 보여주지 않았다.
조사원이 대답을 유도하기 위해 "김소주후보가 좋습니까? 이탁주후보가 좋습니까?"하고 물었던 모양이다.
이에 매제의 대답이 명답이었다.
"다들 훌륭한 분이라고 하대유."
이 점 때문에 속타는 것은 사실 충청도 입후보 당사자들이다.
선거 운동을 하면서 노인회관 같은 데를 찾아가 애절하게 호소해봤자 끝까지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는다.
시무룩해하며 신발을 신고 떠나기 전에 뒤돌아서 다시 한 번 "이번에 꼭 부탁 합니다"라고 애원하듯 말하면 대답으로 돌아오는 것이 "넘(너무) 염려 말어."라거나 "글씨유, 바쁜디 어여 가봐..." 라고 한단다.
충청도의 이 간접적인 표현이 지닌 속뜻은
'넘 염려 말어"는 "찍어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충청도 사람 입에서 "글씨유"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틀렸다는 뜻이다.
더 큰 부정은 "냅둬유!"이고 완벽한 부정은 "절단나는 겨!"다.
충청도 사람들은 '아니다' '안된다'는 직접화법은 거의 쓰지않는다.
부정적인 말을 나타낼 때는 꼭 "소용읎슈!" 아니면 "틀렸슈!"다.
사람들이 이렇게 신중하다보니 충청도 에서는 공연이 잘 되지를 않는다.
연극 배우들은 관객 호응이 보이지 않아 죽을 맛이라 하고 대중음악에서도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아 아무리 인기가수 라도 충청도에 공연왔다가는 번번이 울고 간다고 한다.
한번은 중앙의 실력자가 충청도에 가서 역사관 개관식 축사를 했는데 끝난 후 박수는 커녕 식장 안이 물 끼얹은듯이 조용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도지사가 민망했든지 손을 잡으면서 "고마워유. 그런디 여기 사람들은 함부루 박수같은 건 안 쳐유. 미안하구먼!" 하고 답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충청도는 핫바지고 멍청도라는 인식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큰 오해다.
다른 도 출신 한 사람이 그곳에서 장사를 하다가 망하고, 홍성으로 와서 좌판을 펴고 장사를 했단다.
그리고서는 800원받을 것이면 900원 매겨 놓고 흥정이 들어오면 100원 깎아 줄 요량이었는데
"이거 얼마유?"라는 물음에 "900원유" 느릿느릿한 말씨로 "그래유"라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주고 사가더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장사가 쉬운 곳이 또 어디 있겠냐며 신이 났는데, 한 달이 지나서 손님이 한 명도
안 오더라는 것이다.
그 새 그 가게는 비싼 집이라는 소문이 다 나버린 것이다.
충청도 사람들은 일단 참고 당해주기는 하지만 두 번 당하지는 않는다.
충청도 표심이 어디로 가느냐를 예측할 때 정치인들이 이 점을 계산에 두지 않으면 낭패를 보게 된다.
충청도의 이런 기질은 보령 출신 소설가 이문구씨가 "관촌수필" "우리동네" 같은 소설의 다음 한 마디에 다 들어있다.
"이런 디서 살아두 짐작이 천리구, 생각이 두 바퀴 반이란 말여! 말 안허면 속두 읎는 줄 아나벼어!-"
-펌글-
첫댓글 거 참 딱 맞는 말 같기두 하구 아닌거 같기두 하구.
기양 모르면 넵 둬유... 지 알아서 할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