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글쓴이 For.20C.Boy
Part. 5 자석과 동전 2
1
오빠는 일주일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어머니는 눈물로 매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빠가 원했던 눈물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 오빠가 원하던 눈물은 매를 만드는 눈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을 가시화할 작은 렌즈였다.
지난 일주일동안, 어머니는 강한 척 했지만 사실은 애를 태우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손금들여다보듯 뻔히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체 했다.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리다가도 어느새 돌변하여 스스로 높은 산이려하고 험준한 바위려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우리는 속아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남이 뻔히 훔쳐보고 있음을 아는데도 당당히 써나가는 일기장과 비슷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도 보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남이 보고 있음을 아는데도 일기를 적어내리는 어머니의 자신감은 '나는 정의위에 서있다'라고 하는 굳은 믿음에 기인했다.
나는 어머니가 정말 정의위에 서있는 것인지 항상 의심했다. 그 점에서 오빠와 나는 동류였다. 나는 어머니가 말하는 정의가 싫었다. 사실 그것은 어떠한 정의라고 말할 만큼 정형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시시때때로 그 모습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 변화라고 하여 무지개처럼 색색가지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0아니면 1, 앞아니면 뒤의 단순한 선택의 기로를 준다거나, 파란색과 엷은 청자빛 하늘색사이의 흔들림같은 미약한 변화정도일 뿐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이 반고형 정의를 '소시민적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소시민적 발상을 허물기엔 내 손은 너무 여렸다.
오빠는 집에 돌아오고부터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오빠는 소리를 내지않은채 비명을 질렀고,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가도 풀썩 주저앉았다. 세상을 떠매고 날아갈 듯 힘차게 일어선 것 치곤 초라한 결말이었다. 또한 허공에다 주먹질을 양껏 하다가도 고개를 툭 꺾어내리곤 했다. 그것은 마치 새장속에 갇힌 새의 퍼득임과도 같은 것이었다. 오빠의 주먹질에는 대화의 단절이 가져오는 분노가 섞여있었다.
나는 그 분노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빠가 또다시 집을 나가 이번엔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집안은 완전히 발칵 뒤집히고 난리도 아니게 될 것이다. 어머니는 오빠를 지나치게 사랑했다.
"토할 것 같아."
오빠가 말했다. 집안에는 나와 오빠와 TV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시장에 가고, 아버지는 술을 마시러 나간 일요일의 무료한 초저녁이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TV에 집중했다. 지는 해 황금빛 양자들이 집안으로 쏟아지고, 그 벌겋게 달군 금색 빛나는 빛줄기 하나가 먼발치 거실 한켠까지 닿았다.
"토할 것 같아."
오빠가 말했다. 오빠는 TV를 싫어했다. 어릴 때부터 오빠는 TV를 잘 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가만히 앉아서 정신을 빼놓고 일방적으로 뭔가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은 확실히 오빠의 천성과는 맞지 않는 면이 많았다. 그 둘 사이에는 살진 닭과 배고픈 참새만큼이나 커다란 갭이 존재했다.
"토할 것 같아."
오빠가 말했다.
"토해도 돼."
내가 말했다. 오빠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토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우우웩하는 소리가 마음속으로 들렸다. 오빠는 토하지 않았다. 나는 양계장의 그 90%가 암에 걸려 고통받는다는 불쌍한 닭들을 생각했다. 양계장의 닭들은 보다 많은 알을 낳기위해 인간의 손에 의해 조작되었다. 한 바퀴 몸을 굴릴 공간도 없이 옴짝달싹도 못하게 갇힌채 성장호르몬이 든 사료를 먹고 밤에도 낮처럼 밝혀놓은 형광등아래에서 피묻은 달걀을 낳다가 끝내는 그 부작용으로 암에 걸리고 만다는 양계장닭. 닭들은 그들이 왜 그렇게 수많은 달걀을 낳아야하고 왜 그렇게 살을 찌워야하는지 몰랐다.
"토가 나오지 않네. 어딘가 막혀있는 것 같아."
오빠가 말했다.
"엄마는 오빠를 사랑하고 있어."
쓸데없는 짓은 하지마. 내가 말했다.
"알고 있어.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하지만 우리들의 엄마는 우리들을 사랑하기만 해서는 안 돼."
"웬만큼 소리를 지르지 않고서는 닿지 않을 거야. 그런 말은."
내가 말했다. 오빠는 시든 책을 쾅하고 덮었다.
오빠는 학교를 빠진지 일주일만에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보는 학교는 일주일전에 한 번 크게 요동치다 잠잠해지고, 다시 한 번 파문을 일으키는 듯 싶다가 어느새 죽어버렸다. 아이들은 오빠가 다시 학교에 나오는 것에 대해 그저 문제아 하나가 다시 학교에 나오네라는 정도로 생각했다. 오직 나만이 현실을 꿰뚫어보았다. 오빠의 가출은 오빠를 좀더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빠뜨렸다. 오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침일찍 일어나 여느때처럼 학교를 다녔지만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오빠는 지식과 사고의 절벽에 다다랐다.
오빠는 그 자신의 가출이 단순한 도피가 아니란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 증명을 하기위해서 불평과 불만이 아닌 구체적인 대책을 토해내길 강요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애시당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2
학교수업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학교에는 수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책에서만 언급하고 넘어갔던 가치관의 혼란, 아노미 상태라던가 급속한 사회 변동에 따른 사회해체 - 그러한 관념적인 모든 것이 농밀하게 존재했다. 아이들은 그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었다. 그러나 헤매는 것은 비단 아이들만은 아니었다. 나는 학원 모의고사 문제에 입시위주 교육이 낳는 폐해에 관한 문제가 난 것을 보고 지독한 역설을 느꼈다.
"토할 것 같아."
내가 말했다. 과학 시간이었다. 전자기 유도에 관한 실험을 하기위해 아이들은 모두 물리실에 모였다. 전자기 유도는 아주 간단한 실험이었다. 둥그렇게 돌돌 말린 코일에 자석을 찔러넣으면 그에따라 유도 전류가 생성되어 전구의 빛을 밝히는 것만 확인하면 되었다. 거기에 덤으로 전류의 방향을 체크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버벅대어 여기저기에서 선생님을 찾았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나와 같은 조인 다른 아이들이 모두 알아서 실험을 했다. 내가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하여도 누군가는 코일을 돌돌 말았고, 누군가는 꼬마전구를 연결했으며, 검류계는 그렇게 연결하는 것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나는 무기력해졌다. 보고서의 빈칸만 어영부영채우면 그것으로 실험점수는 만점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진빠지는 일인데 교실엔 나와 같은 아이들이 반도 넘었다.
"토할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정말이야? 빨리 화장실에 가봐."
은희가 말했다.
"화장실에 가도 토가 나오진 않을 것 같아. 어딘가 막혀있거든."
"그래? 정말 괜찮은 거야?"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조의 실험은 아주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조에는 경화가 있었던 것이다. 경화는 공부를 잘했다, 그 속이야 어떻든. 그녀는 실험하지 않아도 실험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조에 실험실패란 있을 수 없었다.
"토할 것 같아."
내가 말했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물이 흥건한 세면대끝을 부여잡고 토악질을 했다.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공연히 침만 뱉어냈다. 얼룩진 거울속에는 흔들리는 풀이 한 포기 있었다.
"괜찮아?"
은희가 말했다. 내가 물리실을 뛰쳐나가고 얼마 안 되어 바로 쫓아온 듯 했다. 그녀는 내 뒤에 가만히 섰다. 나는 거울로 그녀의 가는 눈을 쳐다보았다.
"왜 그래?"
"모르겠어. 하루 이틀일도 아닌데 왜 갑자기 이러는 것일까."
"뭐가 하루 이틀일이 아니야?"
무기력한 것 말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이 세상의 누구도 그런 말을 입밖에 꺼내어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흥건한 물에 흙이 진탕이 된 화장실 바닥을 보았다. 화장실에는 언제나 흙이 질펀했다. 그것도 황토색이 아니라 시꺼먼 먼지같은 흙이 물에 뒤범벅되어 그리 매끄럽지도 않은 타일을 보다 꺼끌거리게 만들었다. 그런 것을 밟고 서있는 것은 기분나쁜 일이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공허한 복도를 지나 다시 물리실로 돌아왔다. 실험은 거의 끝나있었다. 보고서의 빈 칸은 똑같은 색의 펜으로 다 채워져있었고, 내 것만 비어있었다. 나는 매끄러운 실험대위에 팔배게를 하고 누워버렸다. 우리는 언제나 무기력했기 때문에 굳이 잘 필요가 없었지만, 반대로 자려고 한다면 어느때나 잘 수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어렴풋이 '김경희! 일어나'라고 하는 과학 선생님의 말소리와 '경희 아프대요'라고 하는 은희의 말소리가 들렸다.
3
나는 죽을때까지 그 자신이 사토라레임을 모른다는 그 불쌍한 사토라레들을 생각했다. IQ 180짜리 사토라레들은 그 자신의 존재가치가 항상 그 IQ 180에 매달려있는 부수적인 덤같은 것이었다. 영악한 악마들은 그 사토라레 하나를 써먹기위해 그들을 철저히 농락했다. 사토라레들은 그 자신이 사토라레임은 모르고 다른 사토라레들이 겪을 사회적 폭력을 상상했다. 아무도 그들의 인권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압권인 것은 그들의 인권을 생각하고 그들도 인간임을 외친 주인공 여자의 가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녀는 사토라레를 생각해주는척하고, 그들의 권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척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는 끝까지 사토라레에게 '넌 사토라레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사토라레는 죽을 때까지 한바탕 거한 연극속에서 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본질적인 해결책에 대한 논의없이 덮어놓고 사토라레를 현실과 유리시킨 것이다.
10시였다. 보통 아이들이 쏟아져나올 시간이지만 요즘에는 그 수가 많이 줄었다. 수능이 끝나고부터 고2는 11시까지 자율학습을 했고 고3은 12시간전 11시에 귀가하게 된 까닭이었다. 나는 음침한 학원 버스의 후미등이 눈에띄게 준 것을 느꼈다. 그래도 시내버스는 제깍제깍 다녔다. 나는 2명씩 앉는 의자 바로 앞에 있는 홀로 앉는 자리에 앉았다. 내 뒤로 남자애 셋이 앉았다.
남자애 셋은 거의 구분이 안 갔다. 오랜동안 보아오던 친구라면 모를까, 하나같이 구렛나루를 기르고 앞머리는 짧은데 몸은 호리호리하고 키는 제법이었다. 신발도 똑같이 맞춰신은 것처럼 나이키 얍실한 무늬에 옷이야 당연히 똑같았다. 거기다 가방까지 옆으로 메는 끈이 긴 회사원가방 일색이었다.
나는 또다시 그 90%가 닭암에 걸려 고통받는다는 양계장의 불쌍한 닭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지독한 스트레스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쪼아 죽이기 때문에 무기가 되는 부리를 잘렸다. 그렇게 몇 달을 키우면 자연상태에서 20년치 클 분량을 커버린 공산품 닭이 생산되었다. 그것은 엄청나게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무엇보다도 '경제적'이었다. 나는 조만간 '달걀을 넣으면 닭이 되어서 나옵니다!'라는 선전문구가 쓰여진 기계가 양계장마다 보급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상표가 하나씩 찍힌채 튀어나오는 닭을 생각하면 혐오감이 일었다. 그래도 나는 그것을 먹었다.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다'의 논리는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나는 토할 것 같아서 창문을 열었다. 코끝 볼가를 스치는 바람이 사뭇 날카로웠다. 어둔 밤을 밝히는 빨간 네온싸인과 어두침침한 노란 순대국집 간판과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희끄무리한 부동산가게가 스쳐지나갔다. 버스는 길이 좁아도 잘 다녔고 길이 넓으면 지나치게 잘 다녔다. 2차선 도로를 가는데 있어서 버스가 뒤를 따라붙는 것만큼 고역인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될 만큼. 나는 커다란 버스의 한 가운데 앉아서 속도감을 느꼈다.
내 뒤의 남자애 셋은 끊임없이 조잘댔다. 나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들었고, 모두 흘려보냈다. 그들은 아주 쓸데 없는 말을 하고 있었고, 굳이 듣고 싶지 않은, 듣지 않는 편이 좋을 이야기를 재미있다고 해대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구토증이 일어 눈을 감았다.
남자애가 말했다.
"이희수, 걔 독서실에서 다른 학교애하고 싸웠다며."
"어, T고애랑 싸웠다는데."
다른 남자애가 말했다.
"이희수, 싸움 존나 못하잖아."
"그래서 이희수가 계단에서 시비붙었는데, 거기서는 찍소리 못하다가 친구들 3명 불러와갖고 막 뭐라고 했다는데."
"이기려고 별짓을 다하네."
"존나 추해."
"그새끼 독서실에서도 잠만 잘텐데 왜 간대."
"나도 몰라. 공부하러 갔겠지."
"걔가 공부해서 뭐한대."
"글세."
4
나는 꿈을 꾸었다. 과학시간이었다. 오늘은 전자기 유도에 관한 실험을 했다. 나는 코일을 집어들고 칭칭 감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열 세 번을 감으니 코일이 짧아졌다. 나는 두 번을 풀어서 검류계와 전구에 연결했다. 앞에는 과학 선생님대신 중학교때의 내 담임 신기호가 서있었다. 나는 막대자석을 집어들었다. 예의 그렇듯 N극과 S극이 새빨갛고 새파랗게 엄습해왔다. 이 두 극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존재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그 자석을 집어들고 코일속으로 밀어넣었다. 전류가 흐르고 불이 켜졌다.
나는 선생님이 보아줄때까지 계속해서 자석을 밀어넣어 전류를 흘려보냈다. N극이건 S극이건 어느쪽이든 쑤셔넣어야 전류가 흐르는 법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Part 5. End
늦었습니다.
시험때문에 늦었다고 거짓말하겠습니다.
암호는 잘 해독하셨는지요?
뭔가 이것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아 다음에는 암호가 아닌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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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냐냠'-' 재밌게 잘 보고 있어요. 자주(강조)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a
역시 멋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