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첫경기 악몽, 호주에 충격패… “오늘 죽기살기로 日 깬다”
투수진 3홈런 허용… 어설픈 주루
양의지 3점포 못지키고 7-8 패배
사상 최강 일본 잡아야 8강 희망
선발 김광현 어깨에 운명 달려
표정 어두운 출발… 2루타 강백호, 세리머니하다 아웃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호주와의 B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7-8로 패한 뒤 아쉬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벗어나고 있다. 아래 사진은 7회말 대타로 나선 강백호가 2루타를 친 뒤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 강백호는 세리머니 도중 발이 2루 베이스에서 떨어졌고 이를 놓치지 않은 상대 수비수가 공을 쥔 글러브로 태그하면서 아웃됐다. 도쿄=뉴시스·AP 뉴시스
한국 야구가 또다시 첫 경기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야구 대표팀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호주와의 B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7-8로 패했다. 한국은 한 수 아래로 평가됐던 호주에 일격을 당하면서 WBC 세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 위기에 몰렸다. 한국은 10일 오후 7시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일본과의 경기에서 이겨야 8강행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체코(12일), 중국(13일)과 상대한다.
● 도쿄돔의 악몽
한국은 이길 수 있었고,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하지만 기대 이하의 플레이가 이어지며 미국프로야구 마이너리그와 자국 리그 선수들로 팀을 꾸린 호주에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호주전 8연승 행진도 끝났다. 한국이 도쿄돔에서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 패한 건 처음이다.
5회 1사까지 낯선 호주 투수들에게 퍼펙트로 끌려가며 0-2로 뒤지던 한국은 김현수(LG)가 볼넷으로 공격의 실마리를 풀었다. 박건우(NC)의 첫 안타로 만든 1사 1, 2루 기회에서 양의지(두산)가 상대 세 번째 투수 대니얼 맥그래스의 변화구를 좌월 3점 홈런으로 연결시키며 단숨에 경기를 뒤집었다. 6회에는 박병호(KT)가 왼쪽 담장 상단을 때리는 적시 2루타를 쳐 4-2로 앞서 나갔다.
하지만 믿었던 투수들이 잇달아 무너졌다. 7회 등판한 소형준(KT)은 몸에 맞는 볼과 안타 등으로 1사 2, 3루 위기 속에 강판됐다. 구원 등판한 김원중(롯데)이 밋밋한 포크볼을 던지다가 로비 글렌디닝에게 3점 홈런을 허용하며 4-5로 재역전됐다.
최악의 장면은 7회말 공격 때 나왔다. 1사 후 대타로 나선 강백호(KT)는 좌중간 담장을 맞히는 큼직한 2루타를 쳤다. 그런데 2루 베이스에서 큰 몸동작으로 세리머니를 하다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졌고, 이때를 놓치지 않은 상대 2루수가 태그하며 허탈하게 아웃되고 말았다. 양의지가 곧바로 중전 안타를 쳐 아쉬움은 더 컸다. 강백호가 2루에 있었다면 5-5 동점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8회에 등판한 베테랑 왼손 투수 양현종(KIA)이 한 타자도 잡지 못한 채 로비 퍼킨스에게 3점 홈런을 허용했다.
한국은 8회말에 상대 투수들의 제구 난조를 틈타 6개의 사사구로 3점을 따라붙었지만 2사 만루에서 나성범(KIA)이 삼진으로 물러나며 경기를 뒤집지는 못했다.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는 선두 타자 안타로 출루한 토미 에드먼(세인트루이스)이 2사 후 2루 도루를 시도하다 아웃됐다.
한국은 2013년 제3회 대회 첫 경기에서 네덜란드에 0-5로 완패했고, 2017년 제4회 대회 땐 이스라엘에 1-2로 지면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번엔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전지훈련부터 전력분석까지 많은 공을 들였지만 실전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 김광현 어깨에 달린 일본전
한일전 선발투수 김광현(왼쪽), 다루빗슈
한국이 8강에 오르기 위해선 사상 최강의 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우승 후보 일본을 꺾어야 한다. 일본은 한국전 선발 투수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95승을 거둔 베테랑 다루빗슈 유(샌디에이고)를 내보낸다. 9일 중국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한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는 지명타자로 나설 전망이다. 다루빗슈 뒤에는 시속 150km대의 빠른 공을 던지는 왼손 에이스 이마나가 쇼타(요코하마 DeNA)가 대기한다.
한국은 ‘일본 킬러’로 불리는 김광현(SSG)이 선발 투수로 나선다. 이강철 대표팀 감독은 “호주전에서도 느꼈지만 선발 투수가 초반에 잘 끌어줘야 한다. 경험 많은 베테랑인 만큼 잘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현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풀리그에서 일본을 상대로 선발 등판해 5와 3분의 1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고, 4강전에서도 8이닝 2실점(1자책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이 감독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총력전으로 임할 생각이다. 다루빗슈가 좋은 투수인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어떻게든 득점할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정민철 MBC 해설위원(전 한화 단장)은 “다루빗슈는 국제대회에 자주 나와 한국 선수들에게 익숙한 편이다. 사사키 로키(지바 롯데)처럼 빠른 볼을 던지는 낯선 투수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그간 국제대회에서 부진하던 양의지와 박병호의 타격감이 괜찮은 것도 고무적이다. 이번 대회 전까지 국제대회 통산 타율이 0.169에 그쳤던 양의지는 호주전에서 홈런을 포함해 3타수 2안타를 기록했고, 박병호도 큼직한 2루타를 때렸다.
도쿄=이헌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