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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과 유마거사의 백과사전 내용
1. 간행 경위
『유마경(維摩經)』은 지겸(支謙), 구마라집(鳩摩羅什), 현장(玄奘)이 번역한 것에 따라 각각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 ·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 『정명경(淨名經)』으로 불린다. 이 경전은 고려대장경으로도 간행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펴낸 『유마경』에 대한 주석서로는 신라 원효(元曉)가 주석한 『유마경종요(維摩經宗要)』 1권과 『유마경소(維摩經疏)』 3권, 경흥(憬興)이 쓴 『무구칭경소(無垢稱經疏)』 6권, 둔륜(遁倫)의 『유마경요간(維摩經料簡)』 1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석서들은 모두 현존하지 않는다.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이 『교장』 목록에 『정명경집해관중소』를 포함시키고 판각했던 사실이 확인되며, 조선 전기에 복각(復刻)된 것이 현존한다.
조선시대에 유통된 『유마경』은 『유마힐소설경직소(維摩詰所說經直疏)』로 구마라집이 한역한 『유마힐소설경』에 명나라 통윤(通潤, 1565~1624)이 주석을 단 것이다. 『유마힐소설경직소』는 1854년 강원도 철원 성주암(聖住庵)에서 상 ‧ 중 ‧ 하 3권으로 간행되었다. 이 성주암본은 현재 여러 부가 남아 있다. 통윤이 주석한 『유마힐소설경직소』가 중국에서는 발견되지 않아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소장본들의 가치가 크다.
2. 내용
강원도 성주암에서 간행한 통윤의 『유마힐소설경직소』는 상 ‧ 중 ‧ 하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마경』은 『승만경(勝鬘經)』과 함께 대승불교의 재가주의(在家主義)를 천명(闡明)한 경으로 널리 보급되어 사랑받아 왔다. 많은 한역본 중 우리나라에서 널리 유통된 것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유마힐소설경』 3권 3분 14품이다.
제1 불국품(佛國品)은 서(序)에 해당한다. 보살이 불국토(佛國土)를 건설하는 것에 대해 부처가 설법(說法)하는 내용이다. 특히 부처는 일음(一音)으로 설법하지만 중생들은 그 신분에 따라 각각 달리 이해한다는 일음설(一音說)은 이 불국품에서 유래하였다.
제2 방편품(方便品)에서부터는 유마(維摩) 거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무생인(無生忍)을 얻은 유마는 변재(辯才)가 무애(無㝵)한 자로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이롭게 한다. 그의 방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유마가 병을 앓게 되자, 그는 병문안을 오는 자에게 몸은 무상(無常)하니 항상 불신(佛身)을 바라볼 것과 불신이 곧 법신(法身)임을 천명한다.
제3 제자품(弟子品)에서는 부처가 십대 제자에게 유마의 병문안을 가도록 권하나 이들은 모두 지난날 유마 거사에게 훈계받은 경험을 말하면서 문병을 거부한다.
제4 보살품(菩薩品)에서는 십대 제자와 같은 이유로 미륵보살 등 보살들이 유마 거사를 문병하기를 거절한다.
제5 문질품(問疾品)에서는 마침내 문수보살이 부처의 명을 받들어 유마 거사의 병문안을 가서 그와 설법 대화를 진행한다. 여기에서 강조된 것이 반야(般若)에 입각한 보살행이다. “중생에게 병이 있는 한 나에게도 병이 있고 그들이 나으면 나도 낫는다. 보살의 병은 커다란 자비에서 일어난다”라는 유명한 설법이 여기에서 나온다.
제6 부사의품(不思議品)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살의 활동이 서술되어 있다.
제7 관중생품(觀衆生品)에서는 보살이 중생을 어떻게 관찰하고 어떠한 자비를 갖는가를 설하였다.
제8 불도품(佛道品)에서는 연꽃이 진흙 연못에서 피어나듯이 불도는 번뇌의 진흙 구덩이 속에서 생겨난다고 설법하였다. 또한 보살의 어머니는 반야의 지혜이고 아버지는 방편이라고 설한다.
제9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은 대화의 가장 심오한 극치를 이루는데, 염정불이(染淨不二) · 정사불이(正邪不二) · 아아소불이(我我所不二)를 강조하고 있다. 이 제9품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선가(禪家)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였는데, 문수와 유마의 대화는 마침내 유마 거사의 묵연무언(默然無言)의 대답으로 절정에 이른다.
제10 향적불품(香積佛品)에서는 향적불의 나라에서 음식을 가져오게 한다. 그 나라는 문자 설법을 사용하지 않고 묘향(妙香)으로 삼매(三昧)를 얻지만,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는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이끌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음을 설한다.
제11 보살행품(菩薩行品) 이하부터 경의 마지막까지는 부처가 개입하여 유마 거사 소설(所說)의 모든 법문을 다시 한번 다른 측면에서 강조한다.
『유마경』은 교리적으로 반야공관(般若空觀)의 사상에 의한 대승보살의 실천도를 고창(高唱)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토교(淨土敎)의 취의(趣意)에 의한 재가 신도의 종교적 덕목을 천명한 것이 특색이다. 제1 불국품에서 “마음이 맑아지면 불국토가 맑아진다”라고 한 부분은 이 경이 가진 근본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3. 유마경 개요
유마경은 유마힐(Vimalakirti)거사를 모델로 설정하여 기존의 출가중심의 부파불교를 비판하고 대승불교의 참다운 뜻을 밝히고 있는 경전이다. 반야경에 이어 나타난 초기 대승경전에 속하며 유마거사라는 비야리(웨살리) 성의 부호가 세속에서 살아감에도 불구, 재가 신자로서의 불교의 깊고 높은 경지를 체득하여 청정한 행위를 실천하고 보살도를 행하는 면모를 그려내고 있다. 그는 재가 불자들의 이상상이며 모든 불자의 이상상으로 높이 대우받는다.
당시 비야리 성은 상업의 중심지로서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정신의 중심지였다. 상업은 사람을 그 특성상 외부의 것에 열려있게 만든다. 교역을 하고 타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문물을 접촉하다 보면 사고가 자연스럽게 유연해지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불교는 상인 계층의 큰 지지를 받았다. 이는 힌두교나 유교가 농업을 중시하고 농업세력과 많이 관련되어 있었다는 점과 대비된다. 불교가 실크로드를 거쳐 중앙아시아, 중국으로 전래되고, 또 현재는 이슬람교가 다수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지역까지 전파되는 데도 상인들이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의 활약과 더불어, 종교 자체의 특성상 초창기 불교는 지역적이기보다는 국제적인 성향이 짙었고,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면모를 많이 보였다.
이런 진취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비야리 성에 살고 있던 유마거사는 승려가 아닌 재가자였다. 이러한 재가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유마경은 당시의 기존의 출가 중심의 부파불교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이는 재가자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나고 있던 당시의 대승불교 운동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이 정(淨)하면 국토(國土)도 정하여지니라"는 말을 비롯하여 종교적 명언이 많으며, 특히 중국에서 널리 읽힌데다 초기의 선종(禪宗)에서도 매우 중요시되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시불(詩佛)이라고 칭해지는 왕유(王維) 같은 당나라의 시인은 유마거사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았다.
4. 유마경의 핵심 사상
1) 현실의 국토가 불국토이다.
2) 출가, 재가 혹은 진리와 세속이 다를게 없다는 불이(不二) 정신
3) 모든 중생에게 깨달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불성(佛性) 사상
Watanabe(1956)와 Silk(2014) 등은 상좌부불교에서 전승되는 《병문안의 경(Gilanadassana-sutta)》 속 주인공인 찟따(Citta) 장자가 유마거사의 모티프가 되었을 가능성을 제안했다. 이 사람은 아나함과를 얻은 재가자로, 스님들에게까지 설법을 할 정도로 높은 깨달음을 성취했다고 한다. 다만 《병문안의 경》은 유마경의 파격적인 내용과 큰 상관이 없으며, 불·법·승 3보에 대한 찬탄이 주된 내용이다.
출처: 나무위키
5. 비말라키르티(유마거사)
비말라키르티(산스크리트어:विमलकीर्ति, 생몰년 미상) 또는유마거사(維摩居士)는 고대인도의 상인으로석가모니부처의 재가 제자였다(거사는 불교에서 출가하지 않은 불제자 즉 재가 신도를 말한다). 이름은 한자로 음사하면 비마라힐(毘摩羅詰), 유마힐(維摩詰)이며 의역하여 정명(浄名) 또는 무구칭(無垢稱)이라고도 한다.
그의 이름은 《유마경》(維摩経)을 중심으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経) 등에도 「위덕무구칭왕 우바새」(威德無垢稱王優婆塞)등으로 언급된다. 다만 이러한 비말라키르티의 존재는 북전(北伝) 대승경전을 중심으로 보이고 남전(南伝)팔리어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에 이 점을 들어 비말라키르티라는 인물은 가공의 인물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실존했다는 설도 있다.
비말라키르티는 비록 부유하지만 인색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승려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하며, 일찍이 널리 복전을 두어 때문에 재원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불교와 습합된 민간 신앙에서 부(富)의 신으로 모셔지기도 했다.
6. 유마거사 개요
고대 인도의 갠지스강 북쪽 바이샬리(毘舎離城)에 살던 부호로 석가모니 부처의 재가제자였다고 전한다. 보다 전세에는 묘길국(妙喜国)에 살았으나 이후 화생(化生)하여 그 몸을 속세에 맡기고 대승불교의 깊은 뜻에 통달하였다고 전해지며 석가모니 부처의 교화를 보좌하였다. 그는 무생인(無生忍)이라는 불교의 한 경지를 얻어 법신(法身)의 대거사로 불렸다.
비말라키르티는 큰 부자로 평시에 빈민을 구제하고 승려를 받들었으며, 바깥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얽매이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 나서 하늘의 천신과 마왕뿐 아니라 세상을 등진 왕공귀족, 불법을 믿지 않는 외도의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는 유곽이나 도박판에까지 이르렀고, 이로 인해 그의 명성이 멀리까지 퍼져서 세상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다 알고 있었다.
그가 병을 얻었을 때 석가모니 부처가 제자, 보살들을 향해 누가 그에게 찾아가 문병할 것을 권하였으나, 사리풋다(舎利弗)나 목갈라나(目建連), 마하카샤파(大迦葉) 등의 아라한과 성문(声聞) 대중들은 저마다 예전 비말라키르티에게 모두 한마디씩 지적을 들은 적이 있어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하며 아무도 가려 하지 않았다. 또한 미륵(弥勒) 등의 대승 보살들 역시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경험을 말하며 사양해, 아무도 가려 하지 않았다. 이에 석가모니 부처의 제자인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대표로 그의 방장(方丈)의 거실을 찾았다. 보살인 응윤(應允)과 여러 보살, 나한이 문수보살을 수행했다.
이때 문수보살과 비말라키르티가 주고 받은 문답이 바로 《유마경》의 핵심 줄거리이다.
예를 들어 문수보살이
「보살은 어떻게 해야 불도(佛道)에 통달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비말라키르티는
「만약 보살이 도가 아닌 길(非道)을 간다면 곧 불도에 통달한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는데,
그 진의는
「도가 아닌 길을 행하되 그것에 구애되거나 빠져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불도에 통달하는 것이다.」 라는 의미가 있다.
대승경전, 특히 《유마경》에는 이러한 역설의 논법이 곳곳에 보이고 있으며 훗날의 선종 불교 등에서 많이 인용되었다.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선사 잇큐 소준(一休宗純) 등은 그 전형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비말라키르티가 "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내가 병이 들었소"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병이란 당연히 생리적 질병이 아닌 정신적 차원의 것을 말하며, 중생에게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을 가르쳐 공(空)의 속성이 본래 무생(無生)임을 증명하고 병의 근원이 '집착'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비말라키르티는 자신의 병을 드러내 보이고 대중을 불러 병문안을 받고, 그 자리를 빌어 중생들에게 널리 설법을 행하고, 그에 관한 갖가지 문답을 행함으로써 대중에게 '공관'(空觀)의 대승불법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중국남조(南朝)의 시인 사령운(謝靈運)이나 소명태자(昭明太子), 그리고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 이백(李白) 등은 모두 비말라키르티를 존숭하거나 보시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왕유의 경우는 그의 이름부터가 비말라키르티에서 비롯된 것이며, 시를 짓는 데에 있어 전고(典故)를 비말라키르티로부터 따왔다.
7. 비말라키르티의 가족
비말라키르티의 아내의 이름은 무후(無垢)라고 전하는데 다른 말로는 '무구'는 '정명'일 또 다른 의역일 뿐이라는 설도 있다. 자녀 한 명씩 두어 아들의 이름은 선사(善思), 딸의 이름은 월상녀(月上女)이고 처자 모두 불법을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는 비말라키르티는 금속여래(金粟如來)의 화신으로, 《대방등대집월장경》(大方等大集月藏經)에서는 과거세 31겁 전에 비사부여래(毗舍浮如来)가 세상에 났을 때 당시 석가모니 부처의 전생의 형제였다고 한다.
8. 초기 승가집단과의 논쟁
비말라키르티소설경(維摩詰所說經, Vimalakīrti-nirdeśa-sūtra)의 「문병품(問疾品)」에는 부처가 제자들에게 재가 거사 비말라키르티를 문병하러 갈 것을 청하자, 제자와 보살들이 차례로 사양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이들은 “전에 그와 논한 적이 있는데, 늘 그에게 꺾였다(昔與維摩詰論議,常為所屈)”고 고백하며 방문을 망설인다. 이 구절은 불교 문헌학·철학 연구에서 ‘불이(不二)의 논리’와 ‘언어를 초월한 지혜’의 표현으로 해석되어왔다. 『유마경』 3장 「문병품」은 제자들이 유마거사의 병을 문병하라는 부처의 지시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사리불, 대가섭, 목건련, 수보리 등은 각자 과거에 유마거사와 변론하다가 논파당한 경험을 회상하며 부끄러워한다. 이 연쇄적인 ‘사양 장면’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언어적 논쟁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깨달음’이라는 주제를 부각하는 서사 장치로 평가된다.
출처: 위키백과

첫댓글 이번 주 부터 <유마경> 사경을 올리겠습니다.
짧은 지식이라 유마경과 유마거사님이 어떤 경전이며 어떤 분이신지 먼저 백과사전을 통해 알아본 내용입니다.
부처님의 재가불자로서 부처님의 제자들을 지적할 정도로 대단한 분이십니다.
덕분에 유마경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