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짐보 / 황병승 (1970~2019)
내가 갸르릉거리면요, 딴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요
내 이름은 짐보 나쁜 친구들과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아요 쥐는
옛날부터 싫었구요 이 골목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알죠
세탁소집 아이는 미용사가 꿈이구요 열여덟에 결혼한 수리공 마키는
말할 때 눈을 찡긋거리는 버릇이 있고 대장장이 키다리는
아침부터 술이지요
내가 밤늦도록 갸르릉거리면요,
당신이 천방지축 꼬마였을 때 내가 아프게 할퀸 적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딴 뜻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시답잖은 얘기예요 고양이에게 왕국이니 전설이니……
당신들보다 나이를 조금 더 먹었을 뿐 내 이름은 짐보
지붕을 뛰어넘다 애꾸가 되었구요 동네 고양이들은 나를 점프왕 짐보
그렇게 놀리더군요 나쁜 마음을 먹을라치면 벌써 먹었죠
우리 고양이들은 칼날 같으니까요
그러나 눈이 꼭 두 개일 필요가 있나요 친구들은 이 마을 저 마을
들쑤시고 다니지 못해 안달을 하지만, 많이 안다고
다 아는 건 아니죠 내 이름은 그냥 짐보 이 골목만큼은
눈 감고도 걸을 수 있죠
내가 만일 밤늦도록 갸르릉거리면요,
당신은 아직 꼬마고 당신은 울고 싶은 일이 참 많고
그러나 그 모든 게 지난밤, 짐보가 할퀴고 간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당신들보다 나이를 조금 더 먹었을 뿐
딴 뜻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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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은 경건하고 소중하게 대해야 할 그 무엇인가.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이 가르쳐주신 것처럼 시간은
아껴 써야 하고, 성실과 근면을 통해 의미 있는 그 무엇을
이루어야 할 값진 것인가. 이제 다만 모든 것은 시답잖고
누추한 뒷골목에서 생은 우울할 뿐, 한데(또는 그러므로
더욱) 리듬은 경쾌하다. 거기에는 조숙한 뒷골목 어린
건달의 위악과 불량스러움 같은 것이 묻어 있다.
다국적 시대다운 잡종성의 호칭들과 건들거리는 경박한
말투, 만화영화적 상상력들이 생의 우울과 희망 없음의
표현인 동시에 그에 대한 대응의 포즈이기도 할 터인데,
그 포즈 위에 이 시가 적재하고 있는 문면의 메시지는
두 가지다. ‘그 모든 게 짐보가 할퀴고 간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하라는 동화적 처방의 위로와 “딴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진술의 반복. 앞의 동화적 처방은 이미
이 시가 출발점으로 전제하고 있는 “시답잖은 얘기”라는
인식 이전으로의 퇴행일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없다고
거듭 말해짐으로써 있는 것이 더욱 분명해 보이는 ‘딴 뜻’은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이것은 생의 ‘시답잖음’에 대한
이 시의 인식이 충분히 투철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기야 ‘투철함’ 따위야말로 ‘선생님들’의 해묵은
교훈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므로 이 시의 효용성은 일단
생의 우울에 대한 통찰과 경쾌한 리듬이 이루는 울림에 있다.
가벼운 스케치, 가벼움. 그런데 가볍다는 것은 얼마나
막막하고 덧없는 일인가. 동시에, 가벼울 수 있다는 것은
또한 얼마만 한 힘인가.
/ 김사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