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만든 천국을 보라
“오래오래 피는 것이 꽃이 아니라 봄철을 먼저 아는 것이 정말 꽃이라”라는 시가 있다. 봄에 피는 많은 꽃 중에서 나무에 피는 연꽃으로 알려진 목련도 봄철을 먼저 아는 꽃이다. 그렇게 봄을 일찍 알리려고 산수유, 벚나무와 함께 잎이 채 나기도 전에 성급하게, 세상의 의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가녀린 가지 위에 태초의 우아함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가히 봄을 알리는 선구자의 품격이다.
흔히 그 꽃 앞에 서면 문득 언어를 상실하기도 하고 쉽사리 의식을 잃기도 했다. 그중에서 한라산 1,800미터 고지 개미 목 부근에서 자생하는 목련은 백의민족을 상징하듯 우리 고유의 꽃으로 마치 소복한 여인의 자태를 보여준다.
많은 시인이 목련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목련은 분명 동양의 미학이며, 그중에서도 이 땅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출하는 우리 누님들의 함박웃음이다. 또한 이른 봄 앙상한 나뭇가지에 몰래 내린 함박 눈송이와도 같다.
모든 세상의 목련이 함께 어우러져 600여 종류를 이루는 곳이 천리포 수목원에 있다. 봄이면 이들 온갖 목련들은 제각기 가장 화려한 모습을 연출한다. 꽃의 지름이 40cm를 넘는 초대형 목련, 꽃잎이 50장 이상인 별 목련이 있는가 하면, 꽃잎이 노란 황 목련을 비롯한 진귀한 목련뿐 아니라 수선화, 동백나무, 삼지닥나무, 만병초, 마취 목 등이 봄의 정원을 절정으로 만든다.
여름이면 파도 소리, 솔잎에 나부끼는 솔잎 소리를 들으며, 수국, 수련, 가시면 꽃, 니포피아, 태산목, 상사화가 만발한 해안가 ‘노을 길’을 따라 푸른 숲을 체험할 수 있다.
가을이면 수목원을 단풍으로 물들이는 가을 벚나무, 석산, 화살나무, 억새, 목서 그리고 닛사 나무와 화살나무, 복지기, 풍 나무들이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보이고 있다. 겨울에도 붉게 물든 호랑가시나무 열매와 납매, 설강화, 풍년화, 복수초 등 100 여종이 꿋꿋하게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마치 비발디의 ‘사계’ 풍경을 보는 듯 꽃들의 합창이 들리는 곳이다.
그 많은 꽃 중에서 함박웃음과 같은 목련을 그다지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 땅의 산천과 나무와 풀과 꽃 그리고 살아있는 생명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도록 열정을 다해 이곳 천리포 해안에 아름다운 수목원을 조성하였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마치 구도자와 같이 이 땅에서 헌신 된 생을 마친 아름다운 귀화인이었다.
그의 우리말 이름은 ‘민병갈’이고 본명은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인 그는 1945년 미 해군 정보장교로 한국에 왔으며, 1947년에는 미군정청 정책고문관으로 재입국, 1954년 한은총재 고문을 필두로 증권사 고문을 지낸 금융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을 사랑한 그는 1962년 사재(私財)를 털어 천리포 모래땅 2천 평을 매입 한 뒤, 1970년부터 본격적인 수목원 공사를 시작하여, 40년 동안 18만 평에 이르는 민둥산과 황폐한 들에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2015년 기준 15,600여 종류의 식물을 보유한 국내 최대의 수목원이 되었고, 2000년에는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아시아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선정되었다.
그 결과는 2-3 백년 앞을 바라보고 숲을 가꾼 개인의 헌신적인 노력의 대가이지만, 그가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가진 천리포 해안에 수목원을 선정한 혜안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곳 수목원은 바다를 끼고 있어 내륙보다 덜 덥고 여름이 짧기도 하지만, 겨울에는 덜 추우며 그 기간도 짧아서 적절한 습도를 유지 시키는 해양성기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리아스식 해안인 천리포의 지형적 특성과 토질은 충분한 햇볕의 양으로 인해 난대에서 한 대에 이르는 다양한 식물들의 성장 조건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명철학인 ‘자연은 자연 그대로’처럼 이곳 정원의 생명체들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와 수목원을 기리는 말들에는 “한 인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 “작지만 세계적이다.” “텅 빈 마음, 꽉 찬 마음”과 같은 아름다운 표현들이 있다. 평소 그는 “나무는 말없이 하늘을 우러르며 평생을 올곧게 산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라는 소망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심경을 나타내는 영문기도문을 누군가 우리말로 옮겨놓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임께서 내 마음을 모르신들 어떠하며, 벗들이 내 세정 안 돌보면 어떠하리, 깊은 산 향 풀도 제 스스로 꽃다웁고 삼경 밤 뜬 달도 제멋대로 밝삽거늘, 하물며 군자가 도덕 사업하여 갈 제, 세상의 알고 모름 그 무슨 상관이랴.”
이는 마치 안빈낙도하는 우리의 옛 선비의 고고한 모습이고 자신의 선한 일과 마음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치 않는 참 구도자의 해탈한 마음을 보는 듯하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그에게도 수목원 가꾸기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수목원 운영 경비는 주식투자를 통해 조달이 되어왔으나,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주식시장이 붕괴가 되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수목원을 대학 등 사회에 기부하기로 하는 여러 방안을 생각하였으나, 결국 산림청 산하의 공익재단법인으로 전환하였다.
이뿐 아니라 그가 외국기관과 식물 씨앗을 교류한 것을 토종 씨앗을 외국으로 밀반출하여 국내 관련 업체가 역(逆) 수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오해로 비난을 받는 참담한 수모도 겪어야 했다. 그가 우리 사회에 경제적으로 공헌한 일은 외국산인 ‘블루베리’와 ‘양다래’를 국내시장에 상품화시킨 것이며, 식물학계에 기여를 한 일은 완도 산 ‘호랑가시나무’를 국제 식물학회에 우리 이름 그대로 등재 시킨 쾌거이다.
암으로 투병하던 그는 2002년 4월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골은 사랑하던 나무들이 있던 자리에 뿌려졌다고 한다. 그때 그 주변의 나무들이 너무 슬픈 나머지 2년 동안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다.
지난 추석 명절 연휴의 끝자락에 그의 수목원을 찾아가 세상의 나무와 풀과 꽃의 어울림을 보았다. 가을의 정원이란 항용 순례자들의 발길이 뜸한 쓸쓸함이 배어있기 마련이나 그곳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가을하늘에 어울리는 배경인 우드랜드, 억새원, 초지원 풍경에서 볼 수 있는 꽃들은 허다했다. 붉은 석산, 주황의 금목서, 하얀 은목서의 은은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고, 자줏빛 대상화, 단풍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짙붉은 색감, 보라색의 진다이 개미취와 해국, 콜치쿰, 티보치니 그리고 쥐꼬리를 닮은 쥐꼬리새 종류 등 이름도 낯선 세상의 가을꽃과 나무들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이 땅에서 선한 한 사람이 살아있어 아름다운 향기를 내면, 그 이웃이 곧 천국이 되고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와 나라 전체가 살만한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목련꽃 피는 어느 4월 그는 이 땅에 한 뼘의 천국을 만들고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