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탄신 86주년 기념예배 설교문(이해동 목사)
o 일시 : 2010년 1월 6일 오전 11시
o 장소 : 국립 서울현충원 김대중 대통령 묘역
성경 : 누가복음 4 : 16-21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의 역사입니다.
우리들의 참 대통령 김대중 선생님께서 우리와 유명을 달이하신지 어언 다섯 달째로 접어들어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늘 동교동으로 가서 세배를 드렸었는데 금년에는 이곳 묘소로 와서 뵈었습니다. 따스한 손을 잡아볼 수도 없었고 다정한 새해 덕담을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쉽고 그리운 마음 가실 길이 없습니다.
오늘은 어른께서 돌아가신 후 첫 번째 맞는 생신입니다. 위인들의 삶을 칭송하는 행사는 서거일에 맞춰 기리기도 하지만 더 일반적으로는 탄신에 맞추는 것이 보다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신을 기리는 절기입니다. 불교의 최고 명절도 4월 초파일도 다름 아닌 석가탄일입니다.
1월 6일, 어른의 탄신은 우리 민족사에 길이 새겨져 있어야 하고, 모든 백성들이 기려야 할 날로 삼아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어른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당신의 도구로 써주시지 않으셨던들 우리 백성들이 그 기나 긴 한 많은 역사 속에서 이 어른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맛본 자유 정의 평등 평화세상을 경험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은 성경 누가복음 4장 16-21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천명하신 대목입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맨 먼저 그가 자라나신 나자렛의 회당에 들어가셔서 구약성서인 이사야서 61장 1-2절인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하는 대목을 읽으신 후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자의식을 가지고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그를 기름을 부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다는 소명의식과, 그가 해야 할 사명은 묶인 자들의 해방과, 눈먼 자들의 눈 뜨임과,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일임을 분명히 자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소명의식과 사명감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충성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그 삶의 질에 있어서 예수님의 그것과 궤를 같이하는 분이 계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목마르게 그리워하고 흠모하는 김대중 대통령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 어른이 남기신 말을 직접 들어보십시다. 2009년 1월 14일에 쓰신 일기입니다.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2009년 1월 15일의 일기입니다.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이 길을 갈 것이다.”
2009년 5월 30일의 일기입니다. 어른의 육필일기에 거의 끝부분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손자 종대에게 나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
위의 육필일기에 잘 들어나 있다시피 어른께서는 확고한 소명의식과 사명감으로 그 험난한 한평생을 참고 견디며 투쟁하고 헌신셨습니다. 어른의 인권과 정의에 대한 끈질긴 관심,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민족 간의 화해협력과 평화통일에 대한 불굴의 집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민족사에서 이루어내기 위하여 온갖 박해와 위험을 무릅쓰고 일관되게 사신 그 용기는 다름 아닌 깊은 신앙에 따른 소명의식과 사명감에 뿌리하고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어른께서 언제나 강조하신 ‘행동하는 량심’도,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도 그분의 소명과 사명의 실천의지에서 울어 나온 경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어른이 대통령이 되려고 하셨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신 것은 그 자리가 그분의 삶의 목표가 아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자리는 그 어른의 꿈, 정의 사랑 평등 평화 등으로 일컬을 수 있는 예수정신에 따른 이웃사랑 약자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른 자신의 입을 빌린다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같이 떠오르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 어른은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신 후에도,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백성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시고,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를 걱정하시고 규탄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 어른은 또한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역사의 궁극적인 주인은 소수의 지배자나 특권층이 아니라 서민 또는 민중으로 일컬을 수 있는 다수의 국민임을 확신하셨습니다. 생전에 어른께서 하셨던 말씀을 직접 들어보십시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만들었다. 석굴암은 김대성이 만들었다. 경복궁은 대원군이 건축했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이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지만 잘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허구다. 진정한 건설자는 그들이 아니라 이름도 없는 석수 목수 화공 등 백성의 무리들이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정확히 깨달았을 때 이름 없는 백성들에 대한 외경심과 역사의 참된 주인에 대한 자각을 새롭게 하게 된다.”(옥중서신/한울/388p)
또 이런 말씀도 남기셨습니다.
“캄캄한 밤이라도 내일 아침이면 반듯이 태양이 다시 뜬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악마가 지배하는 지옥에 떨어져도 신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나의 신앙은 역사다. 나는 역사 안에서 정의는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또한 나에게 유일한 영웅은 국민이다. 국민은 최후의 승리자이며, 양심의 근원이다.”(김대중 자서전 2권/인동/16p)
이렇듯 이 어른은 역사의 주인은 서민 또는 민중으로 지칭할 수 있는 국민이요, 역사의 궁극적 승자는 정의 곧 국민이라는 확신을 가지셨습니다. 따라서 이 신념으로 어른께서는 그토록 극심한 박해와 위협에 굴하지 않고 온갖 시련과 역경을 참고 견디며 역사의 주인인 국민의 승리를 위해 온 몸을 받쳐 한평생을 치열하게 사셨습니다.
오늘로부터 꼭 1년 전 2009년 1월 6일 당신의 생신에 어른께서는 일기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오늘은 나의 85회 생일이다. 돌아보면 파란만장의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이어서 하루 뒤인 1월 7일에는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라고 쓰셨습니다. 정말이지 어른께서는 후회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어른이 아니고는 이런 일기를 쓸 수 없습니다.
한반도의 서남쪽 끝부분에 자리 한 한적한 섬 하의도에서 서민의 아들로 태어나 헐벗고 굶주리며 눌리고 짓밟힌 국민을 역사의 주인으로 하늘처럼 받드는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 몸을 바쳐 사신 분, 역사에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국민이 역사에서 명실 공히 주인행세를 할 수 있는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여든다섯 해를 한결같이 살아내셨습니다.
일신상의 안일과 영화가 아니라 온갖 박해와 시련을 무릅쓰고 역사의 길을 선택하시고 그 역사를 몸소 사신 어른, 그리하심으로써 마침내 이 어른은 우리의 역사가 되셨습니다.
백성을 하늘처럼 받드는 민주주의의 역사, 진실과 정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국민승리의 역사, 민족분단의 갈등과 증오를 극복하고 화해협력의 시대를 연 민족평화통일에의 역사, 이것들이 모두 어른께서 몸소 살고 이루신 우리들의 역사입니다.
끝으로, 그럼 어른을 애타게 기리고 따르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위대한 이 역사를 우리 자신들의 역사로 체화해서 지금 거꾸로 가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는 일에 나서야 하고, 나아가 오고 오는 세대에 위대한 이 역사를 전승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책무입니다.
역사전승은 기억과 회상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과 회상을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역사를 올바르게 전승해 갈 수 있게 됩니다.
예 : 구약 - 출애굽사건, 신약 - 십자가사건. 참고 : 시편 78 : 1-8
우리는 결코 김대중, 이 어른을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서는 안 됩니다. 어른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시고 이루신 일을 언제까지나 거듭거듭 기억하고 회상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우리 민족사에 올곧은 삶을 세우고 바른 역사를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어른의 유산에 관심할 것이 아니라 어른의 유지를 받들 일입니다.
첫댓글 이해동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말씀 옳고 오름에 부족함이 없는 말씀입니다. (__)"..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해동목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