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미국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일제로부터 해방 후 66년간 우리에게 미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11월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날치기 처리로 한국 경제가 미국 경제에 통합되는 우려가 현실화되었다. (한미 FTA 찬성론자는 우리 경제의 영역이 확장되었다고 하겠지만.)
한미 FTA가 엄청나게 중요 이슈지만, 미국 자동차 산업이나 서비스 산업, 금융 산업, 의료 서비스, 보험업 등의 실태를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또 미국의 법률 체계나 미국 사회를 이끄는 로펌(Law Firm, 법률 회사)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 천국인 미국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좋은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바로 링컨 캐플런의 <로펌 스캐든>(황남석 옮김, 삼우반 펴냄)이다.
2. 미국 로펌을 통해 미국을 읽다
법률 시장 개방이 멀지 않았다. 한국에 로스쿨이 도입되어 일본식 법조인 양성 체제에서 미국식 법조인 양성 체제로 변하였다. 오늘날의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곳은 뉴욕 월가의 금융 기관이다.
이 금융 기관의 활동을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는 곳이 미국의 로펌들이다. 미국의 로펌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떻게 사업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로펌을 통하여 미국의 구조와 경제도 덤으로 알 수 있다.
3. 로펌 스캐든
▲ <로펌 스캐든>(링컨 캐플런 지음, 황남석 옮김, 삼우반 펴냄). ⓒ삼우반
이 책은 미국 제1의 로펌인 스캐든의 성장 과정과 내부 사정을 소개한다. 저자 링컨 케플런은 변호사 출신 언론인이다. 스캐든의 정식 이름은 '스캐든 압스 슬레이트 미거 앤드 플롬(Skadden, Arps, Slate, Meagher & Flom)'이다. 이는 다섯 명의 변호사 이름을 딴 것이다.
스캐든은 1948년 4월 1일 뉴욕 맨해튼에서 세 명의 변호사들이 설립한 법률 사무소로 출발하였다. 마셜 스캐든, 레슬리 압스, 존 슬레이트 세 명이 각각 다니던 로펌의 파트너 승진 경쟁에서 탈락한 뒤 만든 로펌이다.
이 로펌은 그 해 10월에 첫 신입 변호사로 입사한 조지프 플롬에게 제대로 봉급을 주기도 어려울 정도로 영세한 법률 사무소에 불과하였지만, 1950년대 이후 기성 로펌이 외면하고 있던 기업의 경영권 경쟁 시장을 장악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기업 매수 시장이 절정에 달하면서, 스캐든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수익성 높은 로펌이 되었다.
그리하여 설립 60년 후인 2008년 현재 이 로펌은 소속 변호사가 2000명이 넘고, 총 직원은 4500여 명을 헤아리며, 총 수익은 22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로펌 중 1위, 미국 전체 기업 중 213위에 해당하는) 세계 최대의 법률 제국을 형성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대 로펌 김앤장의 경우, 2008년 현재 변호사 253명, 외국 변호사 포함한 직원 1500여명, 매출액 약 3억 달러(3500억~3700억 원)이다(<법률 사무소 김앤장>(임종인·장화식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4. 스캐든의 성장 전략
스캐든의 성장 전략은 네 가지였다.
첫째, 회사의 인수 합병 분야에서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고, 관련되는 기업, 송무, 반독점 부문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들 분야에 스캐든의 변호사 4분의 3이 매달렸다.
둘째, 기존 의뢰인에 대한 법률 서비스의 범위를 확대하고, 스캐든의 능력이 잘 알려진 분야로 새로운 의뢰인을 유치하는 것이다.
셋째, 새롭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축적된 경험을 살려 기업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다. 스캐든의 송무 부문은 제조물 책임을 이유로 제소당한 회사들을 대리하여 소송을 수행하였다. 스캐든의 기업 법무 부문은 금융 회사가 주식, 채권 등의 금융 상품을 액면이하로 매각하는 업무에 관하여 자문하였다.
넷째, 새로운 전문 분야를 개척하고, 새로운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스캐든은 1980년대 들어서 선수금과 기업 매수 사건으로 번 돈으로 파산, 부동산, 에너지, 환경 분야에 뛰어들었다. 1983년 로스앤젤레스 분사무소 설치를 시작으로 1990년까지 시카고 등 미국 도시와 런던, 브뤼셀, 홍콩, 도쿄, 시드니에 분사무소를 두었다. 현재는 중국 상하이, 싱가포르에도 분사무소가 있다.
한국에서 회사 인수 합병이나, 기업 매수가 로펌의 주요 사업이 되어 로펌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였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스캐든의 업무 영역과 방식을 보면 한국의 경제 변화와 로펌의 사업 방향을 알 수 있다. 또 한국에도 곧 스캐든을 비롯한 미국 로펌의 분사무소가 설치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스캐든은 5조원 '먹튀' 투기 자본으로 말썽 많은 론스타의 미국 측 대리인이었다. 한국 측 대리인은 김앤장 법률 사무소다. 스캐든은 한국의 법률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2011년 상반기 우리 기업의 인수 합병 거래를 자문한 국내외 로펌 중 거래액을 기준으로 12위에 올랐다고 한다.
5. 스캐든 문화
이 책은 변호사 선발 과정, 급여, 업무 형태, 파트너 변호사로 선발되는 과정, 변호사의 수입, 분배, 로펌의 운영 방법, 변호사의 부도덕성과 공익 활동 등에 관한 것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그 중 특히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스캐든 변호사의 로스쿨 출신 학교였다. 스캐든은 미국의 다른 대형 로펌과 달리 상위 10대 로스쿨 졸업생이 압도적으로 많지 않았다. 1990년 스캐든의 어소시에이트(파트너가 아닌) 변호사는 88개 로스쿨 출신이었다. 10퍼센트는 컬럼비아 대학, 9퍼센트는 뉴욕 대학, 8퍼센트는 하버드 대학, 7퍼센트는 포덤 대학, 6퍼센트는 조지타운 대학, 5퍼센트는 시카고 대학, 4퍼센트는 미시간 대학 출신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81개의 서로 다른 로스쿨 출신이었다. 스캐든의 변호사를 한 명만 배출한 로스쿨은 33개교였다.
6.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우리에게도 이제 우리 로펌이 생소한 말이 아니다. 스캐든과 같은 업무를 하는 우리나라 로펌도 많이 생겨났다. 기업도 국내외 로펌에 사건을 많이 맡기게 되었다. 미국식 로스쿨이 만들어져 2012년부터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1500명이 나온다. 미국 로스쿨로 유학을 가 미국 변호사 자격을 따는 학생도 많이 생겼다.
이 책은 한국 법률 시장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케 한다. 한국의 기업가, 학생, 공무원, 법조인이 이 책을 보고 법률 시장 개방과 한국 법조계의 미래에 대하여 현명하게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