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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일) “죄송합니다”… 20년차 권익위 공무원 사망 후폭풍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 직무를 대리해 온 고위 인사의 사망을 둘러싼 후폭풍이 커지고 있다. 20년 간 부패방지 업무를 담당해 온 고인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 조사를 총괄했고, 지인들에게 해당 사건의 수사기관 이첩 불발과 관련한 괴로움을 호소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고인은 지난달 국회에 출석해서도 대통령실 관련 질의에 굳은 표정으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8월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세종시 종촌동의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권익위 소속 김아무개(51) 국장은 가족에게 A4 용지에 짧은 메모 형식의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심신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 "명품백 사건 처리 잘못돼" "실망드려 죄송" 괴로움 호소
김 국장은 청렴 정책과 청렴 조사 평가, 부패 영향 분석 등을 총괄하는 부패방지국의 국장 직무 대리를 수행했다. 20년 동안 부패방지 업무를 맡아오며 관련 분야 전문가로 통하는 김 국장은 사망 직전까지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응급헬기 이송 등 민감한 사안 조사를 이끌었다. 특히 김 국장은 생전에 지인들에게 김건희 여사 사건 처리 결과에 대해 상당한 스트레스와 압박을 호소했다고 한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김 국장은 최근 부패방지 관련 업무를 함께 했던 지인과의 통화나 문자에서 "최근 저희가 실망을 드리는 것 같아서 송구한 맘(마음)이다" "참 어렵다" "심리적으로 힘들다"고 호소했다. 김 국장과 메시지를 주고 받은 지인 A씨는 "6월27일엔 김 국장이 전화를 걸어와 '권익위 수뇌부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사건을 종결하도록 밀어붙였다'는 취지의 괴로움을 토로했다. '내 생각은 달랐지만 반대할 수 없었다. 힘들다'고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김 국장은 권익위 업무를 잘 알고 있는 지인들과 연락하면서 여러 차례 "명품백 사건 처리가 너무 잘못돼서 걱정이다" "죄송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앞서 권익위는 지난 6월9일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에 대한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 조사 결과 배우자 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 등을 내세워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 김 국장의 상급자였던 정승윤 부위원장은 당시 긴급 브리핑을 통해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에 종결 결정했다"는 전원위원회 의결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사건 종결 처리에 반발한 최정묵 비상임위원이 "법리적으로 충분히 다툼의 여지가 있고, 국민이 알고 있는 중요한 비리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며 항의성 사퇴를 하는 등 잡음이 이어졌다. 의결권을 가진 일부 권익위 위원들은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한 사안임에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권익위 홈페이지에는 '영부인에게 300만원 엿 선물을 줘도 되나' 등 조롱성 질의가 이어졌고, 인터넷과 전화 등을 통해 항의성 문의도 빗발쳤다. 정치권에서도 여진이 이어졌다. 야권은 권익위가 논란의 디올백을 회수해 확인하거나 김 여사 등 관련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를 벌이지도 않고 종결 결론을 낸 것은 '정권 눈치보기'로 볼 수밖에 없다며 특검법 도입을 주장했다. 쏟아지는 질타 속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김 국장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면서도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 김 국장은 '대통령실에 청탁금지 업무를 담당하는 담당자가 누구인가'라는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청탁금지법 제도 운영과 관련된 차원에서 파악은 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조사와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말씀 드릴 순 없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권익위 안팎에서는 김 국장이 민감한 사건 처리 과정에서부터 결과 발표, 후속 처리까지 모두 감당해왔고 최근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 추진까지 겹치며 상당한 괴로움을 겪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권익위 소속 공무원들도 김 국장 사망에 비통함과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김 국장의 빈소는 세종시 한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권익위 동료 공무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족들은 전날 빈소를 찾은 부위원장 등을 향해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지검은 김 국장 사망과 관련해 범죄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보고 유족 의견을 반영해 시신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
◆ "尹정권 무도함이 끝내 공무원 목숨 앗아가"
야당은 윤석열 정부가 공무원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명품백 수수 사건을 담당했던 부패방지국장이 '수뇌부로부터 사건 종결처리 압박을 받았으나 반대를 못 해 심리적으로 힘들었다'는 생전 지인과의 통화 내용이 드러났다"며 "철저히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예고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숨진 권익위 국장은 명품백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고 이를 막지 못해 죄송하고 아쉽다고 토로했다고 한다"며 "윤석열 정권의 무도함이 끝내 아까운 공무원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비판했다.
전은수 최고위원도 "청렴 정책을 총괄했던, 20년 넘게 이 일을 해왔던 공직자로서 사건 종결처리는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그의 죽음으로 명품백 사건 종결 처리 과정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게 됐다"고 직격했다. 전은수 위원은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바로 사과했다면 이렇게까지 죄 없는 사람을 괴롭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덮으려 하면 할수록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그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국민들 앞에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 고위 공무원의 사망과 관련해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부검 없이 수사가 종결될 전망이다. 8월 9일 대전지검은 숨진 김모(51) 권익위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 사건과 관련해 범죄 혐의점이 없고 유족들의 의견을 반영해 부검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세종남부경찰서는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할 예정이다.
이날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세종시 도담동 세종충남대병원 장례식장 VIP 1호실에는 권익위 직원들과 김씨의 지인들 조문이 이어졌다. 차분한 분위기의 빈소에선 간혹 조문객들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한 조문객은 “고인이 마음 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권익위 동료는 “(고인은)업무에 항상 최선을 다했다”면서 “동료들에게 신망이 두터웠다”고 전했다.
오후 4시쯤에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강준현·김남금·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 등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20여분간 빈소에 머물며 유족들을 위로하고 나온 야당 의원들은 “(유족들은)고인의 명예회복과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전날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을 빈소에서 만나 진상조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의원들은 “권익위의 진상조사가 충분하지 않다면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할 것”이라며 “내일(10일) 고인의 발인이 끝나고 다음주 월요일쯤 당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8월 8일 오전 9시 50분쯤 세종시 종촌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힘들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도 함께 발견됐다. 김씨는 권익위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로 일하며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헬기 이송 특혜 논란’ 등의 조사를 지휘했다. 정치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건을 조사하면서 김씨는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내리고 쌀값 올리자"… 논 천평 갈아엎은 농민들
"쌀값은 10개월도 안 되는 동안 17.5%가 떨어졌다. 쌀 80kg 한 가마는 18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물가는 올라 식당들은 공깃밥 한 공기에 2000원씩 받는데, 농민들은 밥 한 공기에 200원도 간신히 받고 있다. 생산비는커녕 스스로 일한 품값도 안 나올 지경이다." 폭락한 쌀값에 농민들이 윤석열 정부에게 항의하며 이같이 밝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의장 조병옥)은 농민들과 함께 9일 오전 경남 의령군 지정면 마산리 소재 논에서 투쟁을 선포하며 논을 갈아엎었다.
농민들은 "쌀값 폭락, 농업생산비 폭등, 이대로는 못 살겠다 갈아엎자"라고 외쳤다. 또 농민들은 쌀값 보장과 함께, 지난 7월 4일 서울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했다가 구속된 김재영 전농 부경연맹 사무국장의 석방을 요구했다. 농민들은 트랙터에 '쌀값 보장', '윤석열 퇴진'이라고 쓴 펼침막을 붙였다. 이날 농민들이 갈아엎은 논은 1150평이다.
◆ "황금들판 바라보는 농민들 가슴 새까맣게 타 들어가"
농민들은 1977년 쌀값 통계를 시작한 이래 최대 폭락이라 주장하고 있다. 조병옥 의장은 "최대라던 재작년 쌀값폭락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한 번 역대급 쌀값폭락이 찾아왔다"라며 "본격적인 수확 시기 황금들판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 들어가고 있다. 면세유, 비료값, 농자재값, 인건비 등은 폭등했지만, 정작 쌀값 등 우리 농민들의 목숨값은 폭락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조병옥 의장은 "윤석열정권은 작년 양곡관리법 개정은 포퓰리즘이라서 거부하고, 수급조절로 쌀값 20만 원 보장한다고 호언장담했었다. 그 결과는 쌀값 대폭락으로 귀결되었다"라고 했다. 그는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고, 언 발에 오줌 누듯 뒷북만 치는데 어떻게 쌀값이 보장될 수 있단 말이냐"라며 "생산비도 안 나오는 10년 전 목표 가격 20만 원 갖고 생색이나 내고, 폭등하는 물가 잡겠다고 농산물에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이대로는 다 죽는다고 외친 청년농민은 구속해서 잡아 넣는데 쌀값이 보장이 될 수 없다"라고 했다.
전농 부경연맹 등 단체들은 "지난 8월 6일 전국의 농민들이 서울에 모여 쌀값 대책을 촉구했지만 현 정부는 묵묵부답이다"라며 "농민들이 15만 톤 격리해라, 20만 톤 격리해라 얘기하는데, 고작 5만 톤, 그것도 올해 수매해야 될 물량에서 당겨다 격리하는 게 대책이 최선인가. 무관심과 무대책으로 농업을 무시하고 농민을 천시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들은 "이대로라면 올가을에 역대 최대의, 역대 최악의 쌀값 폭락이 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땅에서 누구 하나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며 "생산하는 농민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 국민들도, 모두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식량위기는 이미 현실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농민들은 "47년 만에 최대로 폭락한 쌀값 앞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논을 갈아엎는다"라며 " 자식같이 키우는 게 농사다. 애지중지 키운 벼를 갈아엎으며 우리는 농민을 조롱하는 그 모든 작태에 맞서 한치의 물러섬 없이 싸워 나갈 것"이라고 했다.
농민들은 "윤석열 끌어내리고 쌀값 끌어올리자", "쌀값은 농민값이다! 농민생존권 지켜내자",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나락값 1kg 2300원 보장하라", "쌀값폭락 진짜 주범 쌀 수입 중단하라", "양곡관리법 전면개정하고 쌀값을 보장하라", "농민기만 거짓약속 윤석열정권 퇴진하라"고 외쳤다. 농민단체들은 오는 9월 4일 시·군 공동행동에 이어 9월 28일 경남농민대회를 열고, 11월 전국농민대항쟁을 벌인다.
"연 소득 100억"… 귀어인 성지, 젊은 부자어촌 '백미리'
지난 8월 5일 찾은 경기 화성시 백미리 어촌마을. ‘100미리’라고 쓰인 입간판을 지나 마주한 백미리는 작은 포구와 해안의 드넓은 갯벌, 탁 트인 바다를 품고 있었다. 물이 빠지자 어촌계 어민 예닐곱 명이 호미와 삽을 들고 갯벌에 나가 조개와 낙지를 잡기 시작했다. 어민 김모(50)씨는 “알이 굵은 백합과 모시조개가 곧잘 잡힌다”고 말했다.
마을 한쪽 3층짜리 수산물가공공장에선 대여섯 명의 어민들이 조개와 전복, 꼬막 등을 선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갓 잡은 싱싱한 수산물을 가져와 손질한 뒤 자체 개발한 양념간장을 붓고 장류로 만드는 공정이다. 마을 이름인 백미(百味)는 어장자원이 풍부해 다양한 해산물 맛을 즐길 수 있다는 뜻. 마을 이름 그대로 다양한 해산물 채취와 가공으로 백미리는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쇠락의 길을 걷는 여느 어촌마을과는 달리 백미리 마을공동사업장 곳곳에선 활기가 돌았다.
◆ 쇠락의 어촌마을, 젊은 부자어촌으로 거듭나
인구 감소와 고령화 위기를 겪던 백미리가 ‘젊은 부자 어촌마을’, ‘귀어인의 성지’로 옷을 갈아입는 데 성공했다. 한때 70명에 달하던 어민이 2000년 초반 50명대까지 줄면서 소멸 위기에 내몰리던 백미리가 대반전을 이뤄낸 원동력은 ‘화합’과 ‘도전’이었다. 어민 모두 ‘마을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목표를 향해 똘똘 뭉쳤고 신사업 발굴에 박차를 가한 게 현재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반전의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백미리를 위기에 몰아넣은 대규모 간척사업이었다. 김호연(60) 백미리 어촌계장은 “1990년대 후반 마을에서 5km가량 떨어진 바다에 시화방조제와 화옹방조제가 잇달아 들어섰다”며 “이후 조류흐름이 바뀌고, 모래톱이 깎여 나가면서 주 수입원이던 김 양식은 물론 갯벌채취도 힘들어져 어민 상당수가 생업을 잃게 될 위기에 내몰렸다”고 떠올렸다.
1,000헥타르(1,000만m²)의 공동어업구역을 가지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던 마을을 지킨 건 토박이 어민들이었다. 어민들은 2004년 새롭게 선출된 당시 40대의 젊은 김호연 어촌계장을 중심으로 힘을 모았다. 원주민 이탈로 인구 소멸, 고령화의 시계가 빨라지자, 귀어인 유치에도 뛰어들었다. 새로운 소득원 발굴을 위해 마을공동사업을 위한 기반 조성에도 박차를 가했다.
◆ 가공 통한 상품화·어촌체험마을 성공… 또 한번 도약
먼저 기후변화에 따른 수산 환경의 변화에 눈을 돌렸다. 주로 남해안에서 생산되던 새꼬막 양식업을 백미리 바다에 도입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듬해 10억 원대 매출을 올리면서 희망을 봤고, 이후 수년간의 도전 끝에 고부가가치 품종인 전복, 해삼 양식에도 성공했다. 수산물 확보망이 자리 잡자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3년 유통전문업체인 ‘백미리자율관리공동체영어조합법인’을 세웠다. 어민들이 갯벌에서 잡은 모시조개, 꼬막, 낙지 등을 직거래로 판매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주기 위한 시도였다.
2012년 백미리로 이사와 어촌계 사무장을 맡아 공동체사업을 이끈 이창미(60)씨는 “판로가 확보되자, 어르신들도 갯벌에 나가 조개류 등을 잡아 조합에 맡겼다”며 “벌이가 늘어 손주 대학 학비를 보태는 어르신도 있었다”고 말했다. 수산업에 부가가치를 더한 6차 산업화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2008~2011년 해양수산부의 '자율관리 어업분야 선진 모범공동체'로 선정돼 받은 특별사업비 10억 원(국비 4억 원, 화성시 4억 원 등)에 자부담 8억 원을 보태 2016년 7월 마을의 숙원인 수산물가공공장(496㎡)을 지었다.
첨단 제어 시스템을 갖춘 냉동(-40℃) 냉장(-20℃) 시설과 수산물 세척기계 등을 구비하게 된 어민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한 해 생산하는 3,300톤의 바지락 등 수산물을 직접 가공해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가공공장에서 담근 꽃게장, 새우장, 돌게장, 꼬막장 등은 ‘백가지 맛 백가지 바른먹거리 바다 백미’란 마을 브랜드로 국내 주요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에 입점했다. 가공공장에서만 연 30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다.
어촌체험마을도 문을 열었다. 거대한 항구를 끼고 있고 먹거리촌도 발달돼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옆 마을 제부도와 궁평항 등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졌으나, 한적한 시골 어촌마을의 '풍광'에 승부를 걸었다. 천혜의 생태환경을 갖춘 갯골수로(바닷물과 육지가 맞닿은 곳)에 도입한 망둥어 낚시 체험이 소위 대박이 나면서 ‘서해안 낚시 명소’로 떠올랐다.
갯벌에 말뚝을 박고 그물을 걸어 물고기를 잡는 백미리의 전통 어업 방식인 ‘건강망’ 등의 체험도 인기를 끌었다. 갯벌마차, 카약 레이싱 등 이색 체험장에도 체험객이 몰렸다. 체험프로그램에 B&B하우스(식당·카페, 숙박시설)에서 어민들이 손수 제공해주는 특별식 등이 인기를 끌면서 백미리는 단숨에 한 해 15만 명이 찾는 ‘해양생태휴양마을’로 발돋움했다. 코로나19 이전엔 전국 어촌체험마을 중 한 해 매출(20억 원) 1위를 기록할 정도였다.
백미리의 성공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2004년대 2억여 원에 불과하던 마을 공동체사업 소득은 2015년 35억 원으로 급증했고 지난해 100억 원을 돌파하며 20년 새 50배의 성장을 이뤘다. 백미리 어촌계에 따르면 이 마을의 공동체 소득은 2004년 전국 2,200개 어촌계 중 2,100위였으나, 지난해 10위로 뛰어올랐다. 해양수산부는 백미리의 기적과도 같았던 성공 사례에 주목, 2019년 전국 지자체 및 어촌계 지도자 200명을 모아 백미리 마을 견학을 시켰다.
◆ 젊어진 백미리… 비결은 귀어인 성지로 우뚝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워졌어요. 만족합니다.” 2016년 경기 수원에서 학원을 운영하다 그해 봄 백미리로 짐을 싸 귀어한 최중순(57)씨는 “처음엔 새벽 갯벌채취 등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는데 지금은 베테랑 어민이 됐다”고 흡족해했다. 최씨는 갯벌 어업에 마을공동사업인 꼬막양식 등에 참여하면서 연간 억대 가까운 수입을 올리고 있다.
도시 생활과 비교하면 수입이 배 이상 늘었다. 시간적 여유도 많아져 삶의 질도 높아졌다고 했다. 백미리에선 최씨처럼 억대 수준의 수입을 가져가는 어민이 적지 않다고 한다. 기존 어민과의 갈등은 없었다. 김호연 어촌계장은 “마을의 공동체 수입을 늘리면서 일한 만큼 공정하게 나누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며 “룰대로 하니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백미리의 기적과도 같은 성공엔 귀어인의 힘이 컸다. 백미리의 귀어인 유치 노력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마을은 어촌계원이 50여명에 불과했고, 평균 연령도 75세에 달해 쇠락하고 노쇠했다. 소멸위기에 직면하자 김 어촌계장은 어민들을 설득, 1가구에 1명만 가입할 수 있게 제한한 어촌계 가입정관을 바꿔 마을의 20~30대 청년 20여 명을 영입했다.
외부인의 어촌계 가입문턱도 대폭 낮췄다. 마을 내 토지 소유, 거주기간 등 까다로운 조건도 없애 버렸다. 귀어인을 한정된 어촌마을의 수입을 나눠줘야 할 대상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인식을 바꾸는 데 힘썼다. 낯선 환경에 놓인 귀어인에게 손을 내밀어 맨손어업부터 공동체 사업까지 기술을 전수해주며 자립을 돕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가 퍼지자, 어촌 특유의 텃새도 사라졌다.
백미리가 전국적으로 모범이 되는 귀어인 성지로 떠오르게 된 배경이다. 2000년 초반 55명으로 시작했던 어촌계원은 지금은 배가 넘는 124명으로 늘었다. 이 중 절반은 귀어인이다. 20대 청년 귀어인도 5명이나 있다. 평균 연령 역시 예전 75세에 지금은 49세로 젊어졌다. 어민이 늘면서 백미리 전체 마을 주민도 2002년 134가구(315명)에서 지난달 기준 236가구(461명)로 늘었다.
화성시의 재정지원도 뒷받침이 됐다. 시는 백미리를 비롯해 관내 4곳의 어항·어촌에 대해 어업인·귀어인 지원사업을 펼쳐왔다. 청년(18~39세) 귀어인에 대해선 3년간 월 최대 110만 원의 어업경영비를 지원해주는 ‘청년어촌정착 지원사업’도 진행했다. 올해부터는 어업을 희망하는 도시민에게 어업, 양식업 등 기술을 알려주고 임시주택 2곳도 제공해주고 있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에 따르면, 2045년엔 전국 300여 개 어촌·어항 마을의 87%가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내몰릴 것이란 경고가 있다”며 “어촌의 새로운 희망을 연 백미리 주민들의 소득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필요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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