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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진행 중인 미래’ 디지털 혁명 사회의 명암과 대처법 제시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클라우스 슈밥 ‘제4차 산업혁명’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인·기업가인 클라우스 슈밥이 지난 10월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관련 특별대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1세기 정보혁명을 ‘제4차 산업혁명’으로 명명한 그는 세계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 창립자이기도 하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공상과학(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유명한 말이다. 오늘날 지구적 차원에서 주목할 현상 중 하나는 기술 변화의 속도가 배가되면서 현재와 미래의 공존을 체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학이 점점 현재학이 돼가는 게 21세기 현대사회의 풍경이다.
서구 모더니티를 이끌어온 산업사회의 종말을 알린 이는 사회학자 대니얼 벨과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였다. 벨은 <탈산업사회의 도래>를,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을 통해 산업사회가 정보사회로 변화했음을 선구적으로 계몽했다. 정보사회의 진전은 거역할 수 없는 인류사의 도도한 흐름이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컴퓨터·인터넷 기반 정보혁명을 ‘제3차 산업혁명’이라 불렀고, 경제학자이자 정치인·기업가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1938~)은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사이버물리시스템(CPS)·빅데이터 등이 주도하는 정보혁명을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명명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올해 1월 세계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에서 본격적으로 제시된 개념이다. 이 개념에는 현재 진행 중인 기술혁명이 인류의 삶과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세계경제포럼 창설자이자 회장인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2016)은 이런 문제의식 아래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분석한 책이다. 엄격한 연구서라기보다 개괄적 입문서인 이 저작은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해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 제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제4차 산업혁명>은 슈밥이 세계경제포럼에서 진행해온 연구 프로젝트 등에 기반을 두고 쓴 저작이다.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는 제4차 산업혁명의 정의, 주요 기술, 그 사회적 영향과 정책적 도전을 다루며, 제2부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실용적 방안 및 해법들을 소개하고 전망한다.
슈밥은 21세기 시작과 동시에 출발한,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혁명을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제4차 산업혁명은 몇 가지 측면에서 제3차 산업혁명과 다르다. 속도 측면에서 제4차 산업혁명은 선형적 속도가 아닌 기하급수적 속도로 진행되고, 범위와 깊이 측면에서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술을 융합해 개인뿐만 아니라 경제·기업·사회를 유례없는 패러다임 전환으로 유도한다. 그리고 시스템 충격 측면에서 국가 간, 기업 간, 산업 간, 나아가 사회 전체 시스템의 변화를 수반한다.
슈밥에 따르면,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은 물리학 기술, 디지털 기술, 생물학 기술이다. 무인운송수단, 3D 프린팅, 첨단 로봇공학, 신소재가 물리학 기술을 주도한다면, 사물인터넷은 디지털 기술을, 유전학은 생물학 기술을 대표한다. 주목할 것은 각 분야 기술혁신이 초기 단계이지만 융합을 기반으로 서로의 발전을 증폭시키는 변곡점에 이미 도달해 있다는 점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충격과 영향은 경제, 기업, 국가-세계, 사회, 개인을 망라한다. 이 가운데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성장과 고용의 경제에 대한 분석이다. 슈밥에 따르면, 기업이 파괴적 혁신을 주도하면서 제4차 산업혁명은 성장을 고취시킬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면서 일자리를 감소시키고 불평등을 강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노동의 변화에 대해 그는 새로운 형태의 근로계약 및 사회계약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제4차 산업혁명이 인류 발전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게 하기 위한 조건으로 슈밥은 변화에 대한 포용적 접근과 공동의 담론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사회·정치 시스템 개혁을 주장한다. 이미 시작된 제4차 산업혁명의 성패는 결국 기술 변화에 대처하는 인류의 집합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 제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의 평가가 공존한다. 기술 변화를 주목하는 관점은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해 이제까지 알고 있던 세계와 빠르게 작별한다고 본 반면, 사회 구조를 중시하는 관점은 자본주의라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특징이 여전히 중요하고 기술 변화를 과장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절충적 시각에서 볼 때 나라·직업·세대에 따라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체감 정도는 다르다. 실제 사회는 기술결정론이 상상하는 사회와 구조결정론이 강조하는 사회 중간 어딘가에 놓여 있을 것이다. 어느 사회든 ‘얼리 어답터’와 ‘슬로 어답터’는 공존해 있기 마련이며, 따라서 긍정론과 부정론 한 시각만으로 변화를 온전히 독해하기 어렵다.
주목할 것은 기술 변화가 가져오는 사회적 영향이다. 정보경제학자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가 <제2의 기계 시대>에서 강조했듯 기술 변화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기계가 미숙련 일자리를 대체하고, 자본이 노동보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며,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부를 독점하는 것은 정보혁명 진전과 함께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는 경향이다. 슈밥 역시 관리되지 않는 기술혁신이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결국 민주주의를 훼손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분명한 것은 제4차 산업혁명이 먼 미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가져오는 노동의 위기에 더해 빅데이터 활용 기업의 등장과 클라우드 등 새로운 플랫폼의 부상, 나아가 무인자동차·자동번역기·가상개인비서의 출현 등은 이미 실현된 현실이거나 곧 실현될 미래다. 오늘날 기술의 혁신과 융합이 21세기 사회변동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혁신과 융합이 가져오는 제4차 산업혁명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제4차 산업혁명>은 유용한 입문서로서 의미를 갖는다.
■ 한국어판 저작은
<제4차 산업혁명>은 송경진 세계경제연구원 원장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졌다. 디지털 기술이 열고 있는 새로운 시대를 다룬 브린욜프슨과 맥아피의 <제2의 기계 시대>를 함께 읽어보면 좋다.
■고용 불안감 키운 알파고…대안으로 화제 된 기본소득 - 국내서 실감한 4차 산업혁명
우리 사회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실감하게 한 것은 올해 3월 이세돌과 인공지능인 알파고 간 바둑 대결이 가져온 ‘알파고 현상’이었다. 제4차 산업혁명은 특히 일자리를 감소시키고 그 결과 실업을 일상화시킬 터인데, 그런 가까운 미래에서 경제적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이러한 우려는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기본소득이란 노동·재산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을 말한다. 이 제도의 목적은 국가가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근대 이후 토머스 페인, 존 스튜어트 밀 등 여러 사상가에 의해 빈곤에 대한 해법의 하나로 제시됐다. 지난 20세기에는 제임스 토빈, 존 갤브레이스 등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물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 보수적 경제학자들까지 다양한 형태의 기본소득을 제안했다.
기본소득은 장단점이 분명한 제도다. 한편으로는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고, 그 관리 비용을 줄이며, 선별 복지에 따르는 낙인효과를 방지하는 것을 포함해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하려는 의욕을 줄이고, 재원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세금을 올려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정보경제학자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제2의 기계 시대>에서 기본소득의 명암을 주목했다. 이들은 기본소득이 경제적 궁핍을 해결해 줄 수 있지만, 사회적 권태와 방탕이라는 위험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핵심은 제4차 산업혁명이 노동시장과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이다. 기술혁신이 결국 미숙련 일자리 감소와 이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을 증가시킬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미래다. 최근 핀란드, 네덜란드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실험을 추진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에선 녹색당, ‘녹색평론’ 등이 기본소득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제4차 산업혁명의 사회적 결과를 복지제도 강화로만 해결할 수 없다면, 기본소득은 그 대안으로 앞으로 더욱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