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두고 내린 근심
2023년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사진 공모전 금상 - 김형민「노을」
몇 달 전 이사를 하면서 출퇴근이 그야말로 고역이 되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버스를 타고 회사까지
쭉 앉아 갈 수 있어 편했는데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사람들로 가득 차서
숨쉬기도 버거운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 했다.
내가 타는 4호선은 동작역과 이촌역 사이
한강을 건너는 구간이 있어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콩나물시루처럼 승객이 빽빽한 '지옥철'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처음에는 숨이 턱턱 막히며
몸을 가누기 힘들었던 지하철에서
이젠 제법 사람들 틈을 야무지게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일터로 향한다.
그날은 마무리할 일이 있어
퇴근이 늦어진 날이었다.
사람이 붐빌 때가 살짝 지난 시각이라
다행히 지하철은 한산했다.
지친 몸으로 좌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꺼내 든 나는
즐겨보는 동영상 플랫폼에 접속했다.
10분 쯤 갔을까?
한창 숏폼 영상을 보고 있는데
안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승객 여러분,
우리 열차는 지금 한강을 지나고 있습니다.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으시고
한강과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내일은 주말입니다.
근심과 걱정은 모두 열차에 두고 내리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노을지는 한강의 풍경이
창밖으로 예쁘게 펼쳐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한강을 건너는 구간을 지날 때마다
풍경사진을 찍을만큼 감성적이었는데
마음이 언제 이렇게 무뎌진것일까.
모처럼 저녁놀이 내려앉는 한강을 감상하는 동안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면서 근심과 걱정은
두고 내리라는 그 말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이윽고 내려야 할 역에 다다랐다.
신기하게도 기관사의 말처럼
모든 근심 걱정을 두고 내린 듯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비단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방금 나와 함께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어쩐지 씩씩해 보였다.
*김소원
서울 동작구에서 5살 딸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남편과 함께 끈끈한 전우애를 나누며
열심히 육아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아이를 등원시키고 부랴부랴 지하철에 오르지만
한강 풍경을 감상할 만큼의 여유를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세계자연유산 한라산 백록담 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