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사법부 판결이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유.무죄만을 놓고 본다면 판결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재판관들 중에 보충의견을 내지 않은 여섯 분과 개인의 자유를 국가 안위 보다 더 중시해야 한다는 한 분을 이해하기 어렵다. 입법부를 통하여 대체복무에 관련한 입법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며, 그 대체복무는 병역거부자들을 충분히 수용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또, 개인의 자유가 국가 안보의 상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대적 양심을 존중하는 수준의 대체복무이어야 한다.
사법부에서는 병역거부를 개인 양심에 의한 행위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사법부가 법리적 해석에만 충실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회에서도 병역거부를 양심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병역거부를 보도하는 미디어들의 보도행태를 살펴보면,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 갖거나 신중하여야 함을 보여 주기도 하는데, 앵커나 기자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로 병역거부가 확실히 양심적인 것이라고 단정짓기 어렵기 때문에, 의미적 용어가 아닌 시사적 용어처럼 처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병역거부자들의 개인적 종교와 개인적 평화주의의 견해에 따른 양심이 왜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일까? 사회가 냉소적이고 보수적이기 때문인지, 병역거부자들의 행태와 그를 지원하는 열혈 시민단체들 때문인지, 확실히 따져 보아야 한다.
한국방송 보도 시간에 인터뷰한 병역거부자 나모씨는 "이제는 총을 들지 않고도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고 또 서로 형평성을 맞춰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굳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무리하게 그렇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또, 병역거부를 지원하는 모임의 회원인 이모씨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국가이고 헌법에도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있는 만큼 그리고 더 이상 냉전시대가 끝났기 때문에 국가안보나 이런 게 총 들고 북한과 대치하는 것만이 국가안보는 아니잖아요."라고 했다.
나모씨의 "이제는 총을 들지 않고도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말이 과연 바른 말일까? 지금 당장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보더라도 총을 들지 않고는 공존할 수 없는 세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지금 당장 비무장지대와 철책선의 모든 병력이 총을 내려 놓으면, 우리 모두가 아메리카와 같은 주변 강대국과 아직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북한과의 공존이 가능할까? 공존할 수 없는 이유가 아메리카에 있든, 북한에 있든.. 군대가 총을 내려 놓고 공존이 가능하냔 말이다. 또, 병역거부를 지원하는 모임의 이모씨의 말 중에 "더 이상 냉전시대가 끝났기 때문에"라는 말이 있다. 냉전은 끝났다. 남북만큼은 아직 냉전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는 주장은 일단, 빼고 이야기해보자. 그렇다고 냉전시대에만 총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 냉전시대이었기 때문에 총을 들고 있었나? 냉전시대가 끝났기 때문에 총을 내려 놓아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라크 민중이 냉전시대가 종식되어서 저렇게 유대의 신무기 경연대회의 샘플로 죽어 가고 있는가 말이다.
이런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얼마든지 비판 받을 수 있는 것이며, 병역거부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병역거부를 지원하는 시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있는 자칭, 진보시민단체들의 반응에서 나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민변의 성명서를 보면, 대체복무를 강력히 주장하는 논조로 되어 있지만, 그 이유가 개탄스럽다. 많은 여증들에게서 확인된 바 있고, 한겨레 병역거부 게시판에 많은 글들이 잘 보여 주듯이.. "단지, 집총만을 거부한다는 이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민변은 단정지어 말하고 있다. 이는 민변이 병역거부의 핵심에도 별반, 관심 없었다는 증거가 된다. 최소한 이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여증들의 요구를 단, 한 줄만 읽었더라도 그런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증들은 분명하고 정확하게 요구하기를 군병력을 이롭게 하는 어떤 행위도 거부한다고 밝히고 있다. 민변은 젯밥에만 관심이 있고, 누구의 제사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병역거부의 본질을 외면한 채, 그저 병역거부 옹호만이 민주사회를 위한 정의로운 행동인 듯, 착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학계에서 나서서 옹호하고 있는 한홍구씨(사실, 말이 학계지 학문측에도 끼기 어려운 종교대학 교수)도 마찬가지다. 판결 자체가 인권을 후퇴시킨 일인지는 여러 가지 따져 볼 일이지만, 여호와증인 앞에서 부끄럽다는 주장은 개도 웃을 일이다. 한홍구씨는 여증의 일관성을 놓고,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배신적 전향을 들어 칭찬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일관성을 지킨 것은 여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 진영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진영의 독립운동에 있어서 배반적 전향자가 있듯이 여증에게도 배교자가 있었고, 독립운동가들의 일관성있는 투쟁이 있었듯이 여증의 집요한 거부가 있었을 뿐인데, 마치 여증만이 일관성을 지킨 것처럼 논리를 피는 역사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들어냈다. 또, 백년 전에는 아파트도 금기였다는 예를 들어, 마치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풍토가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논리를 폈는데, 이는 병역은 고대국가시절부터 국가 보존의 중요한 가치를 지녀 왔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려는 파렴치한 일례일 뿐이다.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지, 자신의 주장에 눈이 멀어 모르는 것인지.. 아둔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실질적인 병역거부 당사자들과 그와 연관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중 아이디까지 써가면서 이 곳에 주장한 것들은 굳이 끼어 넣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하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병역거부 당사자와 그것을 지원하는 단체와 학계, 거론하지 않았지만 한겨레같은 옹호언론들은 병역거부를 계속 사회에 왜곡시키고 있다. 주요 문제점은 병역거부가 마치 숭고한 평화주의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과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옹호에만 충실한 점과 병역거부가 민주화 운동에 연계된 듯한 주장과 병역거부가 독립운동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왜곡시키고, 종교적 교조주의에 빠진 양심을 올바름을 추구하는 양심처럼 주장하고 있다는 점들이다.
입법부는 대체복무를 제도화해야한다. 이는 여증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국가 안위에 냉소적이고 비열한 집단들의 가면놀이에 눌리어, 다른 이유로 병역거부 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굳이 종교가 아니라 군대가 가져올 수 있는 혐오감에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들이 발생한다면 사회가 포용해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병역거부 유죄판결은 유감일 수 있다. 하지만, 병역거부가 병역이행의 양심 위에 군림해서는 안되며, 동등한 입장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판사 다섯 분(개인의 양심을 상위에 두려는 자 빼고)의 보충의견을 존중하는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고 이해한다. 무조건적 처벌에만 관점을 두는 수구단체들과 개신교계의 이단놀이에 의거한 병역거부 처벌 주장은 일말의 가치도 없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다.
병역거부자들과 병역거부를 지원하는 자들의 안일한 정신상태는 계속적으로 병역거부가 사회에서 양심으로 인정받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병역거부 의견에 대한 다원적 존중(여증의 획일적 병역거부 파괴)과 개인의 종교 교조주의적 신념을 비판하고, 병역이행자들의 인권과 평화주의에 동등한 입장에 서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있을 때, 사회는 그들의 양심을 믿어 줄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이며, 처벌이 반인권적 행위가 될 수 있으므로, 병역이행자들의 인권희생에 비중을 같이하는 대체복무를 제도화 하자는 솔직한 주장을 펼 수 있어야 한다.
대체복무가 시행이 되고, 병역거부가 사회적으로 수용이 되더라도, 병역거부가 개인의 신념이 아닌 것처럼 평화주의나 외국의 사례를 계속 들먹거리는 이상 병역거부자들의 주장은 상대성을 상실하고, 불쾌감과 거부감을 가져올 것이다. 정신 차려라.
첫댓글 깊다......여증놈들 때문에 양심이란 그 정의가 곡해되는거......진정한 양심을 논의하게 못하게 만든다는거......썅노무새끼들!
맞어유.. 진정한 논의 자체가 진전이 안되유... 나뿐 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