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역내 친환경 산업에 美만큼 보조금”… 韓 태양광 불이익 우려
보조금 많은 곳으로 기업 이전 차단
‘자국 우선주의’ 보조금 전쟁 본격화
韓기업 EU공장 유무 따라 희비
생산시설 해외 이전 가속화 우려도
왼쪽부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유럽연합(EU)이 전기차 배터리 제조기업 등 친환경 기업에 미국 등 제3국과 동일한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역내 기업이 보조금을 많이 주는 지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하지 않도록 막겠다는 취지다.
북미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한 ‘맞불’ 성격이 강해 세계 각국의 ‘보조금 전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 산업계에는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도래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EU 내 공장이 많은 국내 배터리 업계는 보조금 수혜가 기대된다. 반면 생산시설이 유럽에 없는 기업들은 ‘보조금 장벽’에 막힐 수 있고, 한국 기업의 생산시설 해외 이전 또한 빨라질 수 있어 민관 차원의 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EU “이전 안 하면 해당 지역만큼 보조금 지급”
EU 집행위원회는 9일(현지 시간) 2025년 12월 31일까지 기존의 보조금 지급 규정을 대폭 완화한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TCTF)’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핵심은 역외로 투자를 전환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해당 지역에서 받을 수 있는 보조금과 동일한 금액을 지원하는 이른바 ‘매칭(matching) 보조금’이다.
배터리, 태양광 패널, 풍력 전지판, 탄소 포집·이용 기술 등 주요 청정기술 관련 기업이 EU를 떠나지 않고 역내에서 투자를 지속하도록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재생수소 등 아직 개발 중인 청정기술에 대한 지원 조건도 간소화하고 한도 또한 높여주기로 했다.
EU는 27개국으로 구성된 공동 시장이라 각 회원국이 자국에 진출한 기업에 보조금을 주기 전에 반드시 EU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로 인해 다른 지역보다 보조금 심사 과정이 복잡하고 시일도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대폭 완화한 것이다. 이 혜택을 받는 대기업은 향후 5년간, 중소기업은 3년간 역외로 이전하지 않는 조건이 달릴 것이라고 유로뉴스 등이 전했다.
EU는 14일 신규 생산시설에 대한 신속 인허가를 포함한 탄소중립산업법, 핵심광물 공급망 다각화를 위한 핵심원자재법 초안도 공개하기로 하는 등 각종 ‘유럽 우선주의’ 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앞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올 1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그린딜 산업계획’이라는 친환경 산업 육성 청사진을 공개했고 이번에 그 세부 내용이 발표되는 것이다.
다만 재원 마련을 위한 EU 회원국의 부담 또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유럽 보조금 전문가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아무도 이런 보조금 지급 경쟁을 원치 않는다. 결국 짐은 (EU) 납세자가 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韓 기업 희비 교차
국내 기업의 희비는 엇갈린다. 일단 ‘배터리 빅3’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수혜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SDI와 SK온은 헝가리,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에 배터리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조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 부연구위원은 “이미 EU 내 공장이 있는 업체는 보조금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다만 태양광 관련 기업은 보조금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화큐셀을 비롯해 규모가 큰 국내 태양광 업체 중에는 EU 내에 공장을 가진 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풍력발전 업체들도 유럽에 공장이 없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은 “EU는 친환경, 탄소중립 등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역내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라며 “이 흐름이 계속되면 보조금을 많이 주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한국 기업이 옮겨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한재희 기자, 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