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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 맥시코 여류화가
출생 : 1907년 7월 6일
사망 : 1954년
출생지 : 멕시코
직업 : 서양화가, 해외 역사 인물
부서진 기둥, 1944년, 캔버스에 유채, 40x30.5cm
프리다 칼로는
내가 살바도르 달리 만큼이나
좋아하는 화가이다...
예술이라는 것은
특히 미술이라는 것은
어쩌면 관심이나 열정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흔히 광기라고 하기도 하고
그 광기는 예술가가 자기세계와의
치열한 싸움에서도 온전하게
불사를 수 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예술가로서의
진정한 재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접하든
그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작품에 대해 완전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품과 인생을
떼어 놓고는 말할 수 없는데..
프리다 칼로 만큼 인생이 곧
그 자신의 그림이 되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지 않을까 싶다...
아주 오래 전 프리다 칼로를
내가 처음 접했던 시절..
그 때의 나는 초현실주의 그림들에 대해서
한참 매료되어 있었고..
또 초현실주의 그림에 탐닉하다보니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며 충격과 함께
경외감마저 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삶을 되짚어 보면서
내가 그녀의 그림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었나를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희망의 나무 tree of hope 1946
on Masonite
22 x 16 in
Isadore Ducasse Fine Arts, New York
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 교외의 코요아칸이라는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프리다가 태어난 코요아칸은
조용한 시골마을이었지만..
당시는 20세기 초 역사상 가장 큰 사고였던
멕시코 혁명이 멕시코를 휩싸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프리다는 7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게되고..
1925년 그녀의 나이 18세 때에
그녀가 타고가던 버스와 전차가
충돌사고를 일으키며
승객용 손잡이들이 달려 있던
쇠파이프에 몸 한복판을 관통당하는
커다란 불행을 겪게 된다...
파이프는 옆 가슴을 뚫고 들어와
골반을 통해 이어진 질을 뚫고 허벅지로 나왔고..
당시 의사들은 그런 상태에서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했으나..
그 사고의 후유증은 평생
32번의 수술로 이어지기도 하며
그녀의 삶을 짓이겨 놓고 만다...
작은 사슴 The Little Deer 1946
Oil on Masonite 8 7/8 x 11 7/8 in
Collection of Mrs. Carolyn Farb, Houston
『이 그림 속의 그녀의 모습은
비록 여러 개의 화살 때문에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은 매우 투명하고 강한 빛을 발하는데,
이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신의 고통이 오히려 예술로 승화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망가진 작은 몸이 덩그러니
눕혀져 있는 침대 위에
그녀의 어머니는 커다란 거울을 가져다 놓았고..
그녀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929년 프리다는
자신보다 21살 연상인 마흔 두 살의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한다...
당시 그녀의 부모는 이 결합을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이라고 표현했다...
프리다와 리베라(1931)
1970년대,
페미니즘이 기세를 떨치기 전..
사실 프리다는
프리다 칼로 라는 이름보다는
디에고 리베라의 세 번째 부인이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금 덧붙인다면 스탈린주의자..
양성애자 라든가..
또는 프리섹스주의자 정도였을까...
그만큼 그녀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천재 혁명 벽화 운동가로
이미 멕시코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프리다에 비하면 확실히 거물급?
예술가로 추앙받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세기에 남을 카사노바라고 할 만큼
그의 여성편력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유명하다...
하지만 프리다에게 있어서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건축가, 아이, 애인, 친구, 동료, 남편,
어머니, 아버지, 아들이었다...
그녀는 그를 자기 자신이며
우주라고 할 만큼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으며
그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을 깎은 자화상(1940)
프리다의 그림을 이야기 하자면
그녀의 인생을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녀의 인생에서 과연 디에고 리베라의
존재를 빼면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혹자는 디에고 리베라가 아니었다면
프리다 칼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까지도 있지만..
나로선 그 말은 곧 프리다 칼로에게 있어서
'그림'은 그녀의 삶을 표현해 내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그 삶속에 디에고의 존재는 그만큼
표현하기 힘들 만큼 거대하다...
라고 이해하고 싶다...
결국 그녀는 디에고 리베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연히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떠있는 침대(1932)
프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 하자면
사실 이 부분이 나로선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이 되기도 한다...
프리다는 일생을 두고
디에고 리베라를 사랑했으며..
디에고 역시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단순히
'사랑'이라고 말해버리기엔
뭔가 부족한 듯 한동안 적절한
다른 단어가 없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그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은
마주보고 눈맞추고 행복해하는
그런 종류의 사랑과는 동떨아진 그 '어떤 것' 이었다...
내 치마가 저기 걸려있다(1933)
디에고 리베라의 애정행각은
결혼 후에도 사그러지지 않았고..
디에고의 아이를 그토록 원하던 프리다는
세 번의 유산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사고의 후유증 뿐만이 아니라
선천적인 자궁의 기형 때문에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선고를 받게 되기도 한다...
그 때의 그녀가 느낀 절망은《헨리포드 병원》,
《나의 탄생》,《프리다와 유산》,
이 세 작품에도 잘 드러나 있는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그녀의 비명이 들려오는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그 그림은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고 표현해도 과장이 아닐 듯 싶다...
가슴 아픈 기억(1937)
결혼 후에도 계속되던
디에고의 공공연한 여자관계가
그들 부부에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디에고는 그의 외도로 인해 그녀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만다...
그것은 바로 디에고가 프리다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관계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디에고와 크리스티나의 관계가
크리스티나의 고백으로 알려지며
프리다가 입은 상처와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 한 것이었다...
그때까지 디에고가 결혼한 여인의
여동생이나 친구와 바람을 핀 것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그 때 그녀가 남긴 그림에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나타나 있다...
트로츠키에게 헌정한 자화상(1937)
그가 배반의 칼날로 자신을 후벼판 후
저고리를 피로 물들인 채 말한다...
"그냥 몇 번 칼로 살짝 찔렀을 뿐입니다.
판사님.. 스무 번도 안 된다구요."
"일생 동안 나는 두 번의 심각한 사고를 당했다.
하나는 18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인데..
부서진 척추는 20년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와의 만남이다."
프리다가 그동안 디에고의
수많은 외도를 눈감을 수 있었던 것은
추측건데 그녀 자신이 디에고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디에고가
그녀의 동생 크리스티나에게 가지고 있던
프리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그 것 만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몇 개의 작은 상처들(1935)
프리다는 절규한다...
"내게 찾아온 두 번의 사고중에
당신이 더 나빠!"
그들 식의 사랑으로 말하더라도
디에고는 어떻게 해서든 크리스티나와의
관계는 피했어야 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프리다와 디에고는
수 개월간 별거에 들어갔고
결국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프리다는 크리스티나 사건 이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기도 하고
양성애자라는 소문이 떠돌아도
침묵으로 인정하며 한 때 사진작가
니콜라스 머레이와 동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리다의 내면에는
어느 한 순간도 디에고의 존재가
함께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결국 디에고의 여자 관계 정리...
상대방에 대한 존중 등을 조건으로
그들은 다시 재결합 한다...
내 마음 속의 디에고(1943)
프리다는 죽기 전 날 디에고에게
17일 가량 남은 결혼 25주년 기념 반지를 미리 건넸다...
"머지않아 당신 곁을 떠날 것 같아서 그래요..."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일기에는
이런 글귀가 남겨져 있었다...
..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희망은 사라지고(1945)
프리다 칼로에 대한 자료를 보다보면
'초현실주의' 라든가, '페미니즘' 이라는
단어가 자주 튀어나오곤 하는데...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으로서가 아니라 화가 프리다 칼로라는
그녀의 이름은 1970년대 페미니즘이
기세를 떨치면서 세상에 잘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녀에게는 페미니스트 화가 라는
명칭이 자주 따라붙고 그녀의 삶 자체가
20세기 페미니스트들의 우상처럼 신봉 되기도 하는데..
사실 나로선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못마땅하다는 지적을 하고 싶어진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의 구별과
차별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전에
새로운 유행처럼 페미니즘을 들고 일어섰고..
때로는 어느 정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있는 집단으로 거듭 태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권력이 폭력이 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되는 일이다...
우주, 지구, 멕시코, 디에고와(1949)
『이 그림에서 프리다는 디에고에 대한 모성의 사랑을 보여준다.』
이쯤에서 눈치챘겠지만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극단적인
안티 페미니스트인것도 아니지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자체에서
일단 거부감을 가져진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이유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나는 왜 페미니즘을 운운하는 페미들은
인간의 삶을 인간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꼭 '여성'이라는 틀에 맞추어 이야기하며
더욱 풍부해질 수 있고 넒어질 수 있는
통찰의 범위를 스스로 좁혀들려 하는지
조금 이해가 가지 않을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죽음에 대한 사색(1943)
프리다의 경우
여성주의 비평가들에 의해서
그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나는 그녀가 그들에게 완전히
이해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리다와 디에고가 결혼한지 두달만에
그가 혼신을 다해 만들다시피 했던
멕시코 공산당은 서기장이었던 그를
제명했던 일이 있었는데...
혁명으로부터 버림받은 디에고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는 짐작이 갈만한 일이다...
그 때 그런 디에고를 지켜준 것은 프리다였다..
디에고를 비난하는 당과
친구들과의 모든 관계를 청산했고..
그 당시 그녀의 건강은 매우 좋은상태였음에도
거의 작품을 그리지 못하는 대신 그녀는
무슨 일을 하든지 디에고와 함께 했다...
그녀는 디에고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그에게 상상력에 대한 영감을 주기 위해
애썼으며 어디든 동행 했다...
물이 내게 주는 것(1938)
그리고 또 하나..
그 시절 그녀가 디에고를 위해 했던
일중의 하나는 그녀의 외모를 바꾼 일이다...
산당 청년 모임으로부터
시작된 혁명 복장을 벗고..
테우아나족 여인들의 긴 주름 치마..
오악사카 지방의 블라우스 등..
멕시코 원주민들의 복장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프리다 칼로의 삶이 매우 연극적이었고
그녀의 행동과 의상이 또한 연극적이었다고 해서
그런 그녀가 페미니스트들에게
사회관습을 완강히 거부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간 강한 여성으로..
20세기 여성의 우상으로까지
받아들여 지기도 한다는 것을
프리다 자신이 생존해 있다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다...
도로시 헤일의 자살(1938)
그녀가 자신의 그림이
초현실주의가 아니라고 극구 부정했듯이..
그녀의 삶 또한 여성으로 살다간
프리다로 평가받기 보다는..
그녀가 우연히 여성이었을 뿐,
그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여성에 한정된 그녀의 아픔이기보다는..
한 인간의 내면 깊은 고독과 절망..
또 어떤 면에선 그녀안에서 끊임없이 들끓던
삶에 대한 끈적한 애정이지 않았을까...
두 명의 프리다(1939)
한 때 프리다 칼로에 푹 빠져서
그녀가 그린 그림을 보고
그녀에 관한 서적을 찾아 읽으면서
그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여느 예술가 또는 화가에게 받았던
느낌과는 조금은 그 색이 다르다는 거다...
워낙 표현하는데 서툰 사람이기에
뭐라 정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뭐랄까... 그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내가 꼭 그녀가 살았던 시대...
그녀가 살았던 시골 마을의 한 공간에서
아주 가깝지는 못하더라도 지나가면서
인사 몇 번은 나누는 그녀 주위의
누군가로 살았던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러한 느낌으로 인해
그녀에 대해.. 그녀의 그림에 대해..
또 그녀의 삶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된 것 같다...
『나는 소망한다.
고통을 품고, 망가진 척추로, 걷지도 못하고,
드넓은 길에서, 멀리 본다.
강철로 된 생명을 부지한다.』
..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독창성과
강철 같은 의지의 소유자.
일생을 따라다닌 육체적 고통도
그녀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리베라와 트로츠키의 연인이었으며,
기존의 터부와 관습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길 열망했던,
인간의 고통과 나약함을 사랑했던 여인.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덧붙여진
모든 미사여구를 초월하여
자신을 잉태한 유일한 화가로,
오직 자기 자신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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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몇 년 전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요...
새롭게 사진이랑 글 편집해서 올려봅니다...
엇그제 턴스미온 자매님께서 올리신
붙타는 숲속의 사슴.... 이라는 게시글을 보신 분들은 아실듯...^^
걍, 덧글에 프리다에 대해 몇 자 끄적였을뿐인데,
울 베스또11 자매님께서
이 글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사,
그걸 걍 못지나치고 이 와중에 나, 또 이러고 있어요... ㅋㅋㅋㅋ
마이클에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고
실망하거나,노여워하기 음끼여요~!! ^^
이런 좋은 건 당연히 나누셔야지요^^
자비를 베푸셨군효~~^^
영화로도 본거 같은데 제목이 생각이 나질않네요. 정말이지 강철같은 여인이었지요.....
셀마 헤이엑이 주연한 프리다죠..
헉 ...... 완전 완전 초초초초초초초감동... 내가 못 본 작품도 3점이나 발견..
이곳은 우리들의 놀이터인데 ... 못 올릴것이 뭐가 있것소...게다가 이렇게 집요한 작품 설명및 작가에대한 이야기 항상 좋아라 하는 일인으로써... 기립 박수 5분 !! 저도 페미니즘건에 대해선 그대와 의견 일치... 70년대에 부합되기에 적합한 제3세계 여성 작가를 필요로 했을 뿐 ..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 생각 되어 지더이다...
자신의 고통을 자신의 삶을 철저히 느끼고 살다간 사람인듯 ...
헤슨생님은 나와 베프가 될수 없오... 날 가르쳐야 하오,....제자로 받아들이시옷...
그대의 빅 칭찬을 들으니,
프리다에 투자한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소... 진심.... ^^
제자는 무신...
대가리에 들은게 있어야 갈챠주쥐... ㅎㅎ
Teach MEEEEEEEEEEEEEEEEEEEEEEEEEE....
반사반사반사반사!!!!!!!!!!!!!!!
그럼 나도 나도 제자제자 할래~~~
문제의 페메니즘 건에 관한 생각은 완벽히 일치~~!!
역쉬이 싱크로율 참으로다가 높은 집단이여 여그가~~!!!
저두저두...제자제자............
제가 다른 곳에도 쓴 것 같은데여... 전 쥐며느리, 벼멸구, 장수풍뎅이 ... 이런 친구들로 안태어나서 너무 행복하다는...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을 느끼고 보고 듣고 만질수 있어서 ,..... 사람으로 태어난게 너무도 감사하다는... 좀 뜬금 없지만 ...
정말 예술 처럼 우리 정신을 살찌우게 하고 ,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없는 듯 해여... 다음생에도 덕을 쌓아서 꼭 인간으로 태어나서 예술적 호강만은 누리고 싶다는 ... 예전에 라틴아메리카 작품전에 같더니 ... 정말 작품들이 턱이 빠질 만큼 너무 훌륭하고 아름다워서 한참 넋을 잃고 본 기억이나네여....
백만스물한번 동감이오.....
잉간만이 영유할 수 있는 특권이자 혜택이자 무한한 영광입죠잉...
언제 기회가 되면 그녀의 남푠,
아놔, 그 넘, 디에고 리베라에 대해서도 올려 볼께요...
한 여자의 남푠이 아닌 화가로써의 리베라 또한
뎡말 쵝오거덩여.... ㅎㅎ
그나즈나,
객관적인 글이 나올지 몰겠네...
어디 붙어먹을데가 없어 처제를....
이걸 기냥~ 확~~!!
응~ 예술 그게 너무 위대해서.
비루한 나 그거 느끼면서 감사하게 되요^^
헤라님 그럼 저 또 디에고 세계 기다립니다~
역시 이런 건 예고가 필요해효^^
오오오오오 헤라님 머리와 능력은 빅빅용량 이네요. 덕분에 많은걸 앉아서 클릭질로 날로 먹고 있으니.... 아놔 이래도 되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날로 잡숴도 됩니다!! ㅋㅋㅋㅋ
강철로 된 생명...
인간이요, 무언가를 쓰고, 그리고...
표현해내는 거 너무 대단한 일이죠.
그 고통에 자기를 실어 보내고, 또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것, 날 것 그대로 흡수해서 이해해주고.
우리에게 서로의 기쁨 뿐 만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네요^^
너무너무 잘 봤어요^^
꾸벅~~!!
그림들이 섬뜻하네요.
프리다의 그림들이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표현 한것 같아요.
배움의길은 끝이 없네요...
오늘도 배우고 느끼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삶이 대단히 치열하고 처절했던거 같네요.. 잘 보고 갑니다~
헤라님~~(일단 땅 한번 치고) 이 음악부터 내가 미친다.
eden is a magic world!
프라다 칼로,,, 전 이분의 작품 세계를 잘은 모르지만...
왠지 이분보면 마리아 칼라스 생각나요.
내가 님들덕에 문화인류학자 되는건 시간 문제네...
오마나,
세상에...
알러뷰~~
저도 제자 줄서요~~
맞아요.. 아름다운음악 너무 감사하고 좋은자료 함께 공유하게 되어 기쁩니다^^
'그녀가 우연히 여성이었을뿐, 그녀가 표현하고자 했던것은 여성에 한정된 그녀의 아픔이기보다는...한 인간의 내면깊은 고독과 절망, 또 어떤면에선 그녀안에서 끊임없이 들끓던 삶에대한 끈적한 애정이지 않았을까...'
어쩜 이렇게 표현을 잘 하시는지...
문워키즈님들 존경스럽소.
헤라님, 참 대단하십니다. 꾸벅^^
저 또 왔쥬..예술가의 삶을 이렇게 알아간다는 것,,정말 환타스틱하네요. 소름이 쫘~악 끼치는게..
프리다의 삶도 참 만만치는 않았네요. 희망을 잃지않고 꿋꿋했던 프리다에게 이제와 새빨간 장미꽃을 바칩니다.
그리고,,헤라님의 그림설명 정말 좋아요. 쏙~~새겨둘게요. 투썸업!!!!!
예술에 조예가 깊은님들덕에 또 배우고 가요 ㅋㅋ 그림과 덧글먼저보고 글을 읽었는데,,,그림에 왜 피가많고 고통이 느껴지는 그림을 많이 그렸을까 생각했는데,,,,삶을보니 조금은 이해가 가네요 ,,이분도 정말 고통스런 삶을사셨네요 그렇지만 그것마저 이겨낸 대단한 정신력과 의지,,,,
헤라님뿐만 아니라 덧글다신분들 다들 대단하세요 전 이런쪽은 완전 꽝이라서 ;;;
쉽고 자세한 설명덕에 잘보고갑니다 ^^
프리다 칼로...,
힘겨운 삶을 살다 가셨네요..,
모든 작품들은 고통속에서 나온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네요..,
그림 하나 하나에 자신의 내면을 체우시고...,
고통을 그림으로 승화 하신 것 보니까
마잭님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잭님께서 음악으로...,
위대한 분들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님을 또 느끼고 갑니다.
음주로인하여...낼다시보러오리다~
와... 신세계에요 !!
너무 잘 읽었습니다 헤라님 빅땡큐!!!!♥
잘보고갑니다.^^
고맙습니다... 스크랩해가요... 늘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리다칼로의 그림을 볼때의 충격..그녀의 남다른 삶에서 정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어요.
참으로 끈질긴 인간의 생명력. 늘 드는 생각이지만 그로 인해 위대한 예술은 이루어지나봅니다.
일기의 마지막 글귀가 마음 아프네요..강철같은 의지와 열정으로 살아왔지만 그녀도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