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도 가장 험한 지역이라는 동북쪽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디자인 발전소 이영주 대표의 집을 방문했다. 에디터 신진수│포토그래퍼 임태준
제주도에서도 가장 험하고 비가 오면 바람 때문에 비가 수평으로 내린다는 제주도 동북쪽 하도읍에 이영주 대표가 집을 지었다. 아주 오래된 집, 그러니까 한국전쟁 당시에 지어졌을 거라 추측되는 집을 개조했는데 기본 골조 빼고는 모두 뜯어냈기에 새로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갓진 동네에 다다르면 이영주 대표의 집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비슷비슷한 집들이 많아 전화를 걸고서야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이영주 대표의 집은 친분이 두터운 엣코너 이수영 실장이 작업을 맡았다. 주변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도록 외관은 보수를 하고, 지붕 색깔만 바꿨다는 말을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제주도의 집은 예전엔 모두 두 채씩이었어요. 큰 집과 작은 집으로 나눠 있는데 가족이 함께 살다가 자식이 결혼을 하면 큰집을 내어주고 작은 집으로 부모들이 이사를 갔죠. 딱 붙어 있는 옆집이지만 식사도 각자 해결하고 남남처럼 생활할 만큼 독립적인 생활을 해요.' 하지만 여자 혼자 살기에는 따로 떨어진 두 채의 집은 불편했기에 이영주 대표는 이수영 실장에게 두 채의 집을 실내로 연결해 달라는 처음이자 마지막 주문을 했다. 그래서 두 채의 집을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어 지금의 집을 위에서 보면 ‘ㄷ’자 구조다.
이수영 실장은 제주도에서 한 달 반 동안 머물며 작업을 했는데 벽에 ‘반공’에 대한 신문지가 붙어 있을 만큼 오래되고, 외양간까지 있던 집을 현대식으로 바꾸는 작업이 고되지만 즐거웠단다. '이영주 대표가 가지고 있는 가구며 소품 등이 워낙 예쁜 것들이 많아서 안을 채우는 것은 걱정하지 않았어요. 집 구조 자체도 재미가 있었고요. 대신 천장과 벽, 바닥 그리고 단열과 방수 등에 신경을 많이 썼죠. 이번 작업을 통해 제주도에 대해 많이 알게 됐고, 배운 것도 많은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우선 원래의 큰 집은 주방과 거실로, 작은 집은 침실과 드레싱룸, 욕실로 사용하기로 했다. 천장은 가장 공들여 마감했는데 단열이 되는 우드 패널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서 별장 같은 분위기를 냈고, 돌로 감싸 울퉁불퉁한 벽은 그 위에 회벽칠을 여러 겹 해서 굴곡을 그대로 살렸다. 때문에 천장은 조금 낮지만 포근하다. 바닥 난방이 되긴 하지만 공간 두 개를 따뜻하게 유지하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거실엔 운치 있게 벽난로를 놓았다. 실제로 팬 나무 장작을 넣어서 난로를 떼는데 주변이 훈훈해질 정도로 난방 효과가 좋다고.
거실에서 바로 이어지는 주방은 원래 집의 바닥을 떼어낸 바닥재로 싱크대와 수납장 등을 만들었다. 이영주 대표는 서울에서 사용하던 대부분의 가구와 조명, 소품 등을 제주도로 가져왔는데 집주인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아이템들이 마치 사전에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새집과 잘 어울렸다. 침실로 건너가는 실내 통로는 복도식으로 한쪽은 책과 LP판, DVD 등을 수납하는 책장을 짜서 넣었고, 한쪽은 통유리로 마감해 채광이 좋다. 하나하나 비닐로 싸서 보관하고 있는 LP판과 책, CD 등이 보고만 있어도 흐뭇할 만큼 빼곡히 들어찼다.
그리고 이어지는 침실. 이영주 대표는 매트리스를 없애고 좌식형 침실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 외양간이었던 곳이 이렇게 아늑한 침실로 변하다니! 거실처럼 침실 벽도 돌에 바로 회벽칠을 했기에 볼록볼록한 벽이 아늑함을 더해주는 데 한몫을 했다. 마치 동굴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랄까. 침실 안쪽으로는 화장대와 붙박이 장이 있는 드레싱룸과 작은 창문이 달린 욕실이 있다. 싱글 라이프를 즐기기에 필요한 모든 공간이 갖춰진 셈이다.
'여름엔 말할 수 없이 습하고, 겨울엔 매서운 바람이 불어요. 개미나 바퀴처럼 속을 썩이는 벌레는 없지만 각종 벌레들의 출현이 빈번하죠. 하지만 문만 열고 나가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집들이 옹기종기 보이고, 조금만 걸어나가면 바다가 보여요. 최근에 자전거도로가 생겨서 해안을 따라 자전거를 타기에도 그만이죠.'
그러다가 추우면 벽난로에 불을 붙이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소파에 몸을 기대 음악을 들을 것이다. 세상 어느 곳의 휴양지 못지않은 훌륭한 쉼터가 곧 집인 셈이다. 오래된 제주도식 집을 개조한 것도, 제주도에 산다는 것도 모두 낯설었지만 이젠 서울보다 제주도가 편해졌다는 그녀에게 물었다. 서울과 제주도는 그래도 꽤 먼데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냐고.
이영주 대표는 대답 대신 이런 글을 보내왔다. '내가 있을 곳. 서른 중반의, 적극적이지도 활동적이지도 않은 내가 찾고 있는 그것은,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도 일로서 성공하는 것도 아닌, ‘장소’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공간으로 지켜지는 개별 장소. 거기서 산다면, 혼자여도 여유로운 시간이 흐를 것만 같다.-나카지마 타이코'
인테리어 시공 및 디자인 엣코너(
www.at-corner.com,sam0230@naver.com)
1. 소품 하나라도 에쁜 것만을 사서 모아두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버릴 일이 없다.
2. 천장은 낮지만 거실에 커다란 창문이 있어서 자연광이 듬뿍 들어온다.
3. 식탁 겸 작업대로 사용하고 있는 스틸 다리의 테이블은 이영주 대표가 서울에서부터 사용하던 것.
4. 주방에서 침실 쪽으로 건너가는 실내 통로의 시작 부분이다. 통로를 따라 책장을 짜 넣어 LP판과 CD, 책 등을 수납했다.
5. 좌식 스타일의 침실. 베개 위의 창문은 안에서보면 굴곡이 지지만 밖에서 보면 반듯한 창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