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한눈에" 중국 국가 1급 유물 6점 한국 최초공개, ‘명경단청 明境丹靑: 그림 같은 그림’ [전시리뷰]
이나경 기자
경기일보 기사 등록 : 2024. 12. 15. 08:01
경기도·랴오닝성 자매결연 30주년 결실
중국 국가1급 유물 6점 국내 최초 공개
명나라 전‧중‧후기 서화 특징 한눈에
중국 국가 1급 유물인 구영의 ‘적벽부(赤壁賦圖卷)’
달은 밝고 별은 희미한 밤, 기다란 배에 앉은 이들이 노닐고 있다. 적벽 아래 유유자적한 이들은 마냥 평화로워 보이기도, 어딘가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밝고 아름다운 색채, 세밀한 필체가 느껴지는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과 자연의 풍경을 한없이 들여다보면 그날의 밤으로 빠져들 것 같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면 각기 다른 필체로 써 내려간 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경기도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명경단청明境丹靑:그림 같은 그림’전에서 만난 구영의 작품 ‘적벽부’는 명나라의 뛰어난 예술가 네 명을 일컫는 ‘명사대가’ 중 한 명인 구영이 송나라 때 학자 소식(소동파)의 글 ‘적벽부’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작품으로 중국 국가 1급 유물이다. 그림 뒷부분에는 명나라 때 지식인(문인) 팽년과 문팽이 쓴 ‘적벽부’와 문가와 주천구가 쓴 ‘후적벽부’가 있다.
도록이나 사진을 통해서만 만나봤던 작품을 글과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더욱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경기도박물관·랴오닝성박물관 공동주관의 ‘명경단청明境丹靑:그림 같은 그림’ 특별전은 지난해 경기도와 중국 랴오닝성 자매결연 30주년 기념 공동선언의 결실로, 경기도와 랴오닝성 대표 박물관 간 교류를 통해 우수 문화유산을 나누기 위해 추진됐다. 중국 선양은 청나라 초기 수도로 이곳에 자리한 랴오닝성박물관은 황실의 유물을 다수 보유한 국가 1급 박물관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한국에서 전시된 사례가 없는, 국보급에 해당하는 중국 국가 1급 유물 6점을 포함한 명대 서화 53점이 최초 공개됐다. 관객은 ▲명대전기-절파(浙派)의 탄생 ▲명대중기-오파(吳派)의 전개 ▲명대후기-남종문인화로의 집대성(集大成)으로 구분돼, 명대 전·중·후기 각 시대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핵심 화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그림뿐만 아니라 중국 현지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엄청난 길이의 제발(題跋·작품에 대한 감상이나 기록을 적은 것)문 등을 원본 그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한 것이 특징이다.
여섯 명의 선종 조사, 대진(1388-1462)
명대 전기 궁정화가였던 대진의 작품이자 국가 1급 유물인 ‘선종의 여섯 조사’는 선종의 1대부터 6대까지의 일화를 한 폭의 그림에 담아냈다. 시대와 장소가 다른 인물을 한 폭의 그림에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은 약 6m 길이에 달하는 글과 그림으로 구성돼 있다.
16세기 전후 명나라에는 기독교와 같은 서구 문물 전래에 따른 사회 대변혁과 함께 ‘성즉리(性卽理)’의 성리학에서 ‘심즉리(心卽理)’의 양명학으로 유가 철학 사조가 전환됐다. 이에 따라 예술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개성이 어느 시대보다 잘 발휘된 때로 평가받는다. ‘명사대가’ 중 한 사람인 심주의 작품 ‘국화감상’은 그가 송·원나라의 산수화 양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린 대표작 중 하나이다.
심주의 '국화 감상(盆菊幽賞圖卷)'.
특히 동기창은 물아일체의 새로운 경지를 끌어낸 인물이자 조선에는 남종문인화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친 ‘남북종론’을 제창한 인물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남종문인화의 시대를 연 동기창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정치·경제교류와 함께 뜻을 나누는 핵심에는 ‘문화예술’이 있다”며 “인간의 자유의지가 발현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물아일체’의 사상이 드러나는 작품들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기도박물관은 ‘명경단청明境丹靑:그림 같은 그림’에 대한 답방으로 내년 랴오닝성박물관에서 도자기와 초상화 등, 도 박물관의 특화 유물 등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이번 전시가 갖는 동아시아 미술사 전개의 중요성을 감안해 내년 2월6일 경기도박물관 뮤지엄아트홀에서 국제학술대회도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