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둘레에는 5월하순인 요즘 민들레와 철쭉과 듬성듬성 피어난 복사꽃이 볼 만하다. 앞마당 가득 민들레가 노랗게 피고 진다. 혼자서 풀을 매기가 힘에 겨워 그대로 두었더니 천연스런 꽃밭이 된 것이다. 분홍빛 철쭉은 뜰가에서고 피고 벼랑 끝에서도 핀다. 눈길이 자주 간다.
한 가지 꺾어다 식탁에 꽂았다. 가까이 대하니 참으로 곱다.
내가 이 오두막에 들어 와서 심은 3백여 그루의 자작나무와 전나무와 가문비나무는 실하게 자라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런데 복숭아나무는 고랭지라 꽃을 비워도 그 빛깔에 기운이 달린 것 같다. 올해도 묘목을 사다가 스무 그루를 심었다. 봄날 어디를 지나다가 분홍빛 복사꽃을 보면 공연히 가슴이 설렌다.
이 나이에도,
이런 이야기를 한 친구에게 했더니 자기도 복사꽃을 대하면 마음이 심란해지더라고 했다. '심란하다'는 그 표현이 참으로 적절한 것 같다. 마음이 뒤숭숭하다거나 어지럽다는 표현보다 훨씬 함축미가 있다. 이 오두막에 살면서부터 나는 봄을 두 번씩 맞이하는 셈이다.
남쪽에서 매화와 진달래와 산수유와 벚꽃과 복사꽃과 모란을 실컷 보았는데, 초여름에 접어들면서 이곳에서는 봄꽃들이 뒤늦게 문을 연다.
'봄은 가도 꽃은 남고'란 옛 글 그대로다. 오늘 아침 뜰에 가득 피어난 민들레를 보면서 문득 아, 나는 부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을 책 곁에 있고, 햇차도 들어왔고, 열린 귀로 개울물 소리, 새소리, 때로는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입밖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예전에 살던 절에 들러 내가 심어 놓은 나무들이 정정하게 자란 것을 볼 때마다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들의 말없는 반김은 가슴으로 스며든다. 허공으로 높이 높이 자라 오른 우둠지를 바라보고 줄기를 쓰다듬고 팔을 벌려 안고서 얼굴을 부비기도 한다. 그러면 내 가슴이 따뜻한 기운으로 차오른다. 이 따뜻한 기운은 나무가 내게 건네주는 온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