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9:10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개역개정판)
예루살렘 입성 당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외쳤던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예수님을 임금 삼고 싶어했을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좀 달랐을 것이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하신 것을 보면
아이들의 찬양은 진실한 것이며, 필요한 것이었다.
(이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들을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쳤다는 기록은 없다.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시비한 사람들
종교지도자들...
호산나 외쳤던 아이들의 소리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그들은
사실은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 죽이려는(마 26:4) 악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온전함과 정직함의 시선을 보았다면
예수님을 죽여야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빌라도도, 헤롯도, 다른 이들도
예수님에 대해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만큼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러시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서글픈 도시 노릴스크
영하 50도라는 극한의 온도, (여름에는 3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백야까지...)
겨울에는 해가 뜨지 않는 기간이 2달이나 되고
환경 오염과 각종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률은 사실 집계도 잘 되지 않으며
(이것들을 숨기기 위해) 아직까지 외국인들의 출입도 금지되어 있는
그러나 니켈 등 풍부한 광물 자원으로 인해 여전히 고임금과 러시아의 타지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복지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그곳은
사실 90년전 스탈린이 수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켜서
혹독하디 혹독한 환경에서 겨우 만들어낸 도시, 아니 그 당시에는 집단 강제 수용소였다.
제대로된 도로도 없는 그곳..
유일한 교통수단이 항공이라던가?
전쟁터로 사람을 무자비하게 보냈듯이
전쟁터에 사용할 군수물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
가혹한 환경에서 사람을 보내 수용소를 개척하고
그곳으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보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쓰여진, 아니 기록되지도 못한 피의 역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얼룩져 있을 것인가?
전쟁과 이념으로 얼룩져있던 구 소련에 이어
이제는 경제라는 더 차갑고 냉혹한 논리 앞에
그리고 다시 벌어진
자신들의 전쟁과
타인들의 전쟁 덕분에(?)
전쟁 특수를 누리면서도
더 많은 환경 오염과 산업 재해로 인해
더 철저히 통제되고 억압받는 21세기의 어느 도시는
피 흘리기를 좋아했던 어느 악랄한 통치자와 그 후예들 덕분에
핏빛과 잿빛이 섞여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다를까?
제철소의 사망사고가 발생하여
(예전과는 달리) 현장이 1달 가까이 중단되니
꺼지지 않아야할 용광로가 멈춰서면
재가동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달 이상이 된다고 한다.
그 와중에
사람 하나 죽었다고 공장을 세우냐는 중소업체 사장들이 악덕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또 실제로 그런 측면이 매우 농후하나)
그들이 세우게 된 각자의 공장과 현장에서는
하청에 하청까지... 악역향의 도미노가 이어지고
또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극한의 궁지로 몰아가게 되는
용광로마저 얼어붙을 차갑고 냉혹한 사회의 경제 논리가 숨어 있다.
피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는다.
우리 주님이 예루살렘에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종려주일
이 냉혹한 현실과
사악한 죄악의 사슬을 끊어내시기 위한 승리의 발걸음은
피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을 도리어 결박해 버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 속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무슨 혁명이나 개혁이 아닌,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해방시켜 주신다.
눈물을 씻어주는 주님을
오늘도 종려나무의 가사처럼
주님이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라 믿으며
호산나 호산나 천진하게 외쳤던 아이들의 기쁨과 기대를 기억하며
고난주간도
그렇게 보내야겠다.
첫댓글 https://youtu.be/v7wCmBRF12k?si=nPeCSPFUrz9ZQjV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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