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CAM 대표
대통령의 자진 사임
중앙아시아의 자원 부국 카자흐스탄의 대통령으로서 30년간을 통치해온 나자르예프 대통령이 3월 19일 저녁 7시,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담화의 형식으로 대통령직 사임 의사를 공식 발표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자신은 대통령직을 물러남과 동시에 모든 권한을내려놓는다.”면서 “토카예프 상원의장은 믿을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그를 대통령으로 지명한다”고 말했다. 국가 지도자는 죽을 때까지집권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던 구소련의 정치문화를 물려받은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카자흐스탄 공화국 공산당 서기장(1989년)을 시작으로 30년 동안 카자흐스탄을 통치해 온 그의 자진 사임 발표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이날 저녁 내외신 기자들은 이 소식을 속보로 타전하였고 현지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인들과 교민들은 당황해하면서 환율 등 경제에끼치는 영향이나 향후 정국 전망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의외로 놀라움을 바로 진정시키고 일상으로돌아와 평소와 같이 생업에 여념이 없다. 담화 발표 다음 날인 20일, 일부의 예상처럼 은행이 현금 인출을 제한하거나 달러 환전을 못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3월 20일 오전, 달러-텡게화 환율은 1달러당 379텡게로써 그 전날과 변동 없이 안정적이고 카자흐스탄의 금융시장도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움직이고 있다.
사실 19일 저녁 7시에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있을 예정이라는 뉴스가 떴을 때부터 이미 국가 중대사에 관한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예상이 되었다.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연초가 한참 지난 3월하고도 중순에 갑작스러운 대국민 담화를 한다는 것부터가 이미중요한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중에는 지난해부터 권력교체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회자되고 있었다. 몇 년째 계속되는 저유가와 카자흐스탄의 최대 교역국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등의 이유로 카자흐스탄경제가 불황을 겪고 있는 데다가 79세라는 대통령의 물리적인 나이도 감안한 예상된 조치였다.
향후 정국의 향방
대통령 담화 후 SNS상에 카자흐스탄의 차기 대권은 누구에게 가는지에 대한 많은 글들이 올라왔다. 나자르바예프의 딸인 상원의원 다리가를 유력한 후보라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카자흐스탄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임이 하루 뒤인20일 날 드러났다.
20일 정오,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다시 한번 TV 앞에 모여들었다. 토카예프 신임대통령의 취임식이 생중계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도 아스타나에 있는 국회 본회의장과 국회 의원들을 비춰주고 이어, 카자흐스탄 국기와 헌법 그리고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본회장에 들어오는 모습이 비춰졌다. 이어서 신임 토카예프 대통령이 입장을 하였다. 토카예프는 국기에 입을 맞추고 헌법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였다. 이때 TV 화면에는 ‘신임 대통령 토카예프’ 라는 자막이 흘렀다. 이어진 취임사에서 그는 초대 대통령 나자르바예프의 업적을 언급하면서 소련 해체 후 어려운 시기에 카자흐스탄을 오늘의 세계적 위상의 국가로 만들었다고 했다. 특히, 그는취임사를 통해 ‘카자흐스탄 모델’로 국가발전을 이어가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국회 본회장에 들어오는 토카예프
자료원: TengriNews.kz
바로 이 대목에서 국내에 알려진 것처럼 대통령 권한대행 또는 임시 대통령이 아니라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고 이러한 평화적 권력 교체를 위해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카자흐스탄의 환율은 안정되어 있고 은행창구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물론, 카자흐스탄의 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라는 절차가 남아있다. 그러나 대선은토카예프 대통령을 법적으로 추인하는 절차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다민족국가인 카자흐스탄의 60%를 훨씬 상회하는 카자흐 민족은 주지하다시피 대, 중, 소 쥬스(부족)로 구성되어 있고 대(울르)쥬스출신이 아니면 최고 권력자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은 상식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정치문화는 소련 시기를 거치면서도 과거 유목민들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측면이 많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현재의 유럽처럼 여성 지도자의 탄생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사임을 발표하면서 말한 대로 “매우 많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는것이다. 그가 바로 토카예프이다. 취임식에서 그는 이러한 나자르바예의 절대적인 신임에 화답하듯 수도 아스타나를 대통령의 이름을딴 ‘누르술탄’으로 변경하고, 민족의 지도자인 그의 동상을 세울 것이며, 카자흐스탄의 주요도시의 중심거리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거리로 명명할 것이라고 했다. 이외에 국가의 중대사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직을 유지하는 나자르바예프에게 자문을 구하겠다고말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된 평화적 정권교체 시니리오는 나우르즈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실행에 옮겨졌고, 평소에 다소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이 있던 국민들조차도 이를 지켜보면서 나자르바예프의 사임과 그의 탁월한 리더십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외교부 장관,상원의장 등 두루 거치면서 온화하고 합리적인 인물로 평가받아온 토카예프 신임 대통령이 중앙아시아의 맹주로서 카자흐스탄의 지위를 공고히 할 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 전반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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