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의 '쿠데타' 브리핑이 국민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헌법을 수호하기위해 정권교체를 갈망하던 국민들을 일순간 쿠데타 세력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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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 ⓒ 연합뉴스 |
유 대변인은 20일 태국 쿠데타를 거론하며 "태국 탁신 총리의 통치스타일은 여러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면서 "노 정권은 태국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유 대변인의 느닷없는 쿠데타 발언에 열린우리당 노웅래 공보부대표는 곧바로 "이게 말인지 소인지 돼지인지"라며 어이없어 했으며, 우상호 대변인은 "공당의 대변인이 쿠데타로 정부에 위협을 가했다"며 흥분했다.
한나라당 대변인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유 대변인의 발언이 몰고올 파장을 짐작, 평소와 달리 브리핑 자료를 언론에 배포조차 못했다. 한 당직자는 "괜한 발언으로 또 곤욕을 치르게 됐다"며 "파문이 더 커지기 전에 유 대변인이 발언을 취소하고 해명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다시 국회 브리핑룸을 찾은 유 대변인은 "타산지석의 뜻은 하찮은 것도 업신여기지 말고 소중히 교훈으로 삼으라는 뜻"이라며 "국민에게 지지받는 정권이 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 민주주의 후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지만, 늦어버렸다. 이미 인터넷 공간에서 한나라당은 '쿠데타당'으로 낙인찍혀버린 뒤였다.
인터넷공간, 숨어있던 친노·친여 성향 네티즌 몰려나와 한나라 성토
친노매체, 한나라 지지세력=쿠데타 지지자 등식화 골몰
정권교체를 주장하던 애국세력의 목소리는 구석으로 몰려버린 채, "한나라당이 태생적 한계를 드러냈다" "군부독재가 그리운 한나라당" 등 친노·친여 성향 네티즌들의 비난이 한나라당을 향했다. 탄핵역풍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을 떠올리며 우려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그나마 노 정권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분노 덕택에 '쿠데타라도 해야될 정도'라며 이해해 주는 여론이 남아있는 정도였다.
유 대변인의 발언 하나로 네티즌들은 뜬금없는 '쿠데타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군부잔당이라는 오명을 스스로 또 덮어쓰게 됐으며, 노 정권과 열린당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친노 매체들은 물만났다는 듯이 일제히 유 대변인의 발언을 주요기사로 다루며 회생의 기회를 엿보게 됐다.
한겨레신문은 21일 '아찔한 댓글들…온라인 쿠데타'라는 제하의 기사를 1면에 게재하고, "인터넷에서 '쿠데타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있다"면서 한나라당을 쿠데타당으로 몰아갔다. 또 "보수언론 사이트를 중심으로 정부에 비판적인 네티즌들은 '한국에서도 쿠데타가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면서 정권교체를 바라는 세력을 쿠데타세력으로 매도했다.
친노사이트 데일리서프라이즈도 이날 '쿠데타를 그리워하는 자들과 광주학살의 추억'이라는 서영석씨의 주장을 톱기사로 배치했다. 서씨는 반년여만에 칼럼을 통해 "박근혜와 이명박, 그리고 손학규가 쌓아올린 공을 유기준의 입방정 하나로 몽땅 날린 셈"이라고 신나했다. 그는 "유기준의 입방정이 아니더라도 광주학살이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한 한나라당은 최소한 호남의 지지는 포기해야만 한다"면서 사건을 확대시키려 애썼다. 설 곳을 잃어가던 친노세력들의 꺼져가던 불씨를 한나라당의 대변인이 피워준 꼴이다.
파장이 커지자 유 대변인은 "자기 입맛에 맞게만 해석한다면 어떻게 논평 하겠나"며 억울해했다. 그러나 유 대변인의 말한마디 때문에 정권교체라는 희망에 상처를 입고, 친노세력들로부터 '쿠데타 지지세력'이라는 놀림을 받아야하는 국민들은 가슴을 치며 피를 토하고 있다. 유 대변인이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