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 타 지 』 라이안_ 4화 기억의 파편(1)

[집수리오형제]

라이안

글쓴이 수리양

처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어렸던 탓인지, 아니면 너무도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진 탓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들이 잘못한 일은 그다지 없는 것 같다. 우리들이 살고 있던 곳은 그저 숲 속 깊은 곳에서 나무를 기르고 흐르는 물을 빌려쓰는, 소박한 엘프 마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이방인이라고 해봤자 가끔씩 회의를 위해 찾아오시는 고위 하이엘프 일족 분들 밖에 없었으니, 천재지변을 제외하고는 마을이 혼란스러워질 이유도 없었다. 하물며 내가 나쁜 일을 했던 기억은 더더욱 없다. 다른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숲 속을 거닐다가 주변 환경 때문에 잘 자라지 못할 나무들을 손질해주거나 다친 동물들을 치료해주는 일을 즐겨 했을 뿐이다.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우리들을 창조하신 하이엘프의 신께서 지켜보시고 기뻐하신다는 말을 들은 후 나는 착한 일을 하는데 더욱 열을 올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주 너그러운 분이셔서, 이런 내 모습을 보시고는 항상 힘을 복돋아주신다. 점점 커지는 내 키 만큼이나 나날이 늘어가는 마법실력도, 점차 성장해나가는 정령들을 지켜보는 일도 내게는 모두 기쁨이고 웃음이었다. 단 한 순간도 지금의 행복이 어긋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나는 그 날도 평소처럼 묘목을 가지고 예전에 눈여겨보았던 양지 바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초록색 숲 속에서 귀엽게 날갯짓하는 새들을 발견하자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고 이따금씩 마주치는 코볼트랑 리자드맨들과 만나서 인사하기도 했다. 평소와 같이 평화로울 것 같은 날. 하지만 이상하게도 진득한 연기 냄새가 숲 속에 가득차 있다. 어디서 산불이라도 난 것인가 싶어서 급히 연기 냄새를 쫒아갔다.

불타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은 시뻘건 화염에 잠식되어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사그라들어간다. 손에 쥐고 있던 묘목을 툭 떨어뜨리곤 정신 없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내가 살고 있던 마을, 내가 자주 놀러가던 옆 집, 장로님 댁까지 불길이 번져서 겉잡을 수 없을 만큼 타올랐다. 그리고 나는 어떤 무리들이 불이 활활 타오르는 집에서, 엘프들을 강제로 끌고 나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보는 존재들이 까닭도 없이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헐레벌떡 달려온 나는 영문도 모른채 다른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쇠로 두들겨 맞았다. 한 쪽 팔에 감각이 없어지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때까지 때리던 그 존재는 발로 걷어차 나를 쓰러뜨렸다. 착한 아저씨도, 내 또래의 엘프 친구들도 이유 없이 그 존재들한테 맞아야 했다. 억울했다. 그 존재들은 기분 나쁘게 소리 지르면서 우리가 살던 집들을 모조리 태웠다. 나무들은 불이 괴롭히자 숨을 멈추고 검게 변해간다. 케케한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라 새카맣게 뒤덮자 숨을 쉬기도 힘들어졌다.

“시드야, 시드야!”

처음보는 존재가 어깨에 엄마를 올려놓고 어디론가 걸어간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우리 엄마는 굉장히 착한 엘프인데, 우리 엄마는 평소에 동물들한테도 잘해주고 나한테도 정말 고마운 분이라서 아직 더 같이 있고 싶다. 그 때 갑자기 묵묵히 앉아계시던 아버지가 그 존재에게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그러자 그 존재는 허리춤에서 철조각을 꺼내 아빠에 몸에 꽂아버린다. 크고 힘이 세던 아빠가, 짧은 신음소리를 흘리면서 그대로 힘없이 쓰러져버렸다. 나는 너무나 놀라 이상한 존재들이 막기도 전에 아빠에게로 달려갔다. 아빠는, 평소에 내게 항상 웃어주시던 아빠는,

아빠는...

고개를 들었다. 엄마는 계속 계속 내 이름을 부르면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아무리 부르고 불러도 내게 가까워지지 않았다. 나는 목청껏 엄마를 다시 한번 부르려고 했지만, 뒤통수가 너무 아파서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 뜨끈한 액체가 줄줄 흐르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천천히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아무 감각도 없이 마냥 잠들고 싶었다. 잠을 자면, 나는 또 꿈을 꿀 것이다. 기나긴 꿈 속에서 헤엄치다 지쳐서 깨어났을때 언제나처럼 엄마는 내 앞에 있고 아빠는 평소처럼 웃어주시겠지. 그래 언제나처럼.

모두 꿈일거야.


우리 집은 항상 따뜻했다. 땔감을 사용하거나 불을 피우지 않는데도 따뜻한 이유가 너무나 궁금해서, 아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빠는 그건 엘프 장인들만의 비밀이라고 하시면서 나중에 내가 크면 알려준다고 하셨다.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 감촉 또한, 내가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시린 냉기 때문에 나는 몸이 굳어버리는 느낌을 받으며 눈을 떴다. 흐릿한 내 눈으로 철창살에 사이사이로 간신히 비치는 하늘이 보이고 목을 감고 있는 낯선 철 냄새 때문에 숨이 막혔다. 목 뿐만 아니라 내 오른쪽 다리에도 쇠사슬이 걸려 있어서 마음대로 사지를 놀릴 수도 없다. 덜컹덜컹 거리는 불편한 곳에 갇혀서, 나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조금 있다가는 내가 지금까지 겪은 일들이 모두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슬펐고, 그 후에는 언제나 함께였던 부모님과 이웃들을 볼 수 없다는게 괴로워졌다.

머리가 아파서 다시 차가운 바닥 위에 몸을 뉘였다. 아무리 당겨보아도 쇠사슬은 끊어지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오히려 내 숨이 가빠져 와 호흡마저 곤란해졌다. 너무 울어서 안구가 파열될 것처럼 아프다. 비좁은 공간에 나 혼자 갇혀 있으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어디선가 도란도란 들려오는 말소리는 엘프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전혀 알아듣지도 못했다. 결국 나는 몸을 웅크리고 바닥에서 밀려오는 냉기를 견디며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이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신체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감각 세포들이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눈을 떴다. 가슴과 배가 너무 아파서 손이 바들바들 떨려온다. 아무래도 나를 냅다 바닥으로 집어던진 모양이다. 다행히 목과 다리에 쇠사슬은 없어서 조금이나마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날카로운 철조각을 내 목에 들이대며 손을 밧줄로 묶어버린 그 존재들은 날 걷어차며 걸어가도록 종용했다. 걷어채인 엉덩이가 상당히 아팠지만 손을 뻗어 비빌 수도 없다. 내 옆에는 나 말고도 우리 마을 엘프들 몇몇이 나와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을 보자 반가운 나머지 손을 흔들었지만 이내 낯선 존재들이 날린 주먹으로 안면을 얻어맞고 입을 꾹 다물었다. 걸어가면서도 그 존재들이 손을 들 때마다 맞을까봐 나도 모르게 몸을 흠칫거렸다. 결국 내 처지가 너무도 서럽고 가련한 나머지 눈물이 몇방울 주루룩 볼을 타고 흘렀다. 내 코로 흘러들어오는 탁한 공기와 시끄러운 소음들, 그곳으로 우리는 걸어가고 있었다.

이상한 존재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알 수 없는 말들, 그리고 알 수 없는 행동과 표정을 되풀이 하며 그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귀를 막아버리고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는 그 존재들이 두려워서 나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한참이 흐르자 처음보는 존재가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끌고가더니, 또 덜컹거리는 무언가에 태웠다. 저항을 하려고 할 때마다 나를 걷어차고 때려대는 바람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복종했다. 몇일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 얻어맞기만 했더니 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덜컹거리는 것 속에서 나는 또다시 눈물만 줄줄 흘려야 했다. 지금 내게 직면한 현실이 저주스럽고, 또 내게 이런 가혹한 시련을 안겨준 하이엘프의 신을 원망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나의 나약함을 절실히 깨닫고 짙은 상실감에 젖어들었다.

내가 도착한 곳은 대략 집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토록 큰 건물을 본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집 앞으로는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고 묘하게 생긴 곳에서는 물도 뿜어져 나왔으며 옆으로는 커다란 나무들이 줄 맞추어 서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살아있는 그들에게서는 생명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복귀? 복귀 입니까?

와 이거 연참들 장난이 아니시네요 ㄷㄷㄷ

명예의 전당 훗

뭐 천천히 올라가지요 ㅋㅋ 게시판 더 늘어나면

관리가 조금 힘든지라...

예 ^^ 논술 잘하고 왔습니다.

그냥 너 ♡

style by 아크v의 글틀 

[민서우]

지문이 너무 길어요...~_~

[레드펌킨]

우앗...... 이제 봤다... 후후후.. 시드의 과거가...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