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제공(의창) 고택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석천리에 있는 울산 학성이씨 근재공 고택은 1765년 학성이씨 11대손인 이의창(석천의 종손)이 건립한 석천갈래의 파종가집이다.
울산 학성이씨 근재공 고택의 안채는 정면 6칸으로 오른쪽에서부터 2칸 부엌방, 2칸 대청, 1.5칸 건넌방이 있고, 옆면은 1.5칸의 쪽마루를 두었다. 뒤쪽 가운데도 쪽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좌우에는 반침(半寢)이 있다. 앞 열에는 둥근기둥과 네모기둥을 함께 사용하였다. 안채 뒤쪽에 독립된 사당이 있다. 툇마루가 있는 정면 3칸의 전퇴집인 사랑채는 오량 가구 위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현재 곳간채, 대문간채, 사당, 사랑채, 아래채, 안채, 외양간, 중문간 등 13개동 1997년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
겸악-정례-문백-시옥-의창-망오-종기-장찬-규달-석윤-재락-동립-유환
재락(3.1운동 주동과 독립자금조달(상해)로 1년옥고, 천석부자집,
집안에 죽오 이근오(이의창 차남:울산 최초 문과 급제)의 죽오일기, 대문장가 반계 이양오의 문학비,
재락(3.1운동 주동과 독립자금조달(상해)로 1년옥고, 천석부자집,
집안에 죽오 이근오(이의창 차남:울산 최초 문과 급제)의 죽오일기, 대문장가 반계 이양오의 문학비,
구강서원 요약 소개
구강서원은 조선시대 울산지방의 최초 사립 교육기관으로, 효종10년(1659)에 사림 배두첨 이동영 등 11명이 창건 발의가 있은 후 3차에 걸쳐 사림 55명이 공동출자하여 숙종 4년 울산광역시 중구 반구1동 290번지 일원(현재 서원 마을)에 건원하였다.
숙종 5년(1679) 1월 8일 울산유학의 연원인 문충공(文忠公)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문원공(文元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숙종 5년에 울산 유학의 연원인 포은 정몽주 선생, 회재 이언적 선생의 위폐를 봉안하고 숙종20년 구강서원이라는 사액(왕의 교지)를 받아 약 200여년 동안 강학과 향사를 이어 오다가 고종 8년 대원군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오문(吾門)에서는 조 188석(38,36%) 전 1420냥(38,90%) 등 전체의 38.63%를 출자하였다.
서원창건 당시 사림 55인 중 오문(吾門)에서는 기(夔), 시(蓍), 익(益), 동영(東英), 정의(廷義) 정지(庭智, 1636~1686초천 등 21인이 참가하여 창건을 주도하였다
현 복원 서원부지 800여평을 매입하여 울산광역시에 기부채납하고, 복원사업은 울산광역시에서 사업비 21억원을 중구청에 영달하여 2003년 2월에 준공하였다.
우리 학성이가들이 정의(대여)는: 구강서원장을 하여 울산(蔚山)사림(士林)을 이끌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