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는 나도 잘 안다. 힘든 일은 아예 시작도
안하려 든다. 신경질부터 내고만다. 물론 체력에 한계를 느끼는
내 자신을 말함으로써 이기적인 내 속을 변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다.
올해도 자두는 풍년이었다.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자두 따는 일은
그의 몫. 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두 따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 벌레가 종종 출몰하기도 하는 자두나무
가지를 잡아다녀야하고 고개를 뒤로 젖혀야하기 때문. 사다리를
타야한다는 때문.
지난번에 세부부가 왔었는데 그들 중 딱 한 사람만 적극적으로 자두를
땄다. 한 사람은 아예 누군가 따 주기를 기다리는 듯 하였다.
아니면 남의 것이라 함부로 딸 수 없었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자두 따는 시기는 짧은 편이다. 자두 빛깔이 완전히 붉게 되기
전이 적기. 그 시기를 놓치면 새콤한 맛이 사라질뿐더러 아삭한
식감마저 사라지고 오직 물렁한 단맛만 남는다.싱겁게 느껴진다.
올해는 6월27일 정도가 적기였다. 이번에는 친정 언니 오빠들을 불러
자두잔치를 벌여보기로 했는데. 이기적인 나는 반대였다.
우리가 막내이니 언니 오빠 형부 그 누구도 자두를 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 점심 대접도 해야한다는 것.그는 자두를 따느라 힘들 것이고
나는 또 밥을 준비하는라 힘들거라는 것. 자두 따는 일만도 큰일인데
이 더위에 이중고를 치뤄야한다는 것.
티격태격. 친정식구들을 부르자는 그와 자두를 따서 그냥 나눠드리자는
내가 옥신각신.그 놈의 자두때문에. 다른 것도 아니고.한숨이 나왔다.
이것이 바로 가진 자의 고달픈 진실이던가. 차라리 자두나무가
없었다면 이런 갈등은 생기지 않을텐데.
결국은 그의 생각대로 언니오빠들을 부르기로 했다. 가족이 모였을 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나라고 싫어하겠는가.
그대신 점심은 밖에서 시원한 국수로 해결하기로 했는데.
불행중 다행인지 언니오빠들이 바쁘시단다.
그가 자두를 혼자 땄다. 나무가 컸으므로 사다리에 올라가서
아니면 지붕에 올라가서 그도 아니면 나무에 올라서 장대를 휘둘렀다.
자두 따는 일은 일도 아니며 신나는 일이라고 그는 신나게 자두를 땄다.
끝까지 모른척 하려던 이기적인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땅바닥에 즐비하게 깔린 자두를 줍는일부터 깨끗이 물에 씻어
채반에 말리는 일, 그리고 시원찮은 것들을 골라내는 일.
봉지에 담아 얼른얼른 냉장고에 넣는일, 나는 허리가 휘도록 일했다.
그의 목덜미며 팔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그놈의 자두때문에.
소유한다는 것. 무언가를 손에 넣는다는 것. 그것은 공짜가 아님을
알겠다. 노동과 끈기가 필요한 일.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는 힘든 일.
나눔의 기쁨은 그 뒤의 일. 아랫집 할머니네처럼 가까이 살아서
바로 드릴수 있다면 참으로 쉬운데 다들 멀리 산다. 자두는
보관이 잘 안되므로 빨리 나누지 않으면 나누지 않은만도 못한 일이 된다.
아랫집 할머니네, 막내 시누이네. 큰언니네, 내 친구네,그의 친구네
작은 오빠네, 내 스승님께도. 일단 쉽게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뭐 다들 좋아했고 나도 기분이 좋았지만 그의 목덜미는 가려움증으로
울룩불룩 솟아오르고 상처가 남았다. 내 허리와 팔은 욱신욱신 쑤셨다.
자두 때문에.
오늘 다시 종자골에 간 그에게서 사진이 날아왔다.채반에 자두를 가득 담은
사진이었다. 자두를 마저 다 땄다고. 얼마나 보기 좋으냐고.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눠줄거라고. 나는 기쁘지 않았다. 툴툴거렸다. 그 목덜미가
그 모양인데 또 땄느냐고.그냥 놔 두면 새 밥이 되어줄터인데..
그러면서도 저 남자 저 너른 가슴 때문에 옹졸한 나도 묻혀서 잘
살아가는거라는 생각이 든다.
고맙다는 말과 오직 그대가 최고라는 메세지 보내고싶어진다. 자두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