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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녁을 먹고 내가 샌느강이라 부르는 천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날이 저물고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다. 자전거 타는사람, 롤러블레이드 타는사람, 뛰는 사람, 걷는 사람, 저마다 운동을 하고 있다.
먼산을 바라 보다가, 저녁 하늘을 쳐다 보다가 , 강물을 바라 본다. 아파트 불빛, 끝없는 차량들의 전조등, 다리의 조명등이 아름답다. 온갖 아름다운 불빛이 강물 속에 비추이고 있다.
불 밝던 창에 어둠 가득 찼네.... 나도 모르게 <불꺼진 창>을 흥얼거린다. 지금 이 나이에도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톤을 낮춰 노래를 불러본다. Fenesta che luci...... Modorme co li muorte accompagnata!
옛 생각이 주마등 처럼 흐르면서 진한 감정이 북받쳐 온다. 난 어느새 그 시절 홍안청년이 되어 있었다. 다시 제 톤으로 노래를 부른다.
오 내사랑 <카로 미오 벤>도 부르고 무정한 마음 <코렌 그라토>도 부른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도 <별은 빛나건만>에 <오 나의 태양>까지. 오랜만에 목청껏 노래를 부르자 회한같은 눈물이 어린다.
2
그녀에게서 온 편지들을 돌려 주었다. 그녀가 웃으면서 내게 다가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꿈이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지금 어느 하늘아래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그녀가 꿈속에 보이다니. 이상한 일이다.
<아네스>였다. 영세 본명을 골라 달라고 했을 때 아름다운 <아네스>로 하라고 했었다. 그 <아네스>가 삼십 년도 넘은 어젯 밤 꿈에 날 보러 왔었다.
어제 강변에서 목청 높여 부른 내 노래가 메아리쳐 그녀에게 전해진 것일까? 그녀도 꿈속에서 날 보았을까?
아네스의 희미한 그림자가 눈에 어른거린다. 갓 스물을 지난, 아름답게 피어 난 흰 산딸나무 꽃으로.
3
그 땐 사랑이었던지도 몰랐던 아네스.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를 떠올린 것은 간 밤의 꿈 때문이었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음악감상실에 갔었지. 시청 앞 어디던가 ? 악보를 나눠주고 함께 노래 부르는 카페가 있었지.
카타리 카타리 그대는 어찌해 그대 맘에 나를 잊었나 나 괴로워라 홀로 맘 태워도
그대는 날 잊었네 날 잊었네 허무한 사랑아 어여쁜 그대 모습은 이미 나를 잊어버렸네
그때 불렀던 <코렌 그라토> 어제 강변에 나가 부른 그 노래 무정한 마음처럼
이제는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다가오는 아네스. 부디 아무 일 없기를.
멕시코 출신의 3인조 트리오 '로스 트래스 디아멘테스'가 발표하여
유명해진 원제는 달의 노래 (Luna Llena)로 라틴음악의 고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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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루나 레나를 검색하다가 귀하의 글을 보았다네. 나는 그대의 굵직한 목소리로 "루나 레나. 별은 빛나건만" 를 들어보고 싶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