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보다 당신의 얼굴이 먼저 보입니다. 그래서 볼 때마다 관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Look at your face,you have something on your face.
저는 한 얼굴을 잔잔히 내려다 보면서 생명의 시작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한 번 잘 유심히 본적이 있어요? 여성분들은 화장을 한다고 좀더 유심히 볼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터프한 남성은 기회가 잘 없을 것 같아요.
얼굴을 보면 눈이 양쪽에 있고 그 중심 약간 밑으로 코가 우뚝 솟아 있고 그 밑에 입이 열려 있지요. 그리고 양쪽 모퉁이에는 귀가 있어 무엇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럼 생명의 시작이 어디서 부터 시작하는가? 태초에 창조주로부터 뿌려진 씨앗으로 생명이 자라 나지요. 그럼 우리 몸에서는 심장이 뛰면서 그 생명의 고동을 듣게 됩니다. 그 후에 세상에 태어나면 객관적으로 얼굴에서 그 생명이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저는 몇주전에 첫 손자를 보면서 새생명을 짠짠히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이렇게 얼굴을 하나 하나를 보게 되네요. 생명의 시작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가?
대부분의 시간에 잠을 자고 배가 고프거나 귀져기가 무거울 때면 울어 댑니다. 눈과 귀가 열려 있지 않는 애기는 안아 주거나 또닥 거려 주면서 달려 주지요. 상호 의사소통의 수단을 발견하여 최대효과를 누려 봅니다.
이 때 마침 야보고 말씀이 두 귀에 들려 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19-21)
살다보면 성도 낼 수가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가?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 말씀에서 우선 저는 성을 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단어의 원어로 부터 그 의미를 알아 보겠습니다. 히브리 말로 성은 분노로 표현이 되는데, 아프 는 코, 콧구멍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뜻을 생각할 때 저도 코에 대한 한 예가 떠오르는군요. 황소나 사람이 화가 났을 때 그 코 옆에 느낌표를 달아서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표현하기는 것을 보았네요. 이 처럼 화는 바로 코로 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화가 나면 흥분하여 콧구멍을 벌렁거리거나 거친 숨을 내뿜게 되는데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 신체적 변화를보고 코 자체를 분노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아프 는 콧와 분노라는 두 가지 의미로 약270회 이상 사용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단어가 문맥에 따라 신체 부위인 코와 감정인 분노로도 번역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분노는 바로 코의 구조와 상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코를 통하여 생기를 불어 넣어셔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바로 코는 생명의 통로로 처음 사용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 생명의 통로를 분노를 표출하는 통로도 사용하게 되었네요.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생명이 단축되게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노를 더디함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분노는 바로 구원과 반대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렇다고 화를 안내고 살 수도 없지만, 최소한으로 해서 할까봐요.
우리는 이렇게 코로 숨을 쉬므로 생명이 존재함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 생명의 존재 여부를 코쉼으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애기도 열심히 코로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의사소통은 입으로 울음을 떠터버립니다. 이 처럼 생명의 통로는 코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찾아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아프에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아프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니라"(창3:19)
"육지에 있어 그 아프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을 다 죽었더라"(창7:22)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에레크 아파임)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103:8)
이 아프의 두가지 뜻을 볼 때 우리는 한 통로를 통하여 생명과 분노가 동시에 작용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통로가 되어 생령이 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 통로로 감정의 분노를 내어 보내는 통로가 되어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이 뜨거운 분노의 감정이 가슴 속에 그대로 있으면 불타서 죽을 것이지만 코를 통하여 내어 보냄으로서 그나마 생명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몸이 생명을 유기하기 위하여 그렇게 필요하게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가지고 있어 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 자신도 내 몸에 대하여 다 알지 못하고 관리를 할 수없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내가 살아가는데 어떤 도구들이 필요적으로 사용되어지는지를 잘 알지 못하고 그냥 숨을 쉬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으며 살아가고 있지요. 의사가 아닌 이상은 내 몸에 대하여 잘 알지를 못합니다. 아프지 않으면 더 이상은 어떤 것도 신경을 쓰지 않고 내 욕망이 이끌리는데로 살아 갑니다. 참으로 신기하지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렇게 물어 본다면 우리는 잘 답변을 하기가 힘이 들것입니다. 할 수 있는 대답을 자신의 직업 정도일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데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는 아무것도 모르는채 은혜로 자라고 있지요. 그럼 어른이 된 우리는 내 마음데로 사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