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YE TRACE 이형구 개인전_두산갤러리
2010.5.6-6.17
다른 눈으로 세상 보기
하루종일 컴퓨터의 은혜로운 전자파와 껌뻑이는 모니터를 거의 껴안고 살다시피 한다.
사무실 컴퓨터 모니터가 어느 날 갑자기 3D로 보이는 증상이 생겼다.
글자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보이더니 급기야 며칠전 엔 4D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이에게 보이니 당장 바꾸라고 이래서 얼마나 눈이 피곤했느냐고 한다.
확실히 둔한 나는 웬지 눈도 많이 피곤하고 머리도 아프다 했다.
모니터를 바꾸고 나니 이건 완전 신세상이었다.
실상을 보는, 눈이라는 창을 왜곡하면 그 사람의 삶 자체의 윤택함, 만족도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물론 오감을 이용하기에 다른 부분이 발달하긴 하겠지만 각자의 환경과 욕구에 맞는 ‘눈’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그들의 목적에 맞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형구의 개인전 ‘EYE TRACE‘ 는
사람의 눈으로 ‘물고기·사슴 눈에 비친 세상’을 상상한다.
‘안구추적(Eye Trace)’에서는 전시 제목 그대로 ‘시각’이라는
인간의 감각기관에 대해 주목하는 새로운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우선 화이트의 우주복 같은 것이 마네킹도 없이 축 늘어져 있다.
자세히 보면 물고기 눈처럼 왼쪽 오른쪽에 아크릴 창이 있어 사람의 눈처럼 앞으로 볼 수 없다.
그 옆 벽에는
사슴이 오렌지색 색맹인 점에서 착안한 오렌지색 투명패널로 되있는 사슴 마스크가
비행기 조종석 자리를 둘러싸고 작은 거울이 여러개 달려 있어서 파리, 모기처럼 다중시점으로 볼 수 있는 장치도 있다.
전시장 가장 가운데에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 지 알 수 없는 희한한 의자하나가 놓여있다.
나무회전의자에 여러 작은 거울들을 거미줄처럼 엮어 달아 놓고 있어 마치 파리나 모기가 보는 다중시점으로 볼 수 있는 장치다. 허리춤에는 위스키병에 빨대가 달려 있어 앉아서
음주도 가능한 꽤나 흥미로운 장치다. 빙그르르~저기 앉으면 뿅가겠다 싶다.
그 왼편 벽면위엔 이 장치들을 고안해 내기 위한 일종의 설계도와 같은 역할의
드로잉 작품들이 걸려 있고 그 아래엔 또한 그 쓸모를 알 수 없는 엎드려 타는 바퀴달린 장치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끝 부분엔 병원에서나 쓸 법한 금속 핀셋에 소독약 통 같은 약간 겁나는 회수 장치도 붙어 있다.
이 모든 작품들의 사용설명서는 코너를 돌아 보면 만나게 된다.
작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너무나 진지하게 퍼포먼스를 행한다.
전시장 구석에는 오프닝 때 작가가 행한 그것을 보면 이 요상한 것들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조금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본다고 해서 의문이 다 풀리는
건 아니다. 아니 더 혼란스러워 질 지도 모르겠다. 우주복 모자같은 저걸 쓰고 좌우로 비틀대며 걷고,
앉아서 빙글빙글 보는 사람어지럽게 돌고, 심지어는 술까지 빨고, 엎드려서 땅거지처럼 무언가를 주워담고......
이에 대해 작가는 “물고기 눈이 달린 모자를 쓰면 물고기처럼 옆으로 지그재그 움직이게 된다”며 시점이 주제지만
그 시점으로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신체 실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형구는 신체를 소재로 다양하고 독특한 작품을 해왔다.
작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에 서기도 하였는데 52회 베니스비엔날레(2007)에서
'아니마투스(Animatus)'라는 제목의 연작들로 한국관 단독 출품을 하기도 하였다.
아니마투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만화캐릭터를 해부학적으로 탐구한 제목으로
애니메이션의 라틴어 어원으로 '움직임,생명을 불어넣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만화적 이미지에 생명력과 동작성을 부여하는 형식과 특징을
포착하여 그로부터 얻게 되는 형상을 해부학적 근거의 잠정적 혹은 가설적
가능성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아니마투스외에 오브젝츄얼스(opjectuals)라는 렌즈와 같은 인공 기구들을 착용하여
신체의 일부분들을 다양하게 변형,왜곡시키는 작품들을 주로 선보여왔다.
생물학, 해부학, 유전학, 고고학 등 과학적 요소를 작가만의 예술적 상상력과
결합시켜 매우 독특하고 철학적인 작품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임근준의 ‘크레이지 아트‘에서는 이형구작가를 '포스트.휴먼 미스터 하이드'라고 칭하며
세상을 인지하고 운영하는 데 기본인 테크놀로지 인터페이스의 실체를
고발하거나 시각적 · 물리적으로 조작하는 아티스트라고 하였다.
이번 ‘안구추적‘전도 이전의 작가의 작업들과 어느정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시각’이라는 인간의 주요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자극을 인지하여 뇌로 전달하는 정보가
다시 신체에 반응을 일으키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실을
다양한 방법으로 재현해 낸다. 특이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보는 방식이 아니라
철저히 다른 동물의 눈, 여기서는 곤충이나 물고기, 사슴 등의
시지각을 가상 체험하면서 이 반응의 차이 속에서 인간 시각과의
차이를 역추적 해 나가는 것이다.
치밀한 가설을 세우고 그를 통해 진실을 탐구하고 실험하는 모습은
예술가 이전에 고고학자나 과학자의 그것과 가까워 보인다.
그는 늘 전시 개막일에 퍼포먼스를 벌이는데 이번 전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장은 못 가봤지만 전시장 내에서 전시 기간 동안 동영상으로 다시 볼 수 있다.
작품들을 작가처럼 직접 타고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 굴뚝 이었으나
아쉽게도 전시장에서 그리해볼 수는 없다. 작가 맘이니까 어쩔 수 없다.
작가는
“체험해 보고 나면 더 이상 상상하지 않기 때문에 눈으로만 보면서 작품에 대한 상상을 하길 바란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단지 그 기구를 썼을 때 어떨까를 상상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이의 눈으로 보면 세상도 달리 보인다.
눈에 따라 행동도 달라진다.
시각이라는 것은 진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형구의 작품은 지극히 피상적인 이 가설을 명백하게 입증해 내었다.
그의 작품은 매섭고도 똑똑하다.
이번 전시는 6월17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