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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角山과 道峯山이 잘 보이는 眺望臺를 생각하다. 어느 산을 올랐다. 지하철 역사 안에 있는 제과점에 들러 빵 3개와 나의 입맛에 맞게 끊인 커피만을 넣은 nap-sack을 어깨에 메고 올랐다. 날은 찬데 바람이 불지 않아 겨울등반하기엔 최적의 일기였다. 긴 고랑이란 이름이 붙여진 계곡, 볕이 참 좋았다. 겨울산에 오르려면 방향이 중요하다. 서향이 제일 좋다. 해가 낮고 길게 종일 들어 행동하기 좋고 체온 유지하기에 최적의 코스이기 때문이다. 해가 든다는 것은 바로 적설량이 적고 빙판이 다른 방향 보다 적다는 이야기가 된다. 쌓인 눈의 부피를 줄여 주는 것은 볕과 바람인데 바람은 쌓인 눈을 옮겨 줄이지만 볕은 녹여서 부피를 줄여 간다 북사면이나 동사면은 이에 반해 해가 아침에는 잘 들지만 그 후에는 들지 않아 항상 적설량이 그대로 쌓이고 해가 일찍 지는 곳이라 어두움이 빨리와 그만큼 춥다. 어두움이 빨리 찾아 오면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진다. 겨울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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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漢山이라 함은 漢水, 즉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식민지 시대 총독부 일본인 관리에 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아기를 업은 형상이라 부악이라 하였고 萬景臺(만경대) 白雲臺(백운대) 仁壽峰(인수봉)을 서로 연결하면 삼각점이 생겨 삼각산이라 부른 것은 바로 선조들이었다. 그러나 방향에 따라 삼각을 잇는 峰은 달라진다. 서북방향에서 보았을 때 삼각점을 이루는 봉은 露積峯(노적봉), 白雲臺(백운대), 萬景臺(만경대)라 한다는 고서도 있다.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노적봉, 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만경대, 흰구름이 항상 떠돌아 백운대라 하였는데 어진 목숨을 뜻하는 인수봉은 역설적으로 수많은 climber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삼각봉을 중심으로 산 지류를 형성하고 있는 산이 바로 삼각산 전체다. 삼각봉에 다가갈수록 산세는 험해지고 가파르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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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청나라와 항쟁을 주장한 淸陰 金尙憲은 청나라에 끌려가기 전 친구들과 만나 시 한수를 지어 남긴다. 호국의 마음과 자신의 신변 즉 안위에 대한 염려가 드러난 시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의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도 수상하니 돌아올 동 말 동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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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과 도봉산을 구분하는 재가 있다. 선조들은 사람이 넘는 마루 중 구름이 걸릴 만큼 높은 곳을 령(嶺)이라 하였다 이곳을 재가 아닌 령을 붙여 우이령(牛耳嶺)이라 하였다. 그만큼 높게 본 것이다. 또한 소귀를 닮은 지형이라 마을 이름을 우이동이라 불렀다. 지금도 삼각산 대동문 북동 방향의 계곡을 소귀천이라 부르고 우이동에서 오르는 산기슭 보문사 위에 소귀를 닮은 바위를 우이암이라 한다. 그러나 믿는 종교에 따라 불교신자는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하고 카돌릭 신자들 눈에는 성모님 형상이라 말 한다. 우이암이 있는 곳은 도봉산이다. 도봉산은 다락원 능선을 지나면 원도봉산이라 부르고 회룡역부터는 사패산이라 구분하여 부른다. 오늘 성탄 축일 휴무라 그런지 제법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주 조망권이 좋은 위치를 잡고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화상력에 한계가 있어 화질이 많이 떨어졌다. 후회막급! 카메라를 챙길 것을....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성북구, 은평구, 종로구, 고양군, 양주군, 광주군에 접해있는 산의 세력이 북악, 인왕, 안산, 북한산, 도봉산, 원도봉산,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 천마산, 백봉, 갑산, 예봉산, 검단산, 용마산, 남한산성 등이다. 이 중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북한산과 도봉산에 접해 있고 노원구는 수락산과 불암산에 접해 있다. 삼태기처럼 생긴 들이 중랑천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펼쳐져 있었는데 마들 평야라 불렀었다. 전원적인 풍경이 가득한 곳이었다. 서울우유와 한독약품 공장이 있었지만 약품회사는 이전하고 차즘 도시화된 지 오래되었다. 빈틈이 없는 도시공간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옛적 전원 모습을 몰랐다면 모르겠는데 아름다운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 답답함이 몰려온 것이다. 물이 맑고 경치가 좋아 부모님 따라 또는 친구들과 함께 열차 길을 걸어와 놀다 문안의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이렇게 산천의 환경이 바뀌었는데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바뀌지 않았다면 이상할 것이다.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삶의 터전이 중요한 일인데, 사람들은 도시 기능만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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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령과 가장 가깝게 있는 오봉이 좌측에 보인다. 각 峰마다 감투를 다쓰고 있는 암봉이 오봉이다. 단 한 봉만 여성이 평생 짓고 살던 쪽진머리라 하여 쪽두리봉을 빼고는 전부 감투봉이다. 그중 제일 높은 위치를 말하는 대감투봉도 존재 한다. 우이동에서 가려면 우이령을 넘어 밤나무 골 옛 주막터 자리 계곡 따라 오르면 단박에 접근 할 수 있다. 도봉에서 가려면 거북암 길을 이용하여 오르는 것이 빠르지만 지금은 생태계 복원을 위하여 막아 놓았다. 도봉산의 巖群은 천축사 뒤에 몰려 있다. 서 있는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선인봉(仙仁峰), 만장봉(萬丈峰), 자운봉(紫雲峰), 좌측으로 신선대(神仙臺) 와 주봉(主峯)과 칼바위가 있고 포대능선(砲臺稜線) 암봉이 북쪽 방향으로 도열해 있다. 그리고 주능 끝에 사패암봉이 도봉산 말미를 알린다. 북한산에 명찰로는 도선사, 문수사, 여승방으로 유명한 진관사와 북한산성 안에 승병들이 있던 태고사가 있다면 도봉산은 천축사, 만월암, 망월사,회룡사, 석굴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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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방향을 들여다보자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져 가고 있어 자연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제 2 경부고속도로라 말할 수 있는 구리와 강동구를 잇는 다리 공사를 현대건설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너머로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미사리 신도시가 이미 그린벨트 공간을 거의 채워 놓았다. 천마산 백봉을 이어 내려온 산맥은 갑산을 만들어 청계산 운길산을 이어 달려오는 산을 기다린다. 그 산과 만나 세력을 키운 다음 예봉산을 만들고 예빈산으로 이어지다. 잠시 두미강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검단산, 용마산을 만들어 이어 달리다. 벌봉을 만나려 용마산은 은고개를 훌쩍 넘어 다시 당찬 웅비를 만들어 남한산과 그 안에 산성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우리 강산은 산이 꼬리를 물고 달리는 형극이다. 산이 산에 들고 두 산은 다시 다음 산에 숨어든다. 그리고 결국에는 산음(山陰)이 되어 물의 자리와 호흡하며 멋진 풍광을 세우는 것이다. 풍광은 다시 암자나 절을 만나 추녀 끝에 풍경이 되어 자연의 아름다움이 소리가 되어 산사를 찾는 자들의 마음에 맺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고국산천의 모습이다. 어찌 사랑하지 않으리오. 일출을 보고 있노라면 기개가 마음에 서리고 일몰을 보고 있노라면 노을에 아픔이 빛 노을에 녹여지고 새살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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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나루 건너 남한산성이 아련하게 보인다. 그 좌측 용마산 능선으로 새해 일출이 솟아오를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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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도 보이고 청계산과 관악산도 보였다. 남산과 인왕산도 안산의 모습도 시야에 들어왔다, 도심 사이사이마다 스모그가 안개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북악과 낙산도 잡혔다. 이태조가 도읍으로 정할 때 지금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도읍을 정할 때 이곳의 지명을 漢陽이라 적었다. 그러나 부름은 사라지고 고작 일백 회 정도 문서로 남겨진 이름이었다. 그 후 관청 이름을 빌려 漢城으로 변한다. 漢城判尹하면 지금의 서울시장 자리다. 그러나 이것도 근대에 들어와 京을 빌려 京城이 되는 것이다 京은 서울을 뜻하는 京이니 지금 서울이란 수도 이름은 제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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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浪川 상류, 호원은 갈대밭에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하여 호랑이 숨어 지낸다 하여 하사 받은 이름이다. 虎院이라 하여 함경도 원산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야 하였는데 호랑이 피해가 늘자 나라에서는 집을 짓고 군사를 배치하여 人馬를 모으고 物物을 모은 후 지나가도록 하였다. 이곳에는 院이 많이 있던 곳이다. 노원, 장수원, 호원이 전부 그런 성격의 원이었다. 물론 파말마도 함께 있었지만... 중랑천 하류는 응봉산 부근으로 한강과 만나는 지점이다. 이곳 합수지점은 먹잇감이 많아 철새가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강 갈매기가 많이 찾아 유명한 곳이었다.벌써 행주산성 너머로 노을이 들 징조가 보였다. 해가 떨어지면 겨울산은 금방 한기가 서리고 시야가 어두워져 길 분별력이 떨어진다. 이 곳까지 올 계획은 없었다. 출발에서 계획은 강기슭에 놓인 나무길 따라 약 5km 걷다가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마음이 바뀐 것이다. 새해 일출 자리가 탐이나 온산으로 발 길을 확산한 것이다. 그 바람에 서울을 감싸고 있는 명산순례란 덤도 얻었다. 조망이란 단어를 빌려 나의 고향 서울의 모습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이다. 시간이나 거리를 봐도 손색이 없는 곳인데 아직 구체적인 결심을 미루고 있다. 다시 한번 더 찾을 계획이다. 일출 시간에 맞춰 찾으려 한다. 그리고 결심을 해야겠다.
첫댓글 우 와 ~~서울의 명산 순례를 앉아서 편안하게 다 했습니다
지리와 공간 개념에 꽝인 전 부럽습니다 이것 복사해서 몇번 들여다봐야
개념이 좀 잡히려나요 암튼 감사합니다~~~~
걸음 여행에서 다녀온 것도 많은데요
너무 커졌습니다. 서울도 나름대로 고궁과 골목이 더불어 정겨운 모습이 있었는데 다 사라져 버리고. ... 주거에 필요한 건물이 산 아래 가득한 모습을 보니 ..... 모든 것이 채우는 공간, 즉 창고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