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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일: 드디어 백두산을 향해 출발하는 날이다.
트레킹 하는데 필요한 간식, 보온의류, 여벌옷, 우의, 상비약 등을 배낭에 챙기면서 마음 설레이는 며칠이 지나갔다. 인천공항 3층 E 카운터에서 53회 고교동기 9명+1명 모두 약속시간 보다 일찍 모였다.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영국 신사 조 한묵 군만 11;00시에 등장? 모두 웃었다“한묵이는 약속시간에 정확히 나타난다” 최 영송 군의 말이 끝나자 말자 한묵 군 나타남....
모두가 가벼운 옷차림으로 서로의 손을 굳게 잡는다. 배 부장((주)산이 좋은 사람들 가이드)을 만나 상견례 하다. 총인원 32명(우리일행10명+부부모임12명 그외10명) 짐 부치고, 탑승수속 후 중국 남방항공에 올랐을 때는 12;30분경, 승무원들의 중국어 대화에 여행을 실감하다. 예정시간(13;20)보다 약30분 늦게, 구름이 잔뜩 낀 하늘로 비상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 거대한 비행체가 하늘에 떠오르는 것이 신기? 하게 생각된다. 홍재유 군과 자리를 함께해, 기내식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으면서 반주로 캔 맥주를 먹고, 기분이 좋아짐.......다른 사람들 커피 마실 때, 승무원에게 요청해 다시 캔 맥주 하나씩을 추가함.(술을 사랑하는 두사람)
2009년 10월말에 설악산 대청봉(오색-대청봉)에, 금년 봄 5월에 관악산, 6월에 소요산 등반 등으로 이 산행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설악산보다 1000미터가 더 높은 백두산 산행을 위한 체력단련 행사였다. 현지 날씨만 좋으면 어느 정도 자신을 할 수 있는 체력들이다.
14;30 장춘공항 도착하다. 현지 가이드 김 군(조선족 3세)은 오늘저녁 숙소인 송강하로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현지 사정과 일정을 소개했다. 약6시간을 예정한 이동시간을 약10시간 정도 소비했다. 비행장에서 출발부터, 출구를 잘못 알아 비행장 광장을 한바퀴 돌고, 고속도로와 국도로 번갈아 가는 길도 잘못 들어 다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가는 도중 저녁식사도 예약시간보다 늦어 음식도 식고 별로였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노동자 파업이 시작되고 있어, 우리가 타고 있는 버스기사도 파업으로, 임시 기사여서 문제가 되고 있었다. 특히 중국은 시간 관념이나 서비스는 기대 할 수 없다고, 이 모든 것을 감수하는 게 중국 여행이라고 김 군이 말하고 있다. 빗방울이 떨어진다.내일 산행을 염려를 하면서 숙소에 도착 했을때 는 22;00시가 지나고 있었다. 이름뿐인 호텔 숙소는 우리나라 여관 급 보다 시설이 못했다. 대강 사워를 하고, 룸메이트 한묵 군과 팩 소주(한국산)한 잔씩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제발 내일은 비가 그쳤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7월2일; 드디어 산행하는 날이다. 04:00경에 잠이 깨어, 창밖으로 비가 오는지를 살폈으나 알 수가 없다. 3층에서 현관으로 내려와서 밖으로 나갔다. 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난감한 심정이다. 1층 원형 식탁에서 아침 식사를 32명(산이좋은 사람들 일행)이 함께하다.특이하게 삶은 계란이 나왔다. 산행을 위해 모두가 하나씩 집어 먹는다. 아직도 비는 계속되고 있다. 배 근홍 군과 오늘 산행을 걱정하는 대화를 나누다. “이렇게 비오는 날 차라리 산행을 포기? 하는게 현명하지 않을까?” “설악산, 한라산도 이런 상황이면 등반이 어려운데, 1,000미터 이상이 더 높은 (2,744미터)초행길 등반이 가능 하겠느냐?”내가 한 말이다. 일단 가이드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07:00시 현관에서 배 부장에게 물었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산행이 가능 하겠느냐고?” 예정대로 산행을 강행 한단다. 안전을 위해 전문 산악인(현지인)2명을 추가하여 4명의 가이드가 인솔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천지주변 바람의 강약과 기온(영하로 떨어지면)이 변수라고”하면서........... 백두산 트레킹 전문 여행사로서는 예정대로 진행 할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 했다. 완전무장(배낭에 간식,여벌옷 중식 도시락)을 하고 우의를 뒤집어쓰고, 서파 입구 에 08:00경에 도착 버스에 내렸다. 비는 조금은 가늘어 졌지만 계속되고 있다. 큰 건물 앞에는 장백산(長白山)을 알리는 글자(한자)가 상하로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고, 건물은 입장객이 입장료를 지불하고 통과 하도록 게이트가 여러 개 설치되어 있고, 특이하게도 아주 깨끗하게 유지 관리되고 있는 화장실도 있었다. 중국현지 관광객 다음으로 한국 관광객이 대종을 이루고 있었다. 그 건물 앞에서 우리는 기념사진도 몇장 찍었다.
게이트를 통과 하여 서파로 행하여 약15분정도 걸었다. 주변에는 흰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이곳의 한랭한 기후대를 말해주고 있다. 다시 버스를 타고(약20분) 서파 바로 아래 까지 이동했다. 강한 비 바람이 몰아쳤다. 주변은 짙은 안개로 덮히고 가시거리 약 3미터 이내였다. 우리일행 10명은 나란히 1,200계단을 오른다. 자욱한 안개 속을 헤치고, 앞뒤 친구를 확인하면서............길 양쪽에 흰색의 야생화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고(高)지대라 키 큰 나무는 없고, 초식류, 이끼류만 생존 할 수 있는 기후대다. 흰 눈이 좌우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 하드니, 기어코 눈길을 여러 번 통과하게 되었다. 이 여름(7월2일)에 눈을 밟게 되다니!!! 이곳에도 가마꾼(2사람이 대나무 가마에 사람을 태우고 오르 내림)들이 300원(한국 돈 약6만원)하고 외쳐댄다, 약09:00경에 서파 정상(5호경계비)에 도착했다. 서파 정상은 구름과 안개와 비속에 묻히고, 대망(大望)의 천지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천지(天池 )라고 쓴 간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오른손을 다함께 올리고“파이팅”을 외치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이제부터 백두산 능선 종주 트레킹이 시작되고 있다. 5호 경계비 오른쪽은 우리 땅(북한)이고 왼쪽이 중국 령이다. 천지를 반 바퀴 도는 10여 시간의 산행 시작이다. 우리는(10명) 근홍 군(1번)이 선두에 서고 나는 5번 중간에, 마지막은 종수 군(10번)이 섰다. 11번? 은 예쁜 목포 아주머니(이하 목포 댁)다. 우리일행을 인천공항에서 부터 졸졸 따라 다녀서 우리 일행에 끼워줬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목포 댁은 우리 일행 전속 사진사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게 된다.
시계(視界)가 앞 사람 배낭만 보이는 0상태다. 산행 길은 좁고 가파르다. 여기서 발을 잘못 디디면 오른 쪽은 천지로, 왼쪽은 까마득한 절벽아래로 떨어질 상황이다. 왼쪽에서 불어오는 세찬 비바람은 우리를 무척 힘들게 했다.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비바람은 우의를 펄럭이게 하여, 등산복 바지와 등산화도 젖어 가고 있다. 너무 긴장하여 대화도 잊어버리고 걷는 데만 집중한다.
약1시간 정도가 지나가고 있다. 배낭 속에 준비한 행동식(사탕,초코렡,양갱이)으로, 당분을 보충하면서 걸어야 하는데, 심한 비바람에 우의를 벗고, 배낭을 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순식간에 모두가 몽탕 젖어버릴 상황이기 때문이다. 생각다 못해 앞 친구의 우의를 뒤에서 제치고 배낭 속에 손을 넣어, 간식을 꺼내먹기 시작했다. 궁하면 통한다. 우리일행은 준비한 사탕류를 나누어 먹으면서, 심한 안개 속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묵묵히 걷는다. 이 악천후 속에서 믿을 건 오로지 자신의 체력과 두 다리 뿐이다. 스스로가 원하고 선택한 산행이 아닌가? 등산복 바지는 비에 젖어 비바람에 휘둘리고, 등산화도 물이 차서 질퍽거린다. 잠시도 쉴 수가 없다. 앉아 쉴 장소도 없거니와 저 체온증을(영상1-2도)가장 염려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2,600미터) 체감 온도는 영하 5-6도 이하, 한기(寒氣)로 손 도, 마음도 얼어 가고 있다.
1차로 청석봉(2,662미터)을 오르고 눈 덭힌 한허 계곡의 만년설을 지나, 백운봉(2,662미터)을 오를 때는, 입에서 단 내가 날 정도로 몹씨도 지치고 힘들었다. 산행시작 3시간이 경과하여 12시를 지나고 있다. 우리는 몇 번씩 넓은 너들 지대를 통과했는데, 작은 바윗돌이 제자리를 잡지 못해, 발에 조금만 잘못 닿아도 돌이 아래로 구른다. 비는 계속되고 바람은 더 세차게 몰아친다.
“부처님! 하느님! .....도와 주소서!!! 여기에는 119 구조대도 없습니다.”
안개 속을 헤치고 한발 한발 앞 친구 배낭만 보고 위를 향해 걷는다.
정상은 보이지 않아 얼마를 더 걸어야 할지 가늠해 볼 수도 없고, 가끔씩 뒤 친구가 잘 따라 오고 있는지만 확인 할뿐....... 13;00시가 지나서야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배 부장(가이드)이,제일 힘든 코스를 지나서 식사를 하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했고, 비는 계속 되었지만 바람이 일시 정지된 장소였다. 도시락(여행사에서 지급)을 젖은 돌 위에 앉아서, 빗물을 섞어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군(軍) 훈련병 때 야외 훈련장에서 빗물 밥 먹었을 때가 생각났다. 종수 군이 고량주를 권해, 우리 두 사람만 1잔씩을 마셨다. 나도 배낭에 소주(정상주 용)가 있었지만 너무 지쳐 먹을 용기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 부장이 금주를 선언했다.“음주(飮酒)로 근육에 쥐가 날 확률이 높고 안전을 책임 질수없다” 덕분에 정상주(頂上酒) 를 모두가 포기했다. 몹시도 아쉬운 순간이다. 약30분 정도의 식사 시간이 끝나자 춥고, 턱이 떨리기 시작했다. 출발하기 전 주위를 뱅뱅 돌면서 걸었다. 땀이 식었기 때문이다.
다시 겨우 한사람이 지나 갈수 있는 좁은 트레킹 길을 걷기 시작 할때는 14:00경이다. 녹명봉(2,603미터)을 오를때는 다시 비바람이 세차다. 점심을 먹고 원기를 다소 회복한 관계로 덜 힘들게 녹명봉을 넘었다. 다시 차일봉(2,596미터) 오르막이 시작될 때는 모두가 숨이 턱에 닿았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이를 악문 극기(克己)상황의 연속이다. 관절이 좋지 않아 최근 산행을 자제하고 있든, 완규(4번) 도 스틱에 의지하여, 자기 위치를 고수하고 있고 우정(2번), 영송(3번) 군도 아무 문제없이 트레킹에 열심이다.
이곳은 남쪽의 더운 공기와 몽골 지방에서 오는 찬 공기가 백두산에서 마주치면서 많은 안개, 구름을 만들고, 천둥현상이 잦으며 주로 눈. 비를 동반하는 고산(高山)기후대 이다. 이렇게 기후변화가 가장 심한 이곳을 지금 비와, 강한 남서풍을 맞으며, 9명의 53회 동기 산사나이 들이 함께 악천후 속에서 산행을 강행하고 있다. 덕수(德壽) 개교 100주년 기념, 평생에 잊지 못할 감동의 산행이 될 것이다.
마지막 용문봉(2,596미터)을 남겨 두고,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그런데 내 바로 뒤 한묵(6번)이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린다. 다른 여행사(하나투어)에서 온 산행팀이 마지막으로 지나가도 나타나지 않는다. 안개는 다시 짙게 내려깔리고 시야는 3미터 정도다. 마지막팀 가이드가 자기가 마지막이고 뒤에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안개 자욱한 계곡을 향해 “한묵아”하고 소리쳐 불러본다. 우리 일행 모두가
초 긴장상태에 돌입 하게 된다. 이제는 우리보다 먼저 앞서 갔기를 기대 하며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근심 속에 한참을 걷다보니 한묵이가 보인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한묵이는 앞서 가다가 돌아옴)
마지막 용문봉을 힘들게 넘었다. 지금부터는 계속하여 아래로 내리막 길이 계속되고 있다. 점점 빗줄기가 가늘어 지드니 비가 멈췄다. 바람도 멈추고, 하늘에서 햇볕이 쏟아져 내렸다. 골짝이 마다 백두산 만년설이 흘러내리다가 정지해 있다. 탁 트인 시야에 끝없이 푸른 풀밭이 펼쳐진 거대한 개마고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흰색, 보라색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산 아래 펼쳐진 백두산 속살은 너무 장엄하고 신비롭고 황홀했다. 멀리보이는 검붉은 바위색이며, 곰 모양의 바위 하며 모두가 탄성이 절로 나오게 했다. 우리는 풀밭에 둘러앉아, 점심때 못한 정상주를 컵에 가득 따라 돌리면서, 성공 산행을 자축(自祝)했다. 정말 꿀맛 같은 하산(下山) 주(酒)다. 어렵고 힘들었든 산행의 끝자락이다. 우리 10명은 모두가 해냈다는 성취감(成就感)과 무사(無事)함에 마냥 감사하고 행복했다. 기념사진을 찍고, 주위 풍경도 사진기에 담았다. 시간은 17:00시를 지나고 있다.
개마고원이 끝나 갈 때 쯤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루에도 백두 번 날씨가 변한다고 백두산 이란다. 상철(7번),재유(8번),궁환(9번), 종수(10번) 모두가 건재하다.
숙소인 북파 산문내 대우호텔((주)대우건설 지음)에 도착 했을 때는 18;00시경 였다. 장장 9시간의 백두산 종주 트레킹이 모두 끝났다.
7월3일: 05:00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끈한 온돌방에서 모처럼 푹 자고 나니 한결 개운했다. 어제 호텔식당에서 저녁 먹으면서 고량주로 시작한 자축 파티는, 방으로 장소를 옮겨 밤1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06:00시에 장백폭포로 출발했다. 걸어서 30분 거리다. 아스팔트 도로 양옆으로 흰색 자작나무가 빽빽이 숲을 이루고 있어 퍽 인상적이다.하늘은 맑고 푸르고, 상쾌한 아침이다. 오늘은 천지를 볼 수 있겠다고 잔뜩 기대를 해본다. 노천 온천(溫泉)이 가까워지자 하얀 증기가 여기저기서 뿜어 나오고,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온천탕과 숙박시설이 몇 군데 영업 중 이다. 벌써 장백폭포(長白瀑布)가 보이기 시작한다. 폭포입구에서 온천물에 삶은 계란을 하나씩 맛본(10원:4개) 우리일행은 폭포 최단 거리까지 접근한다.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68미터의 장대한 폭포를 이루며 90도 수직으로 쏟아져 내린다.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물줄기는 소리도 웅장하다.20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 가슴까지 시원하게 느껴지는 장관이다. 이 물은 이도백하(二道白河)강으로 떨어져 송하강(松下江)으로 흐른다.장백폭포 뒤가 바로 천지다. 호텔로 07:30경에 돌아와 쌀죽, 빵으로 아침 먹다.
080:00: 천지를 향하여 출발한다. 약30분 정도를 걸어서 산문(북파)입구에 도착하여, 천지행 찝차(코란도형)에 4인씩 차례대로 승차한다.
다시 날씨는 잔뜩 흐려지고 멀리 보이는 천문봉이 구름 속에 묻혔다.
어제 못 본 천지를 오늘은 꼭 보아야 하는데.......약한 빗방울까지 떨어지고 있다. 찝차 기사가 에스자 급 커버 도로를 거침없이 속력을 내는 바람에 몸이 좌, 우로 막 쏠린다. 약20분 만에 기상대(氣象臺)가 있는 정상에 올랐다. 10분정도 걸으면 천지를 보게 된다. 정상은 무척 다행스럽게도 햇볕이 나고, 맑았다. 우리는 급한 걸음으로 천지로 닦아갔다. 언제 또 날씨가 변할지 예측 할수 없기에 마음들이 급하다.
그토록 고대하든 천지가 속살을 보인다. 와!!!하고 탄성이 절로 나온다. 천지는 푸른 코발트색 물빛에 한조각 구름과 산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감격의 눈물이 핑 돌았고, 마음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얼마나 고대하든 광경인가?! 천지를 둘러싼 봉우리 계곡마다 흰 눈이 기다랗게 자리하고, 푸른 물빛과 어울려 신비 스러운 기운을 느끼게 한다. 우정 군의 아주 큰 환호성(감탄+비명)에 주위 중국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는 광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 모두는 눈과 가슴에 천지의 풍광을 오래도록 담았다.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어제 하루 종일 고생한 산행의 고통이 한방에 날아가 버린다. 희망하든 소원을 이루지 않았는가?......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지리산, 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최정상에서 천지를 보는 이 기쁨은 감동 그 자체이다.
지금 이곳이 한국 령(領)백두산, 천지였다면 얼마나 좋을가?!!! 무척 아쉽다. 약1시간 정도의 천지 관광을 뒤로하고 하산하여 장춘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을 때는 10;30시 경이다. 12:00경에 조선족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다. 삶은 삼겹살과 닭고기가 나오고, 김치와 상추도 곁 드렸다. 들쭉술이 제공되었고, 모처럼 포식 했다. 약1시간 정도의 점심이 끝나고 다시 버스에 올라 길림성의 성도인 장춘으로 향한다. 길림성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포함해서 많은 조선족이 거주하는 곳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야는 넓고 광활하다. 구릉지는 옥수수를 심고, 콩을 심은 밭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약간 저 지대만 벼농사를 하고 있었다. 몇 시간을 달려도 높은 산은 보이지 않고 간혹 야산만 보일 뿐 똑같은 풍경이다. 이 넓은 농지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와 콩의 수확량은 얼마나 많을가? 중국 농산물 가격경쟁 우월성의 실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넓은 땅 덩어리에 입이 벌어지고 내 기(氣)가 팍 죽는다.
“우리자식들 하루빨리 고 부가가치 사업으로 기반을 잡아야 한다.”
좁은 국토에 부존자원이 있나? 쌀을 제외한 농산물은 중국산이 60-70%가 점유하고 있단다. 정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중국사람 발 씻어주는(발 맛사지) 날이 올수도 있다. 완규 군과 안타까운 심정으로 나눈 대화의 일부다.
18:00경에 장춘에 도착(약6시간 소요)하여 저녁 식사를 큰 반점(飯店)에서 먹었다. 민물고기 찜과 야채, 돼지 고기등, 식탁은 푸짐했다. 특이한 향 만 제외하고, 다들 잘 먹는다. 종수 군이 흰 백자에 든 고량주를 주문하여 한잔씩 돌린다.
19:00경 장춘시내에 있는 문화광장에 관광을 갔다. 잠실 석촌 호수 두배 크기 정도의 광장에는 많은 시민들이 여름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제기 차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광장 판석(板石)위에 대빗자루 크기의 붓으로 물을 뭍혀 한자를 쓰고 있었다. 또한 젊은층이 요란한 째즈풍 음악을 즐기고 있었고, 또 한편에는 음악에 맞춰 많은 사람들이 댄스를 즐기고 있고, 모두가 무한히 행복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문화광장 이었다. 오늘밤 숙소인 부귀호텔은 깨끗하고 시설도 훌륭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3번째 밤이 된다.
산행을 함께한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 드리고, 건강을 기원한다.
감격의 산행이라 기억이 있을 때 졸필로 적어 보았다.
2010년 8월10일 허 상 도
첫댓글 이제 다시 가라면 못갈 백두산 종주 기행문을 세심히 잘 썼내요.문학실력이 촌놈 치고는 근사! 어휴 내가 여길 어떠게 다녀왔지..
백두산 등정기를 대하니 새삼 기백이 넘치는 듯 합니다.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백두산 등정기를 다시 보니 저기를 어떻게 올라갔다왔나 생각하니 새삼 감개가 무량합니다. 훌륭한 기행문 감사합니다.
한 마음으로 백두산 종주를 함께한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글 솜씨가 실감이 납니다
종군 기자처럼..... 들려준 이야기보다도 더 자세히 작성을 하였으니 잘 만 외우면 어데서든지 백두산 다녀왔다 해도 될 것 같네~~ ㅎㅎㅎ
등정의 감격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훌륭한 기행문 잘 보았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백두산 등정을 우선 축하합니다.
아주 자세히 내가 가있는 것 같이 써서 잘 읽었읍니다.
수고 많이 하셨읍니다.
생생한 백두산등정기를 읽으니 다녀온 친구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허대장 정말 대단하네요. 백두산을 오를때는 비바람에 제몸하나 간수하기도 어려웠을터이고, 숙소에서나 버스로 장시간 이동할때는 술타령으로 메모를 했을시간이 도저히 없었을터인데 한달여가 지난 다음에 그때의 순간 순간을 기억하여 이런 기행문을 썻다는건 천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수없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대단합니다. 덕분에 그날의 힘들었지만 감격스러움을 다시 느껴봅니다.
힘든 산행이였구료, 젊은이 같은 기백으로 천년 만년 건강하시기를 , , , , 실감나게 읽어슴다.![룰루](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63.gif)
글의 행간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나도 그 일행을 따라 가는 느낌입니다. 훌륭한 기행문 잘 보았고 우리 53벗님들 멋쟁이!!! 수고들 하셨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여행 축하드립니다.
지행! 대단하오. 산행하느라 술마시느라 짬이 없었는데 어찌 이렇게 자세히 기억하고 쓸 수가 있었는지 ! 다시봐야되것오. 덕분에 그추억을 생생이 더듬어 볼수있어 좋았오.
암튼 힘든 산행이었는데 낙오자없이 모두 건강히 잘 다녀와서 일행 모두에게 감사합니다.기행문 쓰느라 수고하셨오. 술만 잘하는줄 알았는데 새사람을 보았구려. 고맙읍니다.
백두산 종주 등정에 비도 내리고 시계도 없는 악 천우속에서 정상에 " 해냄 "을 해낸 지행 허상도를 비롯한 10명의 친구 모두에게 박수를 보냄니다. 또한 생생하게 자세한 기행문을 올린 글 솜씨가 보통 아닙니다. 조금만 더 다듬어 지면 문단에 등단도 가능 하리라 사료 됩니다.
무사히 백두산 등정을 마친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