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문학관 - 최인호의 <돌의 초상>
1. 현재 전 세계는 ‘고령화’라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회적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점차 늘어나고 있는 노인들은 과거의 노인과는 다른 물질적, 정신적, 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영역에서 특별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즉 이제 노인은 과거의 같이 ‘돌봄의 대상’이 아닌 ‘독립적이고 주체적 대상’으로 호명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립적인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흐름 속에서 여전히 많은 ‘돌봄’과 ‘보호’의 존재로서 노인들은 감춰져있다. 시대적 변화는 오히려 그들의 현재적 불안을 외면하게 만들고 그들의 고통을 은폐시킨다. 소수로 규정되었을 때, 삶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나이듦’의 긍정적인 방향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던 가운데, 우연하게 1980년대 제기된 ‘노인’의 문제를 만나게 되었다. 최인호의 원작을 영상화한 TV문학관 <돌의 초상(1982)>이다.
2. 새를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작가(백윤식 분)는 우연히 공원에서 가족에게 버림받은 치매노인(신구)을 집으로 데려간다. 순간적 동정심으로 결정된 행동이었지만 노인의 통제되지 않은 배변행동이나 여기저기 집안을 어지럽히는 모습에 노인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하지만 그의 아내(이경진)는 그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고독하게 지냈던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경험한 그녀는 노인을 마치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돌본다.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필림과 사진을 망가뜨린 모습에 분노한 작가는 마침내 노인을 다시 거리의 공원에 내버린다. 이렇게 드라마는 노인에 대한 어설픈 동정과 불편한 존재로서의 노인의 슬픈 현실을 냉정하게 그려내고 있다.
3. 작품영상에서 가장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노인방기’ 문제였다. 오랫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노인들이 현재의 삶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몰래 거리에 버려지는 사태가 자주 발생했던 것이다. 이들의 특색은 대부분 새 옷을 입고 공원이나 동물원 그리고 놀이터에 방치된다는 사실이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노인들은 ‘노인보호소’나 ‘양로원’으로 가게 된다. 인생의 후반에 쓸쓸하게 버려지는 노인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냉혹하고 이기적인 측면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수석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돌을 주웠다 별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다시 버리는 것과 유사하다. 인간이 인간에 대한 존중을 잃어버리고, 다만 현재의 자기 이익 때문에 타락하는 부끄러운 모습인 것이다.
4. 영상은 작품 중간에 실제 ‘양로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과거와 자식들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노인들의 쓸쓸하면서도 비참한 현재를 그려내고 있다. 그렇게 ‘나이듦’은 철저하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노인은 철저하게 보호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보호할 사람들이 노인을 버리고, 보호할 사람이 사라진 노인들은 참담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작품은 어쩌면 최소한의 인륜에 대한 회복을 요구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냉정한 사진작가와 전혀 다른 따뜻하고 헌신적인 아내의 행동을 대비하고 있다. 노인을 불편한 존재가 아닌 오랜 시간 삶의 깊은 역사를 담고 있는 ‘돌’과 같이 끝까지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한다.
5, 40년이 지난 지금, ‘노인방기’는 이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노인공경에 대한 윤리적 변화가 아닌, 곳곳에 설치된 CCTV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일 뿐이다. 여전히 노인학대는 늘어나고 있고, 보이지 않은 은폐된 장소에서 노인들은 쓸쓸하게 무너지고 있다. 그럼에도 ‘나이듦’의 문제는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상업과 생산 그리고 미래의 주역이라는 ‘자율적’ 존재로서의 노인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고 당연한 방향이다. 능력과 자산을 갖춘 노인들이 변화의 주역이 되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변화 속에서 무너지고 있는 노인들의 현실에 무감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소수이기 때문에 배제되어 버리는 자립의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보호’와 ‘관심’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래된 영상은 현재 진행 중인 ‘나이듦’의 패러다임 속에 숨겨진 진실을 환기시키고 있다.
첫댓글 --- ‘자율적’ 존재로서의 노인을 강조하고 싶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 때 가능하다. 우주에 존재하는 중력의 원리처럼 나이듦에서도 힘의 원리가 모든 생명체에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