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동문시장에 핀 인정의 꽃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문애선
작년 연말에 친한 친구 5쌍이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제주도엘 다녀왔다. 더 일찍이는 작년 1월 1일부터 4일간 한라산을 등반하고 우도 둘레 길도 걸어보는 일정이었다. 이순(耳順)전후의 나이들이라 건강을 한창 염려하면서도 눈보라를 이겨내며 생생한 백록담 표지석을 얼싸안고 손곱아 눌러지지도 않는 카메라 셔터로 인증샷을 찍는 보람도 얻었다.
작년의 쾌거에 이어 일상을 벗어나 올해에도 한라산에 도전했으나 자연은 그리 녹록치 않아 1미터 70센티미터의 폭설로 쉽사리 허락해주질 않았다. 준비해 온 설산 복장으로 영실쪽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 도로 양켠에 사람 키 정도로 쌓여있는 눈을 실컷 구경하며 눈길을 걸었다. 입산이 겨우 허락된 영실 코스 초입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와야 했다. 담날은 마라도로 일정을 바꾸어 자장면을 먹어보고 둘레길 걷는 것으로 마감하였다. 오후 5시 제주에서 출발하는 씨스타 크루즈호가 우리 일행을 바다 위에 5시간이나 띄워놓고 헤엄쳐 목포에 데려다 주면 끝나는 여행이다. 점심을 마친 뒤 여객선 터미널 가까이에 있는 제주 동문시장에서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줄 선물도 사면서 느긋하게 여행 마무리를 하는 일정이었다. 10분 거리에 있는 터미널로 가기 위해 3시 반까지는 주차장에 모이자는 말을 하고 이리저리 한가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시장구경에 신이 났었다. 왠지 낯선 시장에는 항상 볼거리, 먹을거리가 여행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기대감까지 곁들이는 아이쇼핑도 만만치 않은 즐거움을 주니까.
먼저 시장입구에는 황금색으로 물든 귤이나 천혜향, 황금향을 쌓아놓고 맛이 좋다는 제주도 아주머니가 반긴다. 그 옆에는 제주도 특산물인 초콜릿 네댓 박스씩을 들고서 만원이라는 아저씨의 목소리도 들렸다. 구릿빛 피부로 물들이고 헤벌쭉 웃고 있는 돼지머리도 우릴 반기고 있었다. 남해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치다 어느 낚시꾼의 바늘에 결려든 은빛 제주갈치도 한몫 거들고 있었다. 제주도의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오메기떡집 앞에서 친정부모님에게 드리려고, 며느리에게도 선물하겠다며 지갑을 여는 축들도 있었다. 이래저래 시장구경은 그래서 재미가 더하다. 손마다 두어 봉지씩 들고 서로 상대방의 선물 꾸러미도 구경하며 모임 장소로 가는 도중 웬 어린아이들이 ‘저기 어떤 사람이 쓰러졌대’라며 지나쳤다. 무심코 모임 장소로 가던 중 일행이 둘러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우리 일행인 친구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조금 늦게 그곳에 도착한 나는 묻지도 못하고 얼굴만 쳐다보다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어떤 분이 바로 시장 안 자판대에 눕혀놓으라고 하였다. 간이식 온돌인인데 앉아있게끔 되어 있었다.
얼굴이 새하얀 걸 보니 체한 게 아니냐며 친절하게도 뭘 먹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아까 점심에도 속이 더부룩하다며 점심을 먹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어제 저녁엔 삼겹살을 먹었노라니까 ‘에고 돼지고기 먹은 게 체했구만’ 하시며 돼지고기 먹고 체한 데는 곶감을 달여서 먹으면 직방이라고 하셨다. 아주머니는 식당 가게를 왔다 갔다 하면서 가까운 병원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셨다. 별일 아니기를 바라면서 염치없이 그 아주머니 가게에 나머지 친구들과 앉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께서는 병원에 갔어도 체한 데는 곶감 달인 물을 먹이면 좋다고 친절하게도 보온병에 담아주시며 어서 병원에 가져다주어 마시게 하라고 하셨다. 남아 있는 일행 중 덩달아 속이 언짢은 사람들도 정말 돼지고기 먹고 체한 데는 이게 좋다면서 남아 있는 곶감 달인 물을 마시기도 하였다.
낯선 여행지에서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한 우리 일행은 아무런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그제야 그 아주머니가 정말 고맙고 남의 일 같지 않게 마음 다해 정성을 쏟아주셔서 고마웠다. 아주머니는 ‘우리 제주도까지 멀리서 찾아왔다가 이런 변을 당했는데, 그리고 사람이 쓰러졌는데 모른 척하면 그건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지요’라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말씀만 하셨다. 남의 식당에 들어가셔서 구하기도 어려운 곶감까지 달여 주셨기에 사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성의표시를 하려 햇으나 한사코 손사래를 치셨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주머니는 곶감을 파는 분도 아니고 식당을 하시는 분도 아니었다. 건어물을 파는 분이셨다. 수고비조로 드리려던 돈을 거절하시니 손이 부끄러워져 버렸다. 나는 제주산 고등어를 살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또 제주도엘 오면 여기 이곳 동문시장 이 가게에 다시 꼭 다시 들르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친구를 위해 수고해주신 아주머니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그렇게 가슴에 새겼다.
가끔 관광지나 여행지에서는 바가지요금에다 덤으로 속이기까지 하는 것을 일상처럼 여기며 살아왔다. 아마 상인들 입장에서도 내가 언제 당신들을 다시 보겠느냐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듣고 본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삭막하기만한 세상이고,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메말라가는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 제주도 동문시장에서 아름답게 핀 한 송이 인정의 꽃을 보았다. 열 일 다 제치고 사람 살리는 게 우선이고, 쓰러져 있는 어려운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주려 애써주신 그 건어물 집 아주머니에게서 세상에 아름답게 핀 꽃을 본 것이다. 마음은 있어도 실천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렇듯 말없이 티내지 않고, 꼭 필요할 때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처럼 세상에 꽃향기를 드리워야겠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구에겐가 꽃처럼 피어나야 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처럼 말이다.
(2014.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