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푸른 소나무
강상규
미동산 수목원을 들어서니 알록달록 오색단풍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단풍잎이 햇살을 받아 더욱 화사한 빛깔로 춤을 추는듯하다. 수많은 인파로 가을축전을 즐기려는 듯 입구부터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문학 오솔길을 따라 사람과 숲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고 임업의 변천과정 및 산림에 보존을 통한 체험 학습 공간이었다. 이곳에 오면 마음이 차분 해지고 정갈함 마저 든다. 깔끔하게 단장하여 개장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도 계곡 양옆으로 다양한 자연생태를 관찰할 수 있도록 산책로까지 만들어져 있다. 가족과 연인의 안식처로 많은 관람객이 숲과 식물원을 오가며 얼굴엔 함박꽃처럼 밝은 모습들이다.
단풍은 나목의 예비향연이다. 머지않아 만산홍엽이 다 떨어지고 쓸쓸한 산천엔 나목만이 우뚝 서서 겨울 찬바람에 가지만 휘휘 날릴 것이다. 들끓는 욕망의 늪에서 벗어나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지난 시간의 즐거운 추억들을 천천히 음미해 본다.
달포 전에도 방문해 식물채집을 하며 유심히 나무 하나하나를 관찰하였다. 사실은 침엽수에 관심이 많아 살피던 중 다양한 수종으로 식생 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소나무와 전나무 편백 및 측백나무 정도로만 기억이 날 뿐인데 자세하게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수종이 다양했다. 주로 나무의 크기, 모양, 겉피, 이파리 생김새를 세세하게 기록하고 씹어보기도 했다. 아직은 나무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여 영 시원찮은 답만이 맴돌고 있다. 특히 수목원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광경을 보았다. 일반 분재나 아주 귀하다는 황금 소나무가지를 구해다 분재에 접목 한다고 말만 들었다. 그런데 귀하게 키우는 분재도 아니고, 황금 소나무도 아니었다. 접붙이기는 주로 과일나무에 하는 것을 자주 보아왔고, 직접 감나무에 접붙여서 성공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일반 소나무를 접목한다는 사실은 오늘에서야 알았고 그 실물을 한참 바라보며 신기해했다. 그만큼 많은 연구로 얻은 결과물이란 생각도 들지만, 소나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종이라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접목한 수종을 보고나니 왠지 마음이 뿌듯해 온다. 또 질 좋은 수목을 얻기 위해 많은 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내가 어렸을 때는 소나무를 나무 중 가장 선호하기도 했다. 단풍들은 솔잎이 바람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땔감을 얻기 위해 산에는 갈퀴질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붉게 물들어 떨어진 솔잎은 땔감으론 인기가 많았다. 아궁이에 불을 붙이면 은은하면서도 향긋한 솔잎 냄새가 진동해 가슴마저 시원해진다. 한겨울 눈보라가 휘날리는 가운데도 생솔가지를 꺾어다 군불을 지피면 화력이 다른 나무들보다도 으뜸이어서 생나무를 해왔던 생각이 불현듯 난다. 특히 옛날에는 끼니가 부족해서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는 말을 자주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춘궁기 때 소나무 속껍질을 벗긴 송기로 떡을 해서 끼니를 해결 했다고 한다. 나는 궁금해서 속껍질을 베껴 질겅질겅 씹어 보았다. 쓴맛도 있고 솔 향 입안으로 퍼지며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이렇듯 소나무는 우린 민족과 때려야 땔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지 싶다. 소나무는 예로부터 벼슬을 상징하기도 하고 소나무 꿈을 꾸면 행운이 온다고도 믿었다. 소나무는 눈서리가 몰아치는 한파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일컬어졌으며 선비들에게 군자 또는 절개의 상징으로 칭송되었다. 추위가 오면 잎을 떨어내는 나무들과 달리 한겨울에도 푸름을 간직하는 소나무였다. 옛 풍습에 소나무는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힘이 있다고 한다. 아기를 낳은 집 대문에도, 장을 담아 놓은 장독에도 또 동제를 지낼 때는 마을 어귀에 금줄을 매어 솔가지를 꽂는다. 모두 밖에서 들어오는 잡귀의 침입과 부정을 막는 데 쓰인 신성한 나무요, 장수의 상징이었다.
한적한 숲을 바라보면 세월의 흔적과 우뚝 솟아있는 소나무 기상을 느낄 수가 있어 좋다. 숲을 거닐고 있노라면 마음은 이내 안정이 되어 좋고, 청량감으로 가슴까지 후련함을 느낀다. 깊어가는 가을이건만 소나무는 늘 푸름을 자랑하고 사람에게 더욱 이롭고, 깊은 사색을 담아 주기에 외면 할 수가 없다. 나를 되돌아보는 길은 자연의 섭리를 배우는 것이다. 한참 잊고 있다가도 생각나서 돌아보면 늘 빙그레 웃으며 손 내미는 좋은 친구처럼, 사계절 내내 한결같은 지조를 지키는 늘 푸른 소나무이기에 세월이 흐르며 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첫댓글 " 아궁이에 불을 붙이면 은은하면서도 향긋한 솔잎 냄새가 진동해 가슴마저 시원해진다. 한겨울 눈보라가 휘날리는 가운데도 생솔가지를 꺾어다 군불을 지피면 화력이 다른 나무들보다도 으뜸이어서 생나무를 해왔던 생각이 불현듯 난다. 특히 옛날에는 끼니가 없어서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는 말을 자주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춘궁기 때 소나무 속껍질을 벗긴 송기로 떡을 해서 끼니를 해결 했다고 한다. 나는 궁금해서 속껍질을 베껴 질겅질겅 씹어 보았다. 쓴맛도 있고 솔 향 입안으로 퍼지며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