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엑수시아"(exousia) 혹은 “스토이케이온”(stoicheion)이라고 표현된 이 땅의 권세들은 바로 구조들의 힘과 관련된다고 해석될 수 있다. 권세들은 “영적인 존재들과 실존의 구조들 간의 가장 직접적인 연결고리”로서, “만물을 구성하는 주요한 덩어리들(벧후 3:10)”로 이해된다. 이는 “계명들, 교리들, 인간의 전통들을 통해서 인간의 실존에 영향을 미치는 권세들(골 2:20-22)”이다. 사실 이 권세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창조한 선한 것(골 1:16)이다. 그것들이 지금은 우리를 대적하고 있다 하더라도(골 2:8), 그리스도는 이 권세를 이기셨고 우리는 이 권세를 더 이상 섬길 필요가 없다(골 2:15-16). 모든 피조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요더는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 그런 권세들(the powers)을 이긴 것이기에 교회는 바로 그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월터 윙크(Walter Wink)는 만일 교회가 이 “권세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거나 “권세들의 말을 들어주기를” 시도한다면 교회는 “거룩한 사명”을 다 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구조들도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으며, “권세들도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대상들”이다. 권세들이 구속의 대상이라는 말은 교회가 어디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가를 시사한다. 이는 사회복음(social gospel)의 중요한 신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사회복음은 복음 선포의 대상이 인간을 넘어서서 인간이 속해있는 이 사회의 구조와 권세들에까지 미쳐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경은 천사나 사탄/귀신이 인격적 실재들로서 특별한 사역을 수행하고 있음을 증언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이 세상에서 어떤 구조나 형태로 표출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는 그들의 현현과 활동에 대한 이해수준이 빈약했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그들의 활동범위를 넓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종교적 경험이 확대됨으로써 그 현상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넓어진 편이다. 이제는 천사와 사탄의 인격적 활동과 어떤 자연현상이나 사회조직의 권력 등의 의미를 맹목적으로 동일시하지도 않고, 그 연관성에 대해 배타적이지도 않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천사가 인간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신자들을 위해 보조적 역할을 하고, 반대로 사탄/귀신이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악한 역할을 하며 신자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천사와 사탄, 그리고 그에 대한 현대적 해석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통해 재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천사의 역할은 무엇이며, 천사에 대한 이해가 신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타락한 천사를 귀신으로 보는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 혹은 귀신을 불신자의 사후영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 신앙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가? 사실 천사와 사탄/귀신의 문제는 현대인에게 매우 부자연스럽고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문제는 현대문화 속에서 각종 매체를 통해 그 논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때로는 그것들이 부적절한 신앙현상으로 나타나서 기독교신앙을 위협하기도 하고 왜곡시키기도 하기 때문에 여전히 중요한 현안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천사와 사탄의 실존적 이해를 사회의 구조와 조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서 천사와 사탄의 존재는 어떤 점에서 실존적 구조로써 설명될 수 있는가? 실존적 구조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 실존적 구조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등과 같은 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28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