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광장이란 까페에서 흥미있게 보고 소개합니다.
여기 까페 뿐 아니라 키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닉이 키튼인 분도 있고 유라님도 이전 글에서 싫어하지 않는 인상)
그 소재나 배경은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이 갑니다.
이처럼 재미있는 만화가 또 보고 싶네요.[신바드]
마스터 키튼(MASTER KEATON) 1∼18 (성인만화 한국어판)
STORY by KATSUSHIKA HOKUSEI
CARTOON by URASAWA NAOKI
(First published in JAPAN IN 1989∼1994 by Shogakukan Inc., Tokyo.)
대원씨아이(주), 2001, (1996∼2000, 초판 발행)
마스터 키튼
◎ 이름; 다이치 히라가 키튼.
◎ 저서 및 논문; 「에게 문명에 있어서의 투창의 문양」
「서구 문명 도나우 기원론」
그밖에 쿠스키 고분 출토 유리 단추 해석에 관한 글이 있음.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그리고 특히 매니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키튼이라는 인물은 참으로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흥미를 자아내게 하는 캐릭터이다. 항상 트렌치 코트에 담배를 물고 또는 신상 자료를 가지고 일본과 영국을 누비면서 뭔가 사건을 해결한다. 직업은 고고학 강사이며 부업으로 보험조사원 일을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벌이는 보험 조사원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지도 교수로 나오는 유리 스코트 교수는 키튼에 앞서 도나우(=다뉴브) 강 문명설을 처음 밝힌 사람이며 학계에서 외면당하는 인물이다. 이런 면에서 키튼은 근래에 보기 드문, 아주 희귀한 재야 고고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스터 키튼, SAS 시절에 프로페서라고 불리는 교관으로부터 독특한 방법을 구사하지만 전투의 프로로서는 너무 허술하다는 평가와 동시에 마스터(달인)는 될 수 있겠다는 인정을 받고 직업 군인인 장교로는 나가지 않은 남자. 이 마스터라는 칭호는 말 그대로 달인이라는 뜻도 있지만 동시에 석사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MAster of Degree를 석사 작위라는 칭호로 부른다. 줄여서 MA라고도 한다. 만화에서는 키튼의 조카인 에드워드의 입을 빌어 그가 옥스퍼드 대학교 베리얼 칼리지(Balliol College)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음을 밝히고 있으며 곳곳에서 그가 뛰어난 고고학자라는 점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 관한 이야기는 기와 문양에 관한 것(키튼은 국제 문양인 로터스(연꽃)라고 주장했고 교수는 쿠다라(百濟) 기와 문양이라고 주장함)과 서울 올림픽이 전부이며 더 이상 소재로 나오지는 않는다.
키튼이 훌륭한 고고학자로 나오기는 하지만 그가 썼다고 하는 논문 제목들은(그래봤자 두어 개 정도지만) 상당히 기초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에게 문명에 있어서의 투창의 문양」은 제목만 가지고 본다면 형식학적 방법(typological method)을 쓴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러한 방법들은 1960년대 이전에 쓰이던 것들이다. 곧 다시 말하면 그것은 고전 고고학에서 주로 사용하던 방식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마스터 키튼의 주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이며 이 시기에는 유럽에서는 이미 성분 분석이라든가 절대 연대 결정법 같은 과학적인 고고학 방법론이 활발하게 쓰이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고고학 사조에서는 후기 과정 고고학과 인지 과정 고고학의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것은 스토리 작가가 참고한 것들이 아마도 최신의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또한 칼럼지기가 이번 호 칼럼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서구 문명 도나우 기원론」(도나우=다뉴브; 칼럼지기 註)은 영국의 유명한 고고학자 중의 한 명인 고든 차일드(Gordon Childe)라는 유명한 고고학자가 1929년에 발표한 『선사시대의 다뉴브(Danube in Prehistory)』라는 책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고든 차일드는 우리가 잘 아는 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제창한 사람이다.
차일드는 이 책에서 서구 문명, 특히 유럽 문명에 있어 그 기원은 근동(Near East)에서 발생한 문명의 영향이며 유럽의 농경 문화가 기원전 5,000년경에 동유럽의 다뉴브 강 유역에서 발생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이 가설은 발표 당시 여러 학자들에게 맹렬한 공격을 받았으며 발굴이 진행된 이후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물론 차일드의 가설에서 핵심은 문명의 전파가 동쪽에서 점차 서쪽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농경도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 와서는, 부분적으로는 타당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시대적 상황에서 나오게 된 차일드의 가설은 이후의 고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마스터 키튼에도 나오지만 다뉴브 강 유역의 문명은 목조로 된 것들이 대부분이며 이것은 브라이언 페이건 교수가 쓴『 World Prehitory-A Brief Introduction; 인류의 선사시대』에 소개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p.p 197∼198)
(글 생략) 한편 다뉴비아인들은 긴 직사각형의 이엉으로 만든 집안에서 여러 가구가 함께 가축을 기르며 살았다. 그들이 기르는 소와 염소·양 등은 정원에 있는 식물 줄기나 숲속의 초목들을 뜯어 먹었는데, 이 때문에 자연 경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다뉴비아 문화(Danubian culture)는 중부와 서부 유럽에 걸쳐 널리 퍼진 수많은 지역적 농경 문화의 모태가 되었다.
다뉴비아 인들이 중부 유럽에서 경작을 하던 같은 시기에 새로운 농업 경제가 지중해의 해안가를 따라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의 광범위한 물물 교환 조직망은 바다조개, 흑요석, 이국적인 돌과 나중에는 구리 등을 지중해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운반하였으며, 이에 따라 농경 기술과 독특한 토기 양식이 지중해 주변 사람들에게도 소개되었다. 기원전 4,000년경까지는 농경과 소가 서부 유럽의 끝인 영국 제도와 스칸디나비아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다뉴브 강 유역 문명설이 유럽 최초의 문명은 아니지만 그 지역에서는 최초로 농경문화를 꽃피운 것이라는 것은 학계에 널리 받아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을 보더라도 그것이 어떠한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사실을 밑바탕으로 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아무리 황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근저에는 바탕이 되는 무언가가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고고학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학문이 주는 매력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1. 브라이언 페이건 著/崔夢龍 譯, 『인류의 선사시대』, 乙酉文化社, 1997.
2. 崔夢龍·崔盛洛 編, 『인물로 본 고고학사』, 도서출판 한울, 1997.
첫댓글 저두 매우 즐겁게 읽은 만화죠. 몇몇 폐이지는 복사해서 부적처럼 갖고다녔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