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스위트 홈」 최진영(1981 ~ )
기억 속 최초의 집에는 우물이 있었다. 평소에는 나무판자로 우물 위를 덮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판자를 열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렸다. 마당은 흙바닥, 지붕은 검은 기와, 대문은 없었고 외양간인지 창고인지 알 수 없는 작은 별채를 사이에 두고 마당과 골목을 구분했다. 환하고 건조한 날씨가 오래 지속되는 계절에도 우물의 돌덩이에는 초록색 이끼가 피어 있었다. 그리고 노란 민들레, 댓돌과 흙바닥 틈새에, 벽과 벽의 모서리에 뿌리를 내렸던 별 같은 꽃. 비가 그친 어느 날에는 툇마루에 청개구리가 나타났다. 당시 두어 살이던 내 손바닥보다 작고 깨끗해 보이던 연두색 생명체. 나는 손을 뻗었고 청개구리는 폴짝폴짝 뛰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울었다. 왜 울었을까? 그때 내가 운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나조차 잊어서 영영 모를 것이 되었다. 그런 일들에 대해 요즘 자주 생각한다. 분명 일어났으나 아무도 모르는 일들.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무수한 순간들. 그런 것들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한 사람의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들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없을 수만은 없고.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송이 하나.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렇지만 나는 청개구리를 기억한다. 이유를 망각한 나의 울은을 기억한다. 아주 많은 것을 잊으며 살아가는 중에도 고집스럽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왜 남아 있는지 나조차 알 수 없는 기억들. 나의 선택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나를 선택하여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청개구리가 나를 선택했다. (13~14쪽) ***** 나는 다섯 살 무렵에 그림책을 읽었다. “불이 나면 달려가는 불자동차입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간호원입니다.” 내년이면 아흔 살이 되는 어머니의 기억이 내게 들려주었다. 그때 나는, 어떤 자동차도 본 적이 없었고, 병원도 구경하지 못했다. 초가집 호롱불 아래에서 어른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을 배우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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