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지낸 첫 주, 부활의 기쁨을 모두에게 전하듯이 온갖 봄꽃이 피어 세상이 환합니다. 예전에는 봄이면 복수초 매화 산수유 민들레 제비꽃들을 시작으로 개나리 진달래 백목련 벚꽃 라일락 등이 차례로 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거의 동시에 피어 봄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느낌을 받습니다. 차근차근 차례차례 봄꽃 구경을 다닐 수 있었던 것 같았는데 이제는 온 천지가 한꺼번에 꽃으로 가득하니 아름답기도 하지만 정신이 없기도 합니다.
꽃구경 다니기만도 바쁜 이 시기에 선거까지 치르느라 몸도 마음도 바쁩니다. 후보들이 저마다 자기가 제일 일 잘할 사람이니 꼭 자기를 뽑아달라고 합니다. 예쁜 꽃들 구경은 쉬운데 출마자들 중에서 진짜 국민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꽃들은 있는 그대로 보면 됩니다. 다른 꽃들보다 자기가 더 예쁘다고, 더 잘났다고 자랑하지도 않고, 더 화려해서 더 커서 자기가 더 잘 보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대로 순리대로 자라고 꽃피는 것을 우리는 그저 보고 즐기면 되니 힘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거는 지역구민을 위하여, 나아가 전 국민을 위하여 일을 할 사람을 선택하여야 하는데, 그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마태복음에 있는 이야기 하나를 찾아 읽어 보았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해라’ 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맏아들은 대답하기를 ‘싫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 그는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대답하기를 ‘예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서는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둘 가운데서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 예수께서 이렇게 물으시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맏아들입니다.”(마 21:28-31상)
‘두 아들의 비유’라고 소제목이 붙은 위의 말씀은 예수의 권위를 논란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마 21: 23-27)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대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다가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시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이 말속에는 자신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런 일을 하는 예수에 대한 힐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예수께서 많은 이들의 병을 고쳐 주시고, 이적을 행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직접 본 이들과 그들의 증언을 들은 많은 이들이 모여들어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하는 질문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물어보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일을 하는지 말하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늘에서냐? 사람에게서냐?”
예수의 질문을 받은 이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였습니다.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째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요, 또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자니 우리가 무섭소. 그들은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묻습니다.
“두 아들 중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느냐?” 그들이 대답하였습니다. “맏아들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대답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묻지 않으셨습니다.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보아도 아는 대답입니다.
포도원으로 일하러 가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두 아들은 다른 대답을 하였습니다. 맏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가 뉘우치고 포도원으로 일하러 갔습니다. 작은아들은 일하러 가겠다고 대답하였으나 가지 않았습니다. 판단의 기준은 아버지의 뜻을 누가 행하였는가에 있습니다. 어떤 대답을 어떻게 하였는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대답을 잘하고 못하고 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 뜻을 행함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건 누구나 다 아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들의 삶의 자리로 옮겨 봅시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포도원으로 일하러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시고 아버지의 뜻을 행한 이가 누군가 물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선거판에서는 유권자들이 입후보자들에게 일하러 가겠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나서서 일하러 가겠다고 자원합니다. 입후보자 자신이 스스로를 알리고, 유권자들에게 베풀 공약을 작성하고, 그것으로 유권자들이 얻을 혜택을 선전하고, 자신만이 그 일에 합당한 사람이니 자기를 선택해 달라고 읍소합니다. 게다가 자신들이 속한 정당이 그 일들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정당에도 한 표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유권자들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포도원의 일을 하는 것이었던 것처럼, 국민들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일하러 가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 선거판에서는 국민들, 유권자들의 뜻이 무엇인지 모른 채 자기들의 뜻, 정치인들의 뜻, 더 나아가 자신들이 얻을 이익에 맞추어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후보들에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지만 제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정치인들이 입으로는 국민을 위해, 그러나 실제는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일 해왔기 때문에 달리 보이지를 않습니다.
확실한 아버지의 뜻,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고, 포로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을 풀어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포도원의 일을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하는 맏아들.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으나 뉘우치고 일하러 간 그가 아버지의 진정한 맏아들임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거판에서 이런 아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일하러 가겠다고 말 했으나 행함에 옮기지 않은 둘째 아들과 같은 이들이 더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여자와 어린이들,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의 의지처가 되어주는 일,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생색나고, 성과가 커 보이고, 다음의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발판이 되는 일에 관심을 쏟는 이들이 몰려드는 정치판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우리의 뜻을 행하는 사람인가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아마 이번에도 아버지의 뜻, 유권자들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아닌,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뛰는 이들을 선택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맙시다. 아버지의 뜻,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를 소망하신 아버지의 뜻이 곧 우리의 뜻임을 천명하고 그런 일을 할 사람이 누구인가 찾아냅시다. 목소리를 내어 우리들의 뜻을 알리고, 두 눈 크게 뜨고 그 뜻을 위해 일하는 일을 찾아내고, 자기 뜻을 위해서만 일하는 이들을 발 못 붙이게 합시다.
여러분들이 우리교회이야기를 받으실 때에는 선거가 모두 끝나고 일할 사람들이 결정되었을 것입니다. 한 회기 동안 우리의 할 일은 누가 아버지의 뜻, 국민의 뜻을 행하고 있는가? 눈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아 우리의 뜻을 위해 일하는 이를 찾아내는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