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太白山 1,567m)
◈ 위 치 : 강원 태백시와 경북 봉화군 경계
◈ 일 시 : 2017. 02. 11. 7시. 토요일, 날씨: 맑음, 바람: 강함, 기온: -12℃
◈ 참 석 자 : 동문산악회원 20명과 동행
◈ 등반코스 : 유일사 주차장 ► 유일사 ► 장군봉 ► 천제단 정상 ► 부쇠봉
► 문수봉 ► 소문수봉 ► 당골 ► 버스 주차장
◈ 총 9.5 km, 소요시간 4시간 30분
☞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과 길 위에 쌓여 있는 하얀 눈으로 인해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다. 천년의 고독을 숨긴 채로 속내를 다 드러내 놓고 서있는 주목이 눈밭에 들러 쳐 있다. 한 줌 바람이 살살 흔들어 대는 통에 떡가루 같은 눈이 흩날려 얼굴을 때렸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 숨이 헉헉거렸으나 태백산 최고봉인 장군봉의 자태는 자못 의젓해 보였다. 멀리 함백산 자락이 친근하게 눈가에 달려들었다.
우리가 태백산 산행을 위해 출발한 시간은 7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치악산 시루봉 아래 실루엣이 서서히 드러나자 춥다는 생각에 서둘러 버스는 달아났다. 입춘을 지났지만 며칠째 영하 10도의 강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했다. 모처럼 친구 영구가 동행을 하여 함께 한 동문 대원들의 환영을 받았다. 낯익은 선후배들과의 인사를 주고받으며 버스는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잘도 내뺐다.
38번 국도를 타고 태백 시내를 돌아 상동 쪽으로 하여 유일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모두들 눈길에 대비하여 아이젠과 스패츠를 차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나는 스틱만 가지고 뒤를 따르기로 하여 9시 40분경 낙엽송 군락지의 들머리로 들어섰다. ‘천제단’까지는 4km 거리다. 역시 눈길이 미끄러웠다. 조경준(27회) 등반대장이 선두에 서고 김부연(34회) 사무국장이 후미를 책임지기로 했다. 바람이 간간히 불어왔으나 견딜 만 했다. 햇살이 머리위로 따라왔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서는 초입은 부산스럽고 시끄러웠다.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여 있어 한겨울 겨울 산행의 묘미를 찾으려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추위에 아랑곳없이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탁발을 하고 있다. 태백사(太白寺)를 지나며 온기가 감돌아서인지 하나둘씩 겉옷을 벗고 있다. 나는 미리 내피를 벗었기에 구애 받지 않고 앞장서 나갔다. 임도 같은 너른 길이 계속되었다. 북향이라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쌓여 발길을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뽀드득’ 소리에 귀가 간지러웠다.
한 시간쯤 지나 유일사(唯一寺) 삼거리 능선에 도착했다. 오른편 아래 유일사가 있고 ‘유일사 유래’ 안내판이 보였다. 유래에 따르면 1935년경 비구니 순일로부터 법륜스님을 거쳐 지금의 불사를 이루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찰로 물건을 나르는 곤돌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태백산은 지난해 8월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어 등산로가 새롭게 단장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천제단’까지는 아직도 1.7km가 남아 있다.
점차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길은 좁아지고 앞뒤 간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백두대간 길이라서인지 발걸음은 좀체 더디기만 했다. 눈길이 미끄럽기도 했으며 오고가는 사람들로 인해 더욱 그랬다. 눈밭을 굳건히 지키고 서있는 주목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역시 태백산의 묘미는 이런 주목 군락지를 보는 데 있다며 웃음을 던졌다. 점점 하늘이 맑게 보이고 햇빛이 눈가로 기어들었다. 천년의 세월을 이겨 내느라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주목과 고사목 아래에서 너나없이 달려들어 사진을 남기느라 두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훈훈한 인심이 나풀거리며 돌아다녔다.
태백산의 설경은 장관이다. 흰 눈을 덮어 쓰고 푸른 자태를 간직하고 있는 주목과 끝없이 펼쳐지는 눈밭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어 더욱 그랬다. 이런 하나의 장면을 머릿속에 담기 위해 우리는 힘들게 이곳에 올라오는 이유가 되는지도 몰랐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덩치 큰 녀석들이 다가오며 인사를 했다. 김영진(33회) 후배가 동기들과 함께 왔다며 웃음을 짓고 김부연 국장이 다음 동문산악회 산행에 꼭 나오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11시가 넘은 시간에 장군봉에 올랐다. 작은 제단이 보이고 자연석의 표지석에는 ‘태백산 최고봉 장군봉’이 음각돼 있다. 다행히 바람은 강하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볼 따귀가 날아 갈 정도의 강풍이 불건만 오늘은 맑은 하늘을 본받아서인지 약하게 코끝을 지나가고 있다. 해발 1,567m의 정상은 사방이 훤하게 잘 보여 마음까지 여유로웠다. 영봉(1,560m)까지의 능선 길은 작은 나무들이 눈을 밟고 서있어 마치 병정들의 사열하는 분위기였다. 강한 바람이 ‘휙’하니 이마를 스쳤다.
‘천제단’에 올라 ‘한배검’ 앞에 섰다. ‘한밝뫼’라는 순 우리말의 태백산은 만년의 시간을 이겨내며 전설이 되어 남아있다. 천지인의 후손으로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국운의 번영을 기원하는 묵념을 했다. 창공의 별이 그 순간 번쩍거리며 다가왔다.
정상의 ‘태백산’ 표지석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줄을 서야 했고 우리는 그 앞에서 단체 사진을 남기고 바로 하산키로 했다. 벌써 12시를 향해 가고 있어 부쇠봉(1,546m)을 바라보며 내려섰다. 멀리 문수봉 돌탑이 손짓을 했다. 선두의 조경준 대원이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이 있다하여 흥겨운 마음으로 서둘렀다. 내려가는 눈길은 아이젠 없이 걷는 나에게 미련함을 남겨 주었고 아주 조심해서 가야만 했다.
펑퍼짐한 주목나무가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고 상을 펼쳤다. 삼삼오오 모여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점심상은 매번 그렇듯이 배를 즐겁게 했다. 추운 날씨 탓에 손이 시려 장갑을 낀 채로 밥을 먹었다. 김 회장이 술잔을 건네주며 ‘알파인 스타일’로 하자하여 한 모금을 들이키니 와! 그 맛이 달랐다. 이래서 정상주의 묘한 맛이 살아있는가 했다. 김부연 국장이 과메기를 꺼내 놓자 이창원(17회) 교장이 환호성을 지르며 다가왔다. 산행의 극치가 여기에 있다며 모두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찬란한 햇빛 한줌이 술잔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12시 20분 문수봉을 향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때 나도 아이젠을 등산화에 장착시키고 호기를 부렸다. 한결 수월하게 발이 도망 다녔다. 속이 텅 빈 주목의 끈질김과 고사목 뒤로 살아있는 싱싱함이 생명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어 자연의 신비함에 경외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겨 났다. 헬기장을 지나 문수봉까지는 1.5km다.
오늘 하루 원 없이 눈을 밟아본다며 기억속의 나를 찾아보았다. 내리막이 이어지고 또다시 오르막이다. 간간히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어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잔설을 뒤집어 쓴 채 봄의 기운이 숨어 있었다. 오후 1시경 우리는 문수봉(1,517m) 정상에 있는 열자 정도의 작은 돌탑을 볼 수 있었다. 좁은 정상부근은 바위 천지라 어렵게 기념사진을 남겼다. 전에도 보았던 사각의 표지목이 덩그러니 서있다. 이정표에는 당골광장 3.5km, 소문수봉 0.5km, 천제단 2.6km 표시가 보였다. 고즈넉하게 자리한 ‘천제단’과 망경사를 바라보고 하산을 이어갔다.
사스레나무 고목의 기이한 형상에 놀라고 계속 주목의 군락지가 나타나 이곳이 태백산임을 입증하고 있다. 점점 가파른 내리막이다. 오른편으로 매어 놓은 밧줄을 잡고 천천히 내려섰다. 어디선가 싱그러운 새소리가 귀에 익었다. 계곡이 나타나고 다리가 보였다. 낙엽송 군락지가 이어지고 있어 날머리가 가까워 옴을 알았다. 뒤따르던 곽호석(12회) 선배 부인의 푸념이 장단을 맞췄다.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청아하게 들렸다.
2시경 단군성전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여 무거운 아이젠을 벗어 던졌다. 한층 날아 갈 것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미 끝난 눈꽃축제장을 벗어났다. 당골주차장을 찾아 석탄박물관을 지났다. 길옆으로 버스와 차들이 주치되어 있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소도3교를 건너 어렵지 않게 버스를 찾았다.
마땅한 뒤풀이 장소가 없다하여 버스 안에서 미리 준비해 온 안주로 주석을 만들었다. 어제 김 회장이 전화를 하여 우리 가게의 통닭을 주문했고 나는 아침에 그것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아내가 “당신이 내는 걸로 하라”는 말에 사기충천하여 희사를 하였다. 김 회장이 또 그것을 공지하여 괜히 자랑거리만 남겼다. 아무쪼록 식은 통닭이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 하다며 자꾸 손이 갔다. 소맥이 진짜 죽여준다는 조 대장과 김 국장의 너스레와 함께 건배의 잔을 치켜들었다.
오후의 넉넉한 해님이 한밝뫼 정기를 담아 우리들 가슴과 술잔에 녹아들었다.
첫댓글 함께 못한 산행이지만 산행기를 읽으며 오랫만에 태백산에 다녀옴니다.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