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관과인론(係關果因論) 한 낱:
이른바 “처음(태초; 창세; 시작)은 미미했으되 끝(최후; 말세; 종말)은 창대하리”라고 유다교(Judaism; 유대교; 유태교) 경전들, 히브리 경전들, 기독교 구약경전들 중 어느 한 편(창세기)에 글쓰였거나 말되었으리라.
그러나, 그런데, 실제로 여태껏 역사에서도 현실에서도 “종말(최후; 끝)”은 창대하지 않든지 못했고 오직 “시작(처음; 창세)”만 창대해졌다!
그러니까 종말(말세; 끝)은 미미한 시작(창세; 처음)의 극대점(極大點)이 아니라 오히려 극소점(極小點)이었다!
그러므로 언제나, 미미한 시작(처음; 창세)만, 애오라지 미미한 태초·시초(始初)·시조(始祖)만, 창대해질 따름이다!
이런 인과관계의 역리(逆理; 파라독스; 패러독스; paradox)나 계관과인론(係關果因論)과 관련하여 미적미적하게나마 참조될 만한 관계들은 다음과 같다.
1. 〈붓다의 식중독 반살기(半殺己; 반살아; 半殺我; 반자결)와 춘다 캄마라풋타(Cunda Kammaraputta)의 관계〉와 〈예수의 십자가 반살기(반살아; 반자결)와 유다(Judas)의 관계〉의 관계.
2. 〈붓다와 그의 대제자(大弟子; 수제자; 首弟者) 마하가섭의 관계〉와 〈예수와 그의 대사도(大使徒) 바울의 관계〉의 관계.
3. 〈붓다와 여인 수자타(Sujata)의 관계〉와 〈예수와 여인 막달라 마리아(Magdala Maria; Mary Magdalene)의 관계〉의 관계.
이 관계들 중 하나를 형성한 마하가섭(摩訶迦葉; 마하카사파; Mahakassapa; 가섭; 카샤파; Kasyapa)은 붓다의 법통을 잇는 대제자로서 낙점되기 전까지 조로아스터교(Zoroaster敎; 차라투스트라교; Zarathustra敎; 배화교; 拜火敎) 수도승이었다.
바울(Paul; 파울로스; Paulos; 파울루스; Paulus; 사울로스 타르세우스; Saulos Tarseus; 타르수스의 사울; Saul of Tarsus, 5~65)은 유다족(Judah族; 유다인; Judah人; 유대인; Judae人; 유태인; 猶太人)으로서 유다교(Judah敎; 유대교; Judae敎; Judaism; 유태교; 猶太敎)의 독실한 신자였지만, 다마스코스(Damascos; 다마스쿠스; Damascus)로 가는 길에 예수의 환상을 보고 실신했다가 깨어나 개심하여 유다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창시했다.
(2014.08.26.18:34.)
아래왼쪽 인물상(人物像)은 인디아(India; 인도; 印度; 천축; 天竺) 북부의 간다라(Gandhara) 지방에서 2~3세기에 제작된 점토좌불상(粘土座佛像) 〈단식고행하는 싯다르타〉이고, 둘쨋그림은 신원미상 화가의 1756년작 〈나무밑에 좌정하여 명상하는 현자 가섭(The Sage Kashyapa Meditating under a Tree)〉이며, 셋째그림은 이탈리아 화가의 필립피노 립피(Filippino Lippi, 1457~1504)의 1500년작 〈막달라 마리아(Maria Maddalena)〉이고, 맨오른쪽그림은 에스파냐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호야; Francisco Goya, 1746~1828)의 1780년작 〈십자가에 못질되어 매달린 예수(Christo Crucificado)〉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