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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원화도연맹 사단법인 갱신 후 처음으로 긴급 이사회의(2월 26일)를 가졌습니다. 안건은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의 원화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에 대한 연맹의 입장을 결정(정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선문대학교의 무도학과와 청심신학대학원에서의 원화도가 되어 진 상황이 너무나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어 원화도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의 시간을 갖고자 저의 입장을 글로 전하고자 합니다.
저는 1989년 조익현관장님을 모시고 필리핀(21일 수련)과 태국(40일 수련)에서 통일무도 유단자들에게 원화도지도자양성수련을 한 바 있습니다. 그 때에 많은 해외의 사람들이 원화도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함을 보고, 한국에 돌아가면 원화도와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를 배출하여 많이 해외로 진출하면 좋겠다는 뜻(생각)을 가졌습니다.
1990년 3월에 저는 선문대학교(당시 성화신학교)에서 원화도를 지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통일신학과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원화도지도자를 양성하여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1998년도는 선문대학교에 무도학과가 개설(기공전공, 태권도전공, 유도전공, 검도전공, 전통무예전공, 원화도전공)되어 30여명의 입학생을 맞이하였습니다. 시설도 교수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발을 하게 됩니다. 이는 설립자이신 문선명선생님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시의 총장이신 윤세원박사님의 지시로 무도학과의 개설과정에 참여하여 제 생각을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2008년도는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에 문선명총재님께서 김진춘총장에게 원화도를 교기(校技)화하여 세계의 원화도가 되도록 하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저는 그 당시 김총장님께 한봉기회장님을 교수로 초빙하여 원화도를 하시면 좋겠다는 뜻을 강하게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선문대학교의 무도학과는 1999년 전공의 구분 없이 신입생을 모집하여 1, 2학년 때에는 무도학과로서 무도의 학문분야와 전공무도 실기분야, 공통과목으로 원화도를 수련할 수 있도록 하고자 무척 노력을 하였습니다. 3, 4학년 때에는 각각의 전공과목(태권류, 유도류, 합기류, 검술류 등)을 중심으로 수련을 해서 그 분야에 탁월한 실력(실기능력)을 갖추어 나가게 하면 좋겠다는 뜻(생각)을 당시의 자연대 학장님께 분명하게 전달하였습니다.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의 원화도는 2009년도에 시작을 하지만 그 출발은 제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사단법인세계원화도연맹과의 협의도 없이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에게 원화도를 지도하게 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찌되었든 1학기는 아무런 조건(대우)도 없이 한봉기회장님이 원화도지도를 하셨고, 박사과정인 스미노 사또시군이 보조사범 역할을 하였습니다.
선문대학교의 무도학과는 1999년 이천진학장의 주도로 원화도 필수과목을 없애고, 원화도전공자(4명)도 다른 전공으로 바꾸게 하면서 “원화도는 아주 우수한(가장 뛰어난)무도이기 때문에 무도학과에서는 3, 4학년 때 원화도를 집중적으로 교육하겠다”는 뜻을 보였습니다.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는 2009년 2학기부터 한봉기회장님의 말씀(명)으로 제가 가르치게 됩니다. 학점이수 과목이 아닌 권장(패스?)과목으로 일주일에 2시간씩 수련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의 특성과 현실을 감안하여 호신요가(아침)와 원화도(저녁)를 수련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참부모님언어교육원에서는 발음ㆍ발성을 통한 원화도수련을 계획하였고, 청심국제 중ㆍ고등학교에서는 영어로 하는 원화도수업(아이스티스를 통해)을, 설악교회의 빈 창고를 원화도 도장으로 만들어 성화학생들이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선문대학교에서 저는 1990년도 조교에서 1994년 계약직원으로, 1998년 IMF때에는 직원에서 시간강사로, 1999년도에 무도학과에서 원화도 과목이 없어지게 됨으로 선문대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저는 김진춘총장님의 말씀처럼 “참부모님께서 신학대학원대학교 학생들은 1년을 연장하더라도 원화도유단자가 되어 졸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심정무도학(3학점)과 무도연구(3학점) 과목개설을 요청한 바 있으며, 무도수련의 기본 중에 하나인 도복을 입고 수련하는 전통을 세우기 위해 선배가 후배의 도복을 후원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노력도 하였습니다. 2009년도 2학기 수업이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현재의 선문대학교에는 무도학과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도학과가 아닌 무도경찰경호학과와 무도교육전공학과로 명칭이 변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만약에 1998년도에 원화도를 무도학과의 중심으로 세워주었더라면 선문대학교의 무도학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한 가지는 원화도가 많은(엄청난) 발전을 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현재의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는 원화도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0년도에는 아이스티스(석사과정)가 지도했고, 2011년도에는 전기화이사님가 지도하는 상황입니다. 역사에 가정은 필요 없다지만 만약에 2008년도에 한봉기회장님을 교수로 초빙했더라면 오늘날 청심신학대학원은 어떻게 변해 있었을까요? 만약에 2009년도에 제가 건의한 입학자격으로 원화도유단자를 명시하고, 유단자가 아닌 경우에는 원화도수업과 수련을 통하여 유단자가 될 수 있는 정책을 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한 가지는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의 교기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선문대학교와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원화도는 교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저를 보면 “이제 (원화도)그만하고 다른 일을 찾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기회를 주었는데 당신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기도 합니다. 선문대학교 무도학과에서도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도 분명히 저에게 원화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건 사실입니다. 기회를 주었는데 기회를 살리지 못하지 않았느냐! 분명히 저에게 기회는 주어졌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선문대학교의 무도학과와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기회를 받은(잡은) 적이 없습니다. 시간강사인 제가 선문대학교 무도학과에서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학점도 줄 수 없는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원화도를 지도하는 사범의 입장인 제가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아직도 선문대학교의 무도학과와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원화도(무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게 주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날개를 잃은 새는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총알 없는 총으로는 사냥을 할 수 없습니다.
수영복을 입지 않으면 수영장에서 수영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활이라도 화살이 없으며 목표물을 맞출 수 없습니다.
바다가 그리워지는군요.
산이 부르는군요.
가족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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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5(서기 2012)년 3월 8일
체육학박사 이 현 희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