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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표준어와 사투리는 공존해야, 정경시사포커스, 2024.01.08
https://www.yjb0802.com/news/articleView.html?idxno=38007
심의섭(명지대 명예교수)
사투리를 살려야
표준어는 국가에서 정하고, 사투리는 어느 지역이나 지방에서만 쓰이는 말이다. 사투리의 어원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서투르다'에서 ‘서투른+이 => 서툴이 => 서투리 => 사투리’로 변했다는 설이다. 둘은 사투리는 ‘사’와 ‘투리’의 합성어다. ‘투리’는 넋두리의 ‘두리’가 연상되는 것이고, ‘사’는 흙, 땅, 시골(土, 地, 鄕)의 뜻이 있으므로 사투리를 시골말, 마을 말(鄕語, 里語, 土語)이라고 보는 설이다. 셋은 필자의 생각인데 사투리와 토리와의 연관성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말에 사투리가 있듯 우리의 민요에도 지역별 특징인 ‘토리’가 있다. 토리는 지방에 따라 구별되는 노래의 방식인데 크게 경토리(경기민요), 수심가토리(서도민요), 육자배기토리(남도민요), 메나리토리(동부민요)가 있다. 넷도 필자의 생각이다. 고대로 가면 한국어와 일본어는 비슷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일본어를 보면 고향(예전에 살던 고장, 고적지)을 후루사토(ふるさと, 古里, 故里, 故郷)라고 한다. 여기에서 ‘사토’는 고향을 뜻하는데 사투리의 ‘사투’와 연결시켜 보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까?
표준어의 정의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이라고 했는데, '교양'과 '원칙'이란, 단어는 바로 서울의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서울 방언이 아닌 표준어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말은 표준어는 반드시 서울 사투리도 아니고, 서울말도 아니란 것이다. 표준어와 현재 서울 지역에서 쓰이는 말씨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 말은 ‘서울 사투리’ 따위란 없다. 우리가 쓰는 서울말이 곧 표준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표준어를 쓴다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착각이 있다. 하나는 서울, 경기지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표준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억양이 특이한 지방출신으로 서울에 오래 산 사람들이 표준어를 사용함에도 억양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투리를 사용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립국어원에서 한국어의 표준어를 규정한다. 그런데 시대적 차원에서 ‘현대’를 규정하고 있는데 표준어와 사투리의 어원이나 새로운 용어에 대한 우리말의 정확한 표현은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나, 만주나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말투에서 가볍게 찾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한국말은 그들의 선조가 고국을 떠날 때의 말을 이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연변에서는 ‘넓은’, ‘졻은’이란 용어를 쓰고, 와이셔츠를 ‘양적삼’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고, 중앙아시아 동포들이 1937년 강제이주 당시 함경도 말투를 보존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표준어가 지나온 길
사투리와 대조되는 것이 표준어이다. 표준어는 여러 방언(사투리)을 정치적 중심지인 서울과 경기도 일대의 말을 중심으로 하나의 표준과 규범을 정하여 통일된 국어생활을 이끌 목적으로 만든 일종의 인위적 국어이다. 북한에서는 우리의 표준어와 같은 의미의 ‘문화어’는 평양말을 중심으로 성립되어 있다. 한국말을 지키고자 한 '조선어학회'는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만들어 표준말을 정의하였다.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
(한글맞춤법통일안, 총론 2항, 조선어학회, 1933년 10월)
이 표준말의 정의를 그대로 사용하다가 1988년에 ‘표준어 규정’이 생겼다. 이때부터 ‘표준말’이 ‘표준어’로 바뀌었고 내용에서도 시기와 사회적 계층도 개정되었다.
“표준어는 교양인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표준어 사정 원칙 총칙, 1988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어는 바로 이 규정에 따른 것이다. 대한민국 표준어 규정의 기원인 조선어학회에서 만든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서는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로 되어 있었는데, 1988년에 표준어 규정을 정비하면서 표준말을 표준어로, 중류 사회를 교양 있는 사람들로, 현재를 현대로 고친 것이다. 표준어 규정에서 위와 같이 표준어를 정의하고 있고,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 및 교과용 도서를 표준어 규정에 맞게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표준어 규정의 연대기는 아래와 같다.
한국어의 표준어가 처음 정해진 시기는 일제강점기이다. 한국어의 공적 표준에 대한 최초의 명문화된 규정은 일제 강점기인 1912년 4월에 공포한 ‘통학교용 언문철자법’에 ‘경성어를 표준으로 함’이라고 한 규정이다. 1930년대에 조선어학회는 조선어(한국어) 보급을 위해서는 표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시하였는데, 이때의 표준어 규정의 대원칙은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이었다. 그리고 1935년부터 표준어 어휘 사정 관련 작업에 착수했는데 그 결과물은 1936년에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으로 결실을 맺었으며, 9457개 단어에 대해 표준어, 준말, 비표준어, 한자어 등으로 분류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이후로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기반으로 한 맞춤법 규정과 조선어학회의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그대로 표준어 규정으로서 사용해왔지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조선어 표준말 모음의 표준어 규정에 내재한 미비점, 시대에 따른 어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점, 표준 발음법 미비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1970년대부터 한국어의 표준어 및 맞춤법 규범을 재확립하기 위한 연구에 들어갔고, 이는 1988년에 표준어 규정과 한글 맞춤법으로 결실을 맺었다. 현재 대한민국 표준어의 규정은 이 표준어 규정과 한글 맞춤법에 따르는 것이다.
표준어 논란
현재의 표준어 사정 원칙 제1항에 따르면 대한민국 표준어는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이다. 그런데 이 규정을 곰곰이 생각하면, 맨 먼저 나오는 ‘교양’에 대한 생각이다. 교양은 일반적으로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말하는데 시대성이 있고, 상대적 개념이므로 그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교양이란 말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어학회에서 정한 표준어 정의에서 나오는 규범이다. 반백년 사이에 ‘중류 사회’란 사회계층(?)이 '교양 있는 사람들'이란 문화기준으로 바뀐 셈이다. 그래도 논란은 이어진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기준으로 하므로, ‘사투리 사용자들은 교양이 없다는 것이냐?’며 지방 차별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다. 더구나 국립국어원은 표준어 규정 해설집에서 ‘표준어를 못하면 교양 없는 사람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라는 언급을 대놓고 했기 때문에 지방 차별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음은 ‘서울’에 대한 논란이다. 그동안 서울은 지리적으로 확장되어왔고, 인구도 유동으로 서울사람을 규정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사실 표준어로 인해 가장 많이 사라진 방언이 바로 서울 사투리하고 한다. 서울 토박이인 고령의 서울 시민들조차 서울 말, 서울 사투리를 거의 안 쓰는 편이다. 통계에 따르면 최신, 최후의 서울 사투리 자체는 70% 정도가 현대 표준 한국어의 근간이 되어 현재 표준어로 쓰이고 있다. 20% 정도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어를 한국식으로 이해한 최신 외래어로서 현재 사멸 중이고, 표준어로 채택되지 않은 서울 사투리는 지금은 약 10% 이하 정도만 남아있다고 한다.
끝으로 ‘원칙’이라는 용어인데, 이는 서울말이 아닌 표준어나, 표준어가 아닌 서울말도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논란거리가 많은 표준말 규정 자체의 존폐에 대한 주장도 있다. 표준말 사용을 권장하고 사투리 사용을 자제하는 것은 언어의 자주권을 제한한다는 논리이다(한겨레,2022.10.8). 어문규범을 ‘성문화된 규정’으로 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과 북한, 중국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와 관련한 위헌 소송이 있었다. 지역어 연구모임 ‘탯말두레’ 회원들은 표준어 규정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규정해 ‘서울이 아닌 지역의 언어를 쓰는 청구인들에게 지역적으로 차별대우를 함과 아울러 상대적으로 교양 없는 사람으로 멸시하고 차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헌재는 ‘조항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법적 효과를 갖고 있지 않아 기본권 침해의 가능성이나 위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한 표준어규정은 합헌이라는 헌재결정이 나오고, 또 교과서, 공문서 등을 표준어로 작성하도록 규정한 국어기본법 역시 합헌으로 판단했다(2009.5.28).
사투리와 언어 건강
어쨌든 최초 표준어 기준이 만들어질 당시와 달라진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과거의 기준에 집착하면 당연히 언어의 발달은 저하될 것이다.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과거의 언어규범을 개폐하여 표준어가 자유롭게 형성되고 국어가 자유롭게 발전할 기반을 만드는 것이 언어의 자주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표준어 사전에서 단어 뜻까지 정의하기 때문에 국가가 언어의 사용범위까지 결정하는 셈이다. 서울말이 사투리보다 낫다는 언어의 우열은 국가권력이 만든 차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의 표준어 정책을 일제강점기에 구축된 식민지배의 유산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언어생활에 대한 국가간섭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사례도 있다(경남신문, 2008.11.25). 중국에서는 1949년 모택동 정권이 출범한 이후 ‘말도 글도 쉽게 하고 쉽게 쓰자’라며 보통화(普通話 표준말)를 강조했다. ‘전문학자도 한자 6000자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을 쓰라’고 지침을 내렸다. 표준말의 규범화를 강조하다 보니, 언어의 수준을 끌어내렸고 획일화시켜 언어의 다양성, 나아가 문화의 다양성을 제약하였다. 그래서 지금 중국에서는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2차 대전 패전 이후 국어나 표준어 대신 공통어라는 개념이 확산되었고, 1990년대부터는 사투리도 공통어와 함께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리고 미국 정부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민 온 사람들에게 자기 나라 말을 가르치지 말고 영어를 가르치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다가 요즈음은 이민 온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을 가르치면 미국정부에서 보조금을 주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을 한다고 한다.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다 보니, 미국 문화가 발전하어라도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성이 점점 쇠퇴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가 획일적으로 표준말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장 편하게 사용하는 말, 자기 고향의 말을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투리는 표준어의 원류가 될 수 있으므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사투리 지켜내야 표준어가 건강해 진다. 사투리와 표준말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자 공존해야 하는 언어 유산이다.
출처 : 정경시사 FOCUS(http://www.yjb0802.com)